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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호-지령13호를 맞이하여(윤승용)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4. 9. 00:31

지령13호를 맞이하여


*이글은 <종교문화비평>13호 권두언에 실린 글입니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이하 한종연)는 그 전신인 연구회시절을 포함하면 작년에 20주년을 맞이하였다. 하지만 자그마한 자축행사도 한 번 갖지 못한 채 해를 넘기고 말았다.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무 살이면 건장한 청년의 나이다. 그동안 한종연을 통해 학문을 연마한 많은 회원들이 강단에서 후학을 지도하고 있고, 종교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책들을 출간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모여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연구소 공간도 있고, 우리가 발간하는 학술지는 학술진흥재단의 등재후보지가 되었다.

서로 함께 하는 공동체성이 상실되고 개인의 이해만 살아남아 있는 이 시대에 한종연과 같은 모임이 20년간이나 지속해왔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여건이 좀 더 나았더라면 보다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앞으로의 20년은 또 어떻게 될 것인가.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여건이 되는대로 최선을 다 할 뿐이다. 강증산이 말한 대로 ‘인간이 일을 도모하고 하늘이 일을 완성하는 시대’가 아니라 ‘하늘이 일을 도모하고 인간이 일을 완성하는 시대’가 조속히 온다면 무슨 걱정이 있을까마는 주위의 상황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전통을 자랑하던 인문학 연구소도, 유명한 인문학 잡지도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문을 닫고 있는 현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과거가 아무리 찬란했어도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그것이 바로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회원과 독자 여러분들의 격려와 지원만이 보다 희망찬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동력이고 연구소를 존속시키는 유일한 자산이다.

지난 한 해 종교계에는 유난히도 대형 사건이 많았다. 사학법 재개정,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학력위조사건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종교계가 직.간접으로 연관되었다. 최근에는 MBC의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대형교회의 비리를 연속으로 고발하여 기독교 보수층과 마찰을 빚고 있고, 새로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다수의 각료와 비서가 특정 교회 인맥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종교적 편향성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또한 통일교는 ‘통일가정연합’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다가오는 4월 총선에 대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 권력과 종교 시장의 문제가 부각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이는 우리사회에서만 겪고 있는 일이 아니다. 전 세계 많은 종교계가 지식정보 사회와 세계화에 적응하기 위해 정치와 경제와 같은 세속사와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고 그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 현대사회에서는 이제 종교만의 고립된 세상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이미 인문학적 가치에 바탕을 두지 않는 현대인의 욕망은 인간적 감동에 무감각하고 메마른 권력과 시장에 물들어 버린 것이다. 초창기에《종교문화비평》은 종교현상에 대한 객관적이고 학적인 이해를 추구하는 데 중점을 두었으나, 최근에는 비평의 영역을 확장시켜 종교현상에 담긴 우리사회의 근본 문제까지 다루고 있다. 지난 《종교문화비평》12호에서는 ‘종교와 인권’의 문제를 제기한 바가 있고 이번 호에는 ‘종교와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종교와 인권’의 문제가 정치적 민주주의와 종교의 문제라면, ‘종교와 신자유주의’ 문제는 경쟁적 시장만능주위와 종교의 문제이다. 종교시장에 만연된 물신주의가 그 핵심이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현실에 뿌리를 두고 살고 있는 신앙대중에게는 피할 수 없는 삶의 기제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다수의 공공복리를 지향한다면, 시장경제는 경쟁 속에서 승리한 승자의 독식을 지향한다. 양자의 가치는 서로 상극적이고 대립적이다. 따라서 경제발전을 위해서 시장이 필요악이라면 그것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적 견제가 필요하고, 반대로 과도한 민주주의가 경제적인 원동력을 앗아 간다면 경쟁을 생명으로 삼는 시장경제의 위축이 일어나지 않도록 시장의 기능을 회복시켜야 한다. 서로의 상생을 위해서는 양자의 균형발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종교현상에서도 양자의 문제를 똑같이 제기할 수 있다. 다수의 민주주의가 상실되면 폐쇄화된 종교적 권력, 즉 성직자의 독재와 횡포가 일어나며, 종교시장의 질서가 인간적 가치를 지향하지 못하고 경제논리에만 치우치면 탐욕스러운 물신주의가 횡행하게 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번 호의 특집에서는 종교적 시장의 논리와 그에 대한 종교계의 반응을 검토하는 특집을 마련하였다.

일반 논문 5편은 모두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되었다. 우선 월남한 개신교인이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지를 분석한 논문과 한국 가톨릭 생태운동의 특징을 파악하고, 나름의 방향을 제시한 두 편의 논문이 돋보인다. 필자 모두 월남 개신교인의 사회적 성격 및 종교 생태운동의 연구에 매진해 온 분들로서, 우리에게 많은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여말 선초의 묘지명과 비문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죽음관의 변화를 밝혀낸 논문도 눈길을 끈다. 문헌에 머물지 않고, 자료의 범위를 넓혀 연구하려는 자세가 인상적이다. 엘리아데에 관한 두 편의 논문이 포함되었는데, 각각 엘리아데의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엘리아데의 문학적 상상력을 분석한 연구이다. 엘리아데 연구의 심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만하다.

주제서평의 대상은 지난 백 년 동안 이루어진 중국 종교학의 흐름을 검토한 책이다. 국배판으로 500쪽이 훨씬 넘는 분량으로 여러 분야에서 진행되었던 중국 종교 연구 동향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한국 종교학의 성격과 비교한다면 그 특징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질책을 바란다.


윤승용(종교문화연구소 소장,seyoyun@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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