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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0호-새로운 시간의 탄생,정월 대보름(이용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6:17

새로운 시간의 탄생, 정월 대보름

2009.2.10



이전 한국사회에서 정월 대보름은 한해가 실질적으로 시작되는 시기였다. 예컨대 새해를 맞아 어른들께 드리는 세배도 보름 전까지만 드리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으며, 새해 집안의 편안함을 비는 안택(安宅)과 같은 의례는 정월 대보름 전에는 꼭 드려야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정월 초하루에서 대보름까지의 기간에 이른바 넓은 의미의 ‘신년의례와 놀이’가 집중되어 있었다. 잘 알려진 설날 차례를 비롯해서, 마을단위의 당제나 당굿과 같은 마을제사와 집안의 안택, 지신밟기, 뱃고사 등의 다양한 의례와, 달집태우기·연날리기·줄다리기·석전(石戰) 등의 다양한 놀이가 행해졌다. 이러한 의례와 놀이는 지역에 따라 다종다양해서 일일이 예를 들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모두 지역사회의 좋지 않은 액(厄)을 물리고, 새롭게 맞이하는 한해가 풍요롭고 편안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이 시기에는 노동을 하지 않는다. 부지런함이 미덕인 시골에서도 이때는 노동을 해서는 안 되는 때로 여겨지고 있다. 즉 노동으로 상징되는 일상의 활동이 정지되고 의례와 놀이가 행해지는, 아니면 아예 집밖의 모든 활동을 정지하거나 조심스러워 해야 하는 시기가 바로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의 기간이었다. 그리고 보름이 지나면서 한해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따라서 이 기간은 한마디로 시간의 흐름이 하나의 시간대에서 다른 시간대로 바뀌는 전환기, 또는 새로운 시간의 탄생기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시기가 정월 초하루에서 대보름까지의 기간과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이 기간의 전환기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제주도의 풍습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신구간(新舊間)으로,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의 기간에 이사나 집안의 수리 등을 하는 관행을 말한다. 현재에도 제주도 사람들은 대부분 이 기간에만 이사를 간다. 그래서 아직도 눈보라 치는 겨울에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며, 해마다 그것이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 때문에 예전에 외지 사람들이 가장 애를 먹었던 것은 이 기간에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이 시기에 외지인이 집을 빌리려고 하면 제주도 사람들은 신구간도 아닌데 무슨 소리냐고 이상해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신구간에 이처럼 이사를 하고 집수리를 하는 것은, 이때 집안에 있던 여러 신들이 회의를 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 집을 비워서 동티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그러나 신구간의 의미는 그 말 자체에 잘 드러나 있다. 신구간(新舊間)은 이전의 시간과 새로운 시간이 겹치는 시간대이고, 바로 이 시간대에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것이 신구간 풍습으로 이해될 수 있다. 대한(大寒)은 바로 ‘지난 겨울’이 끝나는 시점이고 입춘(立春)은 ‘새로운 봄’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처럼 정월에서 정월 대보름사이에 행해지는 다양한 의례와 놀이는 묵은 시간을 보내고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전형적인 ‘신년의례’, ‘신년축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것은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에 일정한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한국인의 삶을 매듭지어주고 새로운 삶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이제 그런 의미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는 듯하다. 기껏해야 정월 대보름 음식이나 지역 사회단체가 마련한 이벤트성 놀이로 대보름을 맞이하고 있을 뿐이다.

어제는 정월 대보름이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도 몇몇 단체의 주선으로 사람들이 모여 가까운 초등학교에서 불깡통 돌리기, 달집태우기 등의 놀이를 하였다. 불놀이(?)여서 소방차를 대기시키지 않을 수 없어 어색하긴 했지만, 모인 사람들은 특히 아이들은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하나의 시간을 보내고 또 다른 시간을 맞이하는 의미는 찾기 어려웠다. 그것은 지역 사회단체가 마련한 흥미로운 놀이었을 뿐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서, 전통적인 시간리듬이나 우리가 사는 집, 우리가 입는 옷, 우리가 먹는 음식 등의 의식주로는 우리의 삶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다. 우리의 생각 역시 많이 달라진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이용범(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yybhum@kg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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