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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陰曆)은 과연 비과학적이고 구식인가?

2011.12.6


우리의 삶은 현재 양력 즉 태양력에 길들여져 있다. 우리가 서구에서 사용하는 태양력을 책력의 기준으로 삼아 생활하게 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우리사회 음력은 이제 24절기나 전통적인 명절 그리고 전통종교의 의례를 행하는 날짜를 통해 겨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음력(陰曆)은 구시대의 유물이고 부정확한 것이라는 근거 없는 인식을 하고 있다. 그러나 양력은 태양의 운행을 기준으로 하였지만 특정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특히, 물 때를 알기 어려워 지금도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있는 것이 양력이다. 하지만 농업과는 관계가 별로 없는 서구화와 산업화에 밀려 우리의 생활도 일 년을 기계적으로 분할한 양력에 점차 길들여지게 되었다.

그렇다면 과연 음력이 정말로 비과학적인 것일까. 음력과 양력은 모두 기본적으로 자연의 시간을 반영해서 만들어진 달력이다. 양자의 1년 길이를 365일 또는 366일로 정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는 오늘날 알려진 1년의 길이인 365.2422일과 거의 근사한 값이다. 그러나 한 달의 길이를 정하는 방법에 있어 음력과 양력사이에는 큰 차이점이 있다.

양력의 경우 해의 운동만 고려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양력 한 달은 해가 황도 위에서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12로 나누어 그것을 한 달로 정하였다. 예를 들어, 1년의 길이를 365.25일이라면 1달은 365.25/12=하면 30.42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이 같은 양력의 원칙은 지켜지지 못했다. 양력은 큰달과 작은 달을 두어 큰 달은 31일, 작은 달은 30일로 정해 교대로 배열한 것이나 시간이 지나면서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원칙에서 인위적으로 벗어나게 된다. 예컨대 로마의 시저와 아우구스투스는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7월과 8월의 날짜를 임으로 늘려 버렸다. 그 결과 2월은 28일 또는 29일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태양의 운행에 적용해 설명 한다면 1월달의 경우 해는 31일 동안 황도의 1/12만큼 운행해야 됨으로 비교적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2월달이 되면 28일 동안 태양은 똑같은 거리를 운행해야하므로 태양은 상대적으로 상당히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양력은 이런 모순 때문에 한 달의 길이를 정하는데 태양 전체의 운행에 따른 자연 시간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음력은 천체 운행의 원칙을 더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 음력은 한 달의 길이를 정할 때 달의 주기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달의 모양이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그믐달로 바뀌는 것을 보고 그 주기 양 29.53을 한 달의 길이로 정했다. 따라서 음력에서는 1달의 길이가 29일 또는 30일이 되는 것이다. 또 1년의 길이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도 차이가 난다. 양력은 1년의 길이를 365.25일로 계속하여 근사 값을 사용해 왔으나 음력은 보다 더 정확한 1년의 길이를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 노력의 결과로 얻어진 새로운 값은 새로운 달력에 반영 되었다.

음력은 보다 더 정확한 1년의 길이를 얻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춘추전국시대는 시분력으로 1년을 365.25일로, 기원후 206년경의 유홍(劉洪)의 건상력(乾象曆)은 365.2462일, 463년 조충지(祖沖之)의 대명력(大明曆)은 265.2428일, 622년 서앙(徐昻)의 선명력(宣明曆)은 365.2446일, 1199년 양충보(楊忠輔)의 통천력(統天曆)은 365.2425일, 1281년 곽수경(郭守敬)의 수시력(授時曆)은 365.2425일, 1644년 탕약망(湯若望)의 시헌력(時憲曆)은 365.2422일, 현대 사용되는 1년 기준 값은 365.2422일이다.

양력은 달력이 처음 만들어진 이후 몇 번 바뀌지 않은데 비하여 음력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역법이 제시되었고 그 결과를 새로운 달력에 반영해 왔다. 그래서 음력의 종류는 지금까지 1백여 가지에 달한다. 이렇게 많은 종류의 달력이 생긴 것은 동양에서는 달력이란 항상 실제 천체운행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반영해야한다는 생각에 철저했기 때문이다. 즉 동양에서는 천체 운행에 관한 새로운 천문학적 지식이 얻어질 때마다 그 내용을 달력에 담아왔기 때문이다. 한 예로 음력에서는 계절의 변화를 달력에서 춘분.하지.추분.동지 등의 24절기로 표시한다.

음력에서는 달의 운행을 보고 날짜를 표시하기 때문에 날짜만으로는 계절의 변화, 즉 해의 위치를 알 수 없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처음부터 날짜와는 별도로 24 절기를 표시해 주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양력은 태양의 운행을 가지고 날짜를 표시했기 때문에 날짜만으로도 태양의 위치를 정확하지 않지만 어림잡을 수 있으나 지구의 기상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달의 운행은 알 수가 없다. 이같이 동양의 음력에서는 해와 달의 운행에 관한 매우 정확한 내용을 직접 달력에 포함시켰다.

그것만이 아니다. 동양의 역법에서는 달력을 만드는 것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듯한 행성(行星)의 운행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역법이 달력만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실제 천체들의 모든 운행 모습을 완전하게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예컨대 천자문(千字文)에는 윤여성세(閏餘成歲)라는 말이 나온다.

一歲는 十二朔, 二十四氣니 氣盈朔虛가 積三十二朔이면 則爲二十九日餘라 以置閏而定四時成歲矣니라.

이말은 “일년은 12달,24절기이니 절기의 가득 참과 달의 비는 것과의 차이를 32달 쌓으면 29일 남짓이 되는데 이것으로 윤달을 두어 4시를 조정해서 한해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즉 음력은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삭(朔)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삭(朔)은 바다에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물때를 알려면 꼭 필요한 것이었다. 음력의 절기(節氣) 즉 춘분,하지,추분,동지등 24 절기는 해의 운행을 살펴 만들었다. 이 절기는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매우 필요 했던 것이었다. 더욱이 이 음력의 24절기는 인체의 갈비뼈가 한 쪽에 12개씩 모두 24개로 되어 있다는 인체의 소우주(小宇宙)까지 반영한다. 다시 말해 음력은 단지 달의 운행만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 아니다. 음력은 달과 해의 운행을 모두 살펴 자연운행의 법칙을 가장 알기 쉽도록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음력은 서양의 양력보다 훨씬 더 과학적인 달력이 아닌가.

최근 어느 한국의 신흥종교는 이런 음력과 양력의 문제를 통합하기 위해 음력을 중심으로 하면서 양력까지 일부를 받아들이는 즉 음력을 기준으로 음력과 양력을 하나로 만드는 새로운 역(曆)을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기도 하다. 정역에서도 음양이 통합된다고 하지 않았는가.

장창환_

우리문화를 공부하는 재야한학자


mujin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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