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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자들이 불편해 하는 것, 종교

2009.6.16



저명한 자연과학 학술지인 《네이처Nature》에 <인간되기Being Human>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8개의 에세이가 2008년 10월부터 2009년 2월에 걸쳐 게재되었다. 이 시리즈의 제목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이 에세이들은 자연과학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간주되는 8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그 중 첫 번째가 바로 종교다. 특히 언어보다도 종교가 더 먼저 선택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네이처》 편집진이 선정한 주제를 게재 순서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① 종교, ② 언어, ③ 싸움, ④ 관대함, ⑤ 이주, ⑥ 사랑, ⑦ 친족, ⑧ 공학. 자연과학자 사회에서 《네이처》가 차지하는 커다란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편집진은 주제를 선정하고 그 순서를 결정하는 것에 상당히 신중했을 것이다.

첫 주제인 종교에 대해서는 인지종교학을 선도하고 있는 파스칼 보이어Pascal Boyer가 썼다. 이 에세이를 읽는 주요 독자들이 인지종교학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전혀 들어보지 못한 자연과학자들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이어는 2001년에 출판한 《설명되는 종교Religion Explained》에서 다루었던 내용을 소개하는 형식으로 썼다. 그는 반직관적인 행위자가 개입되었을 때 이야기가 기억되기 쉽기 때문에 구전 전통에서 신 개념이 기억에 쉽게 침투했다는 것,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진화상 생존의 주요 과제였을 때 종교를 통해 그것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 등을 얘기하고 있다. (보이어의 주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창익, <인지종교학과 숨은그림찾기>, 《종교문화비평》, 14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08, 64-138쪽을 참고하라.)

여기서 나는 보이어의 주장을 자세히 소개하지 않겠다. 그보다는 왜 《네이처》 편집진(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의 분야에서 유명한 자연과학자다)이 <인간되기>라는 시리즈를 기획했으며, 그 중에서도 왜 종교를 가장 먼저 선택했는가를 얘기하려고 한다. 먼저 왜 《네이처》 편집진은 이 시리즈를 기획했는가? 첫 에세이를 게재했던 2008년 10월 23일자 455호의 편집자의 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들은 이 시리즈를 통해 자연과학 입장에서 인간을 이해하고, 사회학 생물학 심리학 인류학 경제학 등에서 얻은 성과들을 공유하는 기회로 삼고자 했다. 즉, ‘통합, 통섭, 융합, 학제간’이라는 용어로 통용되는 시도인 셈이다. 그러나 그들이 선정한 필자들은 자연과학으로 분류되는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자연과학에 우호적이면서 그 방법론을 공유하는 경제학자 인류학자 종교학자다. 이와 유사하게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Consilience》이 한편에서는 학문간 경계 넘기의 모범 사례로 논의되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자연과학을 중심에 놓고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 등을 자연과학으로 환원하여 설명한다고 비판받는다. 결국 《네이처》가 시도한 이 시리즈도 윌슨의 시도와 유사하며 자연과학을 중심에 놓고 인간을 설명하려고 한다.

두 번째로 왜 《네이처》 편집진은 종교를 가장 먼저 선택했는가? 자연과학자들이 사용하는 주요 도구는 방법론적 유물론 또는 물리주의다. 즉, 현상에는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은 물리적 실체에 근거해야 한다. 이 도구를 이용해 중력도 설명했고, 상대성이론도 발견했으며, DNA 이중나선도 밝혀냈다. 그런데 편집진이 보기에 그 도구를 가장 적용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종교이며, 그렇기 때문에 종교가 인간이 다른 모든 생명체와 구별되는 핵심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근거도 없고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의례를 반복적으로 실행하고(“신이 명령했기 때문에 하루에 몇 번씩 특정한 방향을 향해 절을 해야 한다고? 기도할 때 손으로 십자 모양을 그려야 하거나, 가슴을 세 번 쳐야 한다고? 그 행동의 원인과 물리적 실체를 전혀 찾을 수 없군.”), 전지전능한 신이 모든 인간사를 알고 있고 그것을 의도했다는 주장(“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무너뜨린 것이 신의 진노 때문이라고? 그건 허리케인이 강력했기 때문이고, 책임자들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야.”)을 자연과학자들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러나 인류가 등장한 이래 종교는 모든 시기와 장소에서 존재했다 점, 그리고 과학과 기술이 크게 발전한 21세기에도 여전히 번창하고 있다는 점이 자연과학자들에게는 풀기 어려운 주제인 것이다. 즉, 종교가 어떠한 자연과학적 방법론으로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네이처》 편집진은 종교를 가장 먼저 선택했을 것이다. 결국 종교는 언어, 사랑, 싸움보다도 자연과학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한 셈이다.


박상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회원 cygnus30@hanmail.net
역서로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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