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188호-의궤(儀軌)와 의례학(儀禮學)(이욱)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2. 2. 9. 12:04

의궤(儀軌)와 의례학(儀禮學)

2011.12.13


지난 12월 8일에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타종식이 있었다. 12월이지만 한 해가 아직 여러 날 남은 때라 보신각 종소리의 까닭이 궁금하였다. 1900년대 초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던 조선시대 도서 147종 1200책이 지난 12월 6일에 한국으로 되돌아왔다. 이 중에 조선 왕실 의궤(儀軌) 79종 164책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날 타종식은 의궤를 포함한 조선의 책이 돌아온 것을 기념하고 알리기 위한 것이었다. 기념식은 이번 타종식으로 끝나지 않는다. 12월 13일에는 종묘에서 의궤 환수 고유제를 지낼 예정이며, 16일에는 오대산 사고(史庫)에서 환수 고유제와 환영식이 있을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 달 27일부터 내년 2월 5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특별전시회를 통해 돌아온 책들을 일반인에게 공개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의궤는 조선시대 기록문화의 꽃이자 개항 이후 제국의 침탈에 따른 아픔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올 4월에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는 이러한 사정을 잘 보여주었다. 의궤 중 국왕이 열람하는 가장 고급스런 것들이 대부분이었던 외규장각 의궤가 1866년 화약 연기 자욱한 약탈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것이나 프랑스 파리 도서관에 보관되었다가 145년만에 ‘영구임대’라는 형식으로 고국에 돌아온 것은 그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번 일본에서 돌아온 의궤는 조선시대 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었던 것들인데 ‘한일 도서 협정’에 의해 되돌아온 것이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의궤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영구 임대’의 형식이 아니라 완전 반환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불법적으로 국외로 유출된 문화유산을 환수하는 데에 좋은 선례가 될 것이다. 제국의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불법적으로 옮겨져 있는 수많은 제 3세계 문화유산이 본래의 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언뜻 보기에 의궤의 자리 찾기는 현재 제국주의에 대한 침탈의 역사를 되돌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국내에 들어온 의궤의 ‘제자리’는 이제 중앙과 지방, 국가와 민간, 국가와 불교 등의 미묘한 틈 사이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의궤는 2007년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의궤는 근대적 의미로 보면 특정한 행사의 보고서이면서 기념집이다. 행사 후 다음의 시행을 위해 그 전말을 자세히 기록하였을 뿐 아니라 의궤를 만들어 왕께 바치고 사고에 보관하는 자체가 그 사건을 기념하는 의식이었다.

이러한 의궤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보여주는 ‘의례’의 가치이다. 국내외에 현존하는 의궤는 약 654종이 넘는데 이들은 모두 임난 이후의 것들이다. 감히 ‘의례 국가’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 만큼 조선시대 국가에서는 많은 의례를 거행하였다. 더욱이 이러한 의례는 대부분 정치 외교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왕실을 매개로 한 책례(冊禮), 혼례[가례(嘉禮)], 국장(國葬)에 관한 것이다.

의례의 시행과 의궤의 편찬은 조선 국가의 통치술인 의례의 모습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의례는 그 속에 있는 국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의 자리를 찾게 만들면서 세속 권력을 성화(聖化)시키고 재생산하였다. 이러한 의궤에 대해 건축, 미술, 복식, 음식 등 매우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연구를 시도하고 있다.

종교라는 이름이 없지만 성스러움의 변증법에 익숙한 종교학 역시 이러한 의례에 무관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칫 그 아름다움에 취해 놓치기 쉬운 의례의 본질을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의궤 연구는 종교보다 국가 권력이 압도적이었던 동아시아 종교적 상황을 이해하는 길이다. 의례의 기록이었던 의궤가 이제 의례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모습을 바라보며 의례학과 종교학의 발전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이욱_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leewk99@paran.com


최근 논문으로 <조선시대 왕실제사와 다례(茶禮)>, <조선 및 한국 근대의 제천문화> 등이 있고, 저서로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정미가례시일기 주해>>(공저) 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