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호모렐리기오수스’의 얼굴

-정진홍 이사장의 인문강좌를 마치고

2011. 1. 15


한국연구재단에서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하는 인문강좌>에서 “지성적 공간 안에서의 종교 : 종교문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위하여” 라는 주제로 정진홍 이사장님의 대중강연이 있었던 다섯 번의 토요일 오후(10월 8일에서 11월 5일까지)는 내게 오랫동안 향연의 웅성거림 속에 잠겨드는 거대한 ‘침묵’으로 회상될 것만 같다. “물음과 해답: 종교를 정의하는 일”(1주차), “존재양태의 변화: 종교와 실존”(2주차), “통합/해체/매개: 종교와 공동체”(3주차), “다원성과 다양성, 그리고 중층성과 복합성: 종교와 문화”(4주차)의 릴레이강연 및 종합토론으로 이어진 그곳에는 겹겹의 시간 위에 차곡차곡 포개져 온 무수한 ‘호모렐리기오수스’의 얼굴들이 나타났고 스러져가는 풍경으로 격렬하면서도 곱게 채색되어 있었다.

이 강연은 “종교란 원래 이런 거야”라는 ‘자명성’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전제하면서, 최초의 실존적인 종교적 감동과 그 감동의 간헐적인 배반을 수반하는 ‘힘의 실체’로서의 종교공동체를 있는 그대로 승인하자는 지극히 현실적인 출발점 위에서 종교문화에 대한 인문학적인 ‘비판적 인식’이 어떤 것이 될 수 있는지를 미로 찾기처럼 구석구석 파헤치는 지성의 탐험 그 자체였다고 기억될 만하다. 그 기억 속에서 우리는 종교가 해답이 아닌, 갈수록 문제 덩어리로 비대해져 가는 비극적 상황 속에서 ‘상상력’의 복원을 통한 물음과 해답으로서의 종교를 추구하는 몸짓, 개념의 세계가 경험의 세계를 배신하는 전복적인 경계상실의 문지방 위에서 개별 종교에 대한 기술이 아닌, 총체적인 문화현상 속에 존재하는 하나의 매개체로서의 종교를 어떻게 다시 써야 하는지가 끊임없이 되물어지는 말짓, 그런 몸짓과 말짓이 어우러진 춤사위의 끝자락에서 만날 것으로 예감되는 어떤 새로운 ‘열림’에의 마음짓에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토론자들의 마음짓은 어떠했을까. 감정이입과 거리두기 혹은 공감과 비판의 ‘사이’를 추상하기(김윤성), 예컨대 ‘유교’라는 범주가 내포하는 문제로서 설명범주와 해석범주의 어긋나기 십상인 교차성에 대한 의문 만들기(이연승), 그리고 물음과 해답의 구조를 하나의 ‘과정’으로 치환하면서 “종교는 누구인가”라는 화두 던지기(이창익). 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한 이들의 마음짓을 강연자는 더 큰 물길로 품어 안으면서 우리 모두에게 향연의 호스트 자리를 넘겨준 채 바다의 넓이와 깊이로 잠겨드는 듯싶었다. 이리하여 따스한 소통의 한 감동적인 범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강연자가 우리 모두에게 정말로 하고 싶었던 말은, 자신만의 독특한 빛깔을 찾아 저 바다로 뛰어들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개개 종교를 기반으로 한 어떤 종교 논의도 이제는 그 한계가 분명합니다. 종교도 역사가 기술되는 문화현상입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종교와 관련하여 인간을 되생각하는 계기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물음과 해답의 구조’를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새로운 인간상의 탐색이지 기존의 종교들이 제시하는 인간상을 적합성을 찾아 되다듬거나 되꾸미는 일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 논의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은 ‘우리가 종교인이기를 그만두면 비로소 우리는 인간일 수 있는데 이를 굳이 언표한다면 우리는 그때 비로소 종교적인 인간이 된다’고 하는 진술입니다.”(『열림과 닫힘』)

이 마무리 진술은 강연자가 생애를 통해 추구해 온 ‘정직한 인식’이 도달한 고원의 풍경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물론 고원은 하나의 끝이자 또 하나의 시작일 따름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호모렐리기오수스’에 대한 지적 탐험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박규태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편집위원장, 한양대교수


chat0113@paran.com


최근 논문으로 <고대 교토의 한반도계 신사와 사원 연구>, <스사노오 신화해석의 문제:한반도와의 연관성을 중심으로

>등이 있고, 주요저서로 <<동아시아 여신신화와 여성정체성>>(공저),<<아마테라스에서 모노노케히메까지>>,<<일본정

신의 풍경>>등이 있으며, 주요 역서로 <<일본사상사>>,<<국화와 칼>>,<<신도,일본태생의종교시스템>>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