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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4호-종교는 섬이 아니다(우혜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14. 14:56

종교는 섬이 아니다

2008.12.23


지난 금요일 열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하반기 정기 심포지엄에서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작금의 종교와 권력의 수상한 밀월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필자는 이 자리에서 이러한 논의의 배경에는 ‘종교’에 대한 매우 이상화되고 정제된 그러나 매우 모순된 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없었다. 즉 종교집단에게 영혼의 구제라는 ‘본래’의 사명을 회복하길 기대하는 동시에 공동선의 추구를 종교의 기본적 성격으로 규정하여 종교의 순기능을 강조하고 또한 사회복지와 같은 공적영역의 참여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되 정치영역으로 부터는 후퇴를 요구하는..... 따라서 필자는 종교의 세력화를 논의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종교’에 대하여 갖고 있는 시각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언제부터 우리는 종교가 사회나 정치로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하나의 ‘섬’으로 존재하길 기대하였으며, 집단 그 자체가 하나의 사회적 힘이며 세력인 것을 왜 종교의 경우에는 예외적 상황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종교의 사회(정치)세력화는 그 자체가 부도덕하며 비종교적인가.

현재 논의되고 있는 종교의 사회세력화는 기독교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어 균형적인 시각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권력과 종교집단과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해서 논할 필요가 있다. 즉 현 한국의 개신교와 같이 지배 정치권력과 높은 친밀성을 유지하고 이에 힘입어 자신을 정치세력화 하는 경우 - 이로 인한 개신교의 독점적 영향력에 대한 우려도 정당하나 - 이러한 행보는 이에 대한 사회적 문화적 저항세력을 오히려 집결시키고 이들은 기독교에 대한 저항을 넘어 지배체제에 대한 전반적인 대항으로 전개되기 쉽다는 사실이다. 한편 불교의 경우는 이와 반대로 현 정권에서 오히려 지배 정치권력으로 부터 한 발자국 더 멀어짐으로서 비교적 자유롭게 사회비판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으며 독자적으로 혹은 다양한 시민단체들과 연계하여 자신을 사회세력화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지난 여름의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정부 규탄 범불교도 대회’일 것이다. 이 행사는 한국의 불교사에서 큰 획을 긋는 사건으로 한국불교가 ‘호국불교’라는 자기최면 하에 오랫동안 고수하였던 체제유지적 성격을 스스로 거부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물론 한국불교가 이를 계기로 180도 자기변신을 이루었다는 판단은 시기상조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한국 불교계의 내부에는 그 다양한 구제관(救濟觀) 만큼이나 다양한 정치적 성향 혹은 이해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범불교 대회가 거행되기 두 달 전만 하더라도 소위 특수임무수행자회가 시청앞 광장을 차지하고 촛불집회를 방해하고 있을 때 일부 스님네들이 이들과 어울려 천도재를 지냄으로서 촛불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의 화를 돋군 적이 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6년 12월에는 이명박 정권의 대권쟁취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불교뉴라이트연합’이라는 기괴한 보수우익 단체가 ‘불자애국운동’을 표방하며 출범하기도 했다. 물론 ‘불교뉴라이트연합’은 개신교의 경우와 달리 그 영향력도 미미하고 노선도 명확하지 않다. 이는 참가단체들의 다수가 ‘한국종단협의회’에 소속되지 않은 군소종단이며, 멋모르고 이름을 올려놓았던 많은 스님들 또한 창단 이후 탈퇴했고 더구나 ‘범불교대회’에 즈음해서는 성명서를 통해 자신들은 ‘뉴라이트 전국연합’ 산하단체가 아닌 별개 단체로 순수불교단체라고 변명하면서 자신들도 이명박 대통령의 (종교편향) 사과를 요구한다면서 범불교계의 움직임과 애써 발을 맞추려하는 등 매우 혼란스런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프닝과 함께 현 한국의 불교계는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변화된 정치구도에 따라 자신의 대사회적 역할에 대한 다양한 전략과 행동방식을 모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이러한 불교계의 변화를 종교시장론에 근거해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범불교대회’가 보여주듯이 이러한 집단적 힘의 과시는 종교시장에서의 공평한 경쟁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지배정치세력에 대한 하나의 대항세력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특히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한국 불교계의 일각에서는 2000년을 기점으로 합동천도재의 형식을 빌어 매우 다양한 사회정치문제를 이슈화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매우 민감한 국내의 정치적 사안 내지 ‘과거사 정리’가 포함됨은 물론이고 불교계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생태운동과 관련하여 다양한 형태의 동식물 합동천도재가 선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이들의 희생을 야기한 인간의 속성, 즉 ‘욕망’에 대한 자기비판적 성찰이 이루어짐은 물론이고 이러한 ‘욕망’을 근간으로 하는 현 한국사회의 소비문화 그리고 현 정부의 개발위주의 경제정책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이 표출되기도 한다. 이러한 불교계의 변화가 시사하는 것은 종교의 사회세력화가 언제나 체제유지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도, 또 사회세력화가 필연적으로 정치적 수단을 필요로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촛불집회나 위에서 언급한 천도재는 의례 혹은 집단적 퍼포먼스를 통해 지배 세력에 대한 일종의 대항적 문화세력이 구축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항문화의 ‘진화’는 종교학자들에게 신선한 도전이며 또한 이 시대를 그나마 쿨하게 살아낼 수 있는 하나의 위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우혜란(한신대, woohaira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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