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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9호-까만색과 하얀색(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6:16

까만색과 하얀색

2009.2.3



설 날 연휴에는 집에 틀어박혀 있기도 그렇고, 밖에서 어슬렁거리기도 어정쩡한 때. 고향이 가까운 나는 귀향 소동에 휩싸일 필요도 없어 길 위에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되지만, 이미 마음이 떠 있어 집에서 빈둥거릴 수도 없다. 집에 있으면 기껏해야 텔레비전 보면서 시간 죽이거나, 하나마나한 잡담하는 게 모두 다 일 것이니, 그게 싫다면 어쨌든 나가야 할 터. 한 달 새 두 번씩 나이 먹기 위해서는 무언가 희생을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간 곳이 바로 찜질방. 하지만 핑크색과 하늘색의 두 가지 유니폼을 입고 고물 고물대는 찜질방 인파 속에서 내게 남겨진 자리는 어디인가. 그건 바로 텔레비전 앞. 무슨 뜻이 있으려니 하고, 그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게다가 시선을 올바로 하는 것은 늘 어려운 법. 어쩔 수 없다. 남들처럼 사각의 링 위에 펼쳐지는 활동사진을 보는 수밖에.

핑크색과 하늘색이 시선을 고정하고 보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뻔한 드라마. 재벌 집과 가난한 집, 조직폭력배와 검사, 그리고 출생의 비밀 등등 흥행의 상투적인 도식이 얼기설기 조합되어 있는 것. 드라마의 “블루 오션”을 찾으려고 애쓰는 대신, 왜 걔들은 늘 거기에서 거기로 뱅뱅 돌고 있을까?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는 “안도감”을 주기 위하여? 도무지 알 수 가 없는 노릇...

그 때, 그 드라마가 나를 배려하여 보여준 장면. 무슨 회장이 죽어서 하는 장례식. 내가 요즘 장례식에 관심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것일까...울고불고하는 인물들의 관계를 모르니 내 눈에 들어오는 건 그들이 입은 옷뿐. 온통 검은 상복의 색깔. 그래서 새삼스럽게 떠오른 질문 하나. 저렇게 새까만 옷을 장례식에서 입게 된 것은 어떤 연고? 어언 몇 십 년 전에는 망자와 가까운 이들은 거친 삼베옷을 입고 참석자는 흰옷을 입었던 기억이 생생하건만. 어떻게 이다지도 까만 색 일색이 되었는고? 우리네 옷장 한구석에 있는 까만 색 옷. 그건 일상에서는 소용이 없는 것. 장례식 때 입기 위해 있게 모셔져 있는 것. 언제부터 우리가 “닌자의 옷”을 입게 되었는고.

그런데 정반대의 색깔이라고들 말을 하는 까만색과 흰색, 하지만 사실은 서로 등이 붙어있는 것처럼 가깝기도 한 색. 이른바 무채색이라는 공통점. 일상의 유채색과 비일상의 무채색. 그래서 조선시대의 하얀 상복과 지금의 까만 상복은 그리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될 수도 있는 것. “빨주노초파남보”의 색깔 스펙트럼 밖에 거한다는 연대감으로... 하지만 왜 하얀색에서 까만색으로 이동한 것일까? 그건 죽음을 의미하던 우리의 하양이 까만색에 밀렸다는 뜻. 죽음은 까만색이라는 목소리가 너무 자신만만하고, 우렁차게 밀려왔기 때문. 그 자신만만함의 출처는 무엇인고? 자신의 사투리를 표준어로 삼으라고 윽박지른 목소리에 우리가 고분고분 잘 따랐기 때문. 우린 왜 그런 생떼를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였는고? 그건 생떼와 윽박지름을 억울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 만방에 적용되는 그들의 기준을 받아들여야 우리도 겨우 그들을 따라잡는 경주를 시작할 수 있다고 여겼기에...

조선시대의 유산과 단절을 하고 조국근대화로 살아야 한다는 강한 의지는 곳곳에서 발현되기 마련. 궁상맞은 하얀색과의 결별도 그 수순에 따른 것일 뿐. 하얀색이야말로 조선시대의 색깔이자. 망국의 색깔이 아니더냐. 궁상에 또한 궁상인 하얀색의 상복이 윤기나는 까만색으로 바뀌는 것도 어이 의미 없다고 할 수 있을 손가.

요즘은 굴뚝근대화의 적자(嫡子)를 자처하며 “전국에서 망치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자”는 구호를 선창하는 자들의 세월. “쇠고기가 마음에 안 들면 안 사먹으면 된다”는 해법을 제시하는 자들이 정치판을 주무르는 그야말로 호시절. 이때에 즈음하여 장례식의 비(非)일상이 아니라, 길거리의 집회 참가자의 옷에서도 안방에서 보는 텔레비전 뉴스 진행자의 옷에서도 모두 까만색의 상복이 뒤덮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연고인고?

장석만(충간문화연구소,skmjang@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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