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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의 네트워크와 인지종교학

-2008년 상반기 심포지엄 후기-

2008.7.1

<종교학과 인지과학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2008년 상반기 심포지엄(2008년 6월 21일(토) / 프란치스코회관)에서는 흥미로운 네 편의 논문이 발표되고 그에 따른 논평과 토론이 이루어졌다. 종교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들, 인지과학과 종교(학)의 접점에 관한 이야기, 인지종교학의 주요 이론들에 대한 분석, 인지적 종교연구에 대한 비평 등이 짧은 시간 동안에 밀도 있게 전개되었다.

저명한 신경생물학자 제럴드 에델만은 “누구라도 수정을 가할 수 있고 아니면 심하게는 아예 폐지시켜 버릴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이론만큼 새로운 사상이나 실험을 촉진시키는 데 효과적인 방식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과학의 역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종교학과 인지과학의 만남은 우리에게 어떤 가능성을 제시할 것인가?

신비로 여겨지는 것을 미시적인 질문들과 정교한 가설들을 통하여 하나의 탐구 가능한 대상으로 변환하려는 학문적 노력은 과학이 지닌 혁명적 힘의 근간이다. 특히, 하나의 블랙박스로 여겨졌던 \'마음\'을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이끌어내고 있는 인지과학의 성과들은 이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인지과학은 \'마음\'에 관한 질문들에 의해 유도되는 여러 분과학문들의 소통과 상호연계를 통해 전개되고 있다. 인지과학 관련분야의 활발하고 생산적인 토론은 탐구대상과 학문분과의 근대적 대응관계가 탐구대상을 둘러싼 미시적 질문들의 네트워크로 전환되고 있음을 예시한다.

종교학 역시 신비로 간주되던 종교를 연구대상으로 삼으면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종교학은 근대 학문으로서의 독자적인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지나치게 많은 열정을 낭비해온 것 같다. 이를 위해 \'종교의 독자성\'의 주장은 이른바 반환원주의와 반교리주의 사이에서 얼마나 정처 없이 표류했던가? 그러는 동안 인간의 구체적인 삶이 토해내는 수많은 질문들은 호모 렐리기오수스의 제단에 바쳐지거나 역사학자의 자료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금번 심포지엄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종교와 종교학의 독점적인 대응관계를 고민하는 대신에, 종교를 둘러싼 다양한 질문들이 만나고 겹쳐지는 지점들을 추적해보려는 시도로 이해된다.

발표된 네 편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종교문화는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 및 진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인지과학과 종교 연구는 상호 기여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인지종교학자\'들은 실제로 어떤 연구들을 해오고 있는가? 그러한 연구들에 대해 전통적인 종교학에서 제기되는 비판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종교, 종교학, 심리학, 과학철학, 진화생물학, 인지과학, 물리학 등, 각각 매우 상이한 영역들에 관련된 모든 참석자들이 함께 물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어떤 분과학문도 종교를 연구하기 위한 독점적이고 고유한 권리를 가질 수 없다. 탐구의 권리는 질문 자체로부터 솟아난다. 질문하는 한, 탐구할 수 있다. 종교에 관한 질문이 다양한 각도에서 제기된다면 답변의 추구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문제는 질문들의 소통 가능성이다. 해법을 찾기 위해, '인지과학\'이 \'마음\'에 관한 질문의 네트워크에 대한 느슨한 명명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음\'에 관한 다양한 질문들과 가설들은 자연과학적 존재론의 일반성이 존중되는 논의의 장에서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면서 소통한다. 종교에 관한 질문들과 인지과학의 통찰이 접촉하는 첫 번째 지점은 바로 이곳에 있다. '마음\'에 관한 질문들이 그렇듯이, '종교\'에 관한 질문들은 이미 그러한 네트워크를 지향한다. 그리고 그 네트워크 속에서 질문들 자체가 진화한다. 이렇게 질문들의 이종교배를 통해 새로운 질문이 탄생하기도 하고, 선택과 적응을 통해 기존의 질문들이 솎아지고 변화하기도 한다.

필자 개인의 이야기로 금번 심포지엄에 대한 후기를 대신하고 싶다. 논평자로 참석했던 나는 심포지엄이 끝나가는 동안에도 여전히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수많은 생각들과 질문들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과 생태학적·문화적 환경은 종교문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종교문화의 형성, 변형, 축적, 전승, 쇠퇴, 소멸 등과 관련된 인간의 인지적(심리학적, 생물학적, 물리적, 언어학적) 조건은 무엇인가? 종교문화의 다양성이 무한히 발산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더 널리, 더 지속적으로 분포하는 표상들이 일정한 패턴을 이루며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타의 의례적 행위들과 구별되는 종교의례의 체계를 구문론, 형태론, 화용론 등으로 이론화할 수 있을 것인가? 주의집중, 기억, 망각의 인지작용에 관한 새로운 지식은 집단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관념과 의례의 전승과 변형을 이론화하는 데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세속적 일상에서 특정한 종교적 삶의 형태가 발견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상이한 종교적 존재론들, 직관적 존재론, 그리고 과학적 존재론 등, 다수의 존재론들이 균질하지 않게 공존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대부분이 심각한 정신분열증을 겪지 않고 자기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어째서인가? 집단 수준의 정치적 맹종이나 종교적 맹신의 원인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광신도, 급진적인 무신론운동가, 신앙 없는 성직자, 종교를 지닌 과학자들, 또는 개인의 삶에서 종교적 신념과 실천이 극히 부분적인 영향력만을 갖는 종교인들이 존재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심포지엄을 마친 후에 나는 더 바빠졌다. 질문을 다듬는 방법, 질문에 적합한 가설을 세우고 형식화하는 방법, 가설을 실험과 자료 분석을 통해 검증하는 방법, 잘못된 가설을 폐기하는 방법, 검증된 가설에 질문을 던지는 방법 등 배워야 할 것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익숙하지 않은 어휘와 문법도 배워야 하고 많은 지식도 쌓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동시대의 학문적 논의들을 지배하는 토톨로지, 아날로지, 호몰로지의 구조도 비판적으로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익히고 연마해야 할 것이 이렇게 많으니 도대체 바쁘지 않을 재간이 없다.


구형찬(서울대학교 박사과정, koohc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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