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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티벳을 말하고 있는가


누가 보아도 호감을 갖게 마련인 리처드 기어의 손목에는 항시 염주가 걸려있다. 그는 여기저기를 다니며 자신이 열렬한 티벳 불교 신자임을 선전한다. 또한 달라이 라마가 세계 각지를 누비며 설법은 물론 각종 평화 행사에 참여 하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 분이 나타나는 주변에는 각양각색의 인종들이 들끓고 있다. 간화선에 식상한 한국의 불자들이 그런 모임의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이다.

많은 사람들이 등짐을 지고 불적지를 순례한 후 라닥이나 네팔을 거쳐 티벳 망명정부가 소재하는 다름살라를 찾는다. 그곳에서 달라이 라마를 친견하고 그 분에게서 정신적(종교적) 감화를 받는다. 그리고 이런 여행을 끝낸 다음 이 순례객들은 적지 않은 양의 순례기와 여행담을 쏟아내고 있다. 티벳과 연관된 이런 지역을 다녀온다는 일은 이국적 정취를 맛보기위한 여행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상과는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소위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차별성을 철저하게 의식한다. 그래서 이런 곳을 다녀온 사람들은 [거듭났다]는 간증적 고백까지 쉽게 늘어놓는다.

그런가 하면, 신장 고속열차를 타고 라싸를 다녀오게 되면 너무나 편한 여행이라 지구 마지막 불적지를 순례한 것이 아니라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여행한 것이 되어 버린다. 편할 대로 편해진 21세기의 나는, 지금 8세기 티 송 데 첸이 받아들인 이래 시간의 침식을 받지 않은 불교를 직접 보고, 체험하고 돌아온 것이된다.

최근 티벳에 대한 붐이 일고 있다. 가히 프랑코파일(Francophile)이나, 인도파일(Indophile)에 필적할만하다. 불란서적인 것은 모두 좋고, 인도적인 것은 모두 옳다고 하는 태도가 티벳으로 옮겨온 듯하다. 그러나 티벳 열풍은 무척 복합적이다. 세속적인 이슈와 종교적인 차원의 뒤얽힘과 과거와 현재의 혼재 양상이 그것이다. 얼마전 서울 시청 앞에서 벌어진 ‘Free Tibet’ 과 ‘One China’를 구호로 내세운 젊은이들의 충돌에서도 이런 얽힘과 혼란을 본다.

그러나 티벳붐의 복합성은 요즘만의 현상은 아닌 것 같다. 그 열풍의 도화선을 찾는다면 초마 드 코로스(Alexander Csoma de Koros 1784-1842)를 들 수밖에 없다. 그는 종교적 열정이나 리차드 기어처럼 불교에 심취된 티벳광신자(?)의 자세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불교가 본격적으로 서구에 알려지기 이전이었으니 오히려 그는 서구 불교추종자를 배출시킨 당사자이다.

18세기 팽배해진 민족주의가 그를 그렇게 충동질 했다. 언어와 민족의 기원에 대한 시원성 찾기가 당시의 유행이었고 그것이 헝가리인인 초마 드 코로스를 크게 자극시켰다. 당시 그는 실크로드의 한 지점인 보카라(Bokhara)를 헝가리인 조상의 발원지라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실크로드를 헝가리로부터 거꾸로 소급해 올라갔다. 민족적 시원에 대한 열의 하나만 갖고 현대 문명의 어떤 도움도 없이 맨발로 헝가리에서 라닥까지 걸어 왔다. 그러한 그의 집념은 그냥 넘겨 버릴 일이 아니다. 아마 계속되었다면 라싸까지 걸어갔을 것이고 위그르에 도착했을 것이다. 결국 가난과 피곤으로 인도 북부 다질링에서 말라리아에 걸려 죽게 되었지만 말이다. 그 긴 여정 사이에 그는 영국 식민지 관료였던 윌리암 무어크로프트(William Moorecroft)의 도움으로 라닥에서 티벳어를 연구하게 된다. 그는 최초의 <티벳어 문법>, <티벳 영어사전>, <번역명의 대집>을 편찬하여 공전절후의 티벳 연구를 위한 도구들을 마련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그가 [티벳학의 아버지]로 추대되는 계기가 된다. 그러나 무어크로프트는 그에게 재정지원을 하면서 다음 말을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한 언어에 대한 지식의 습득은 일종의 상업적인 가치를 배제할 수 없고. 아마도 정치적인 가치까지 마저 지니는 것일 수 있다.”

초마 드 코로스는 민족주의적 자각과 제국주의의 정치적 가치를 합성시켜 오늘의 티벳학 연구의 단초를 열었다. 얼마 후 일본에서는 티벳불교 발견에 대한 공로로 그에게 [헝가리 보살(菩薩)]이란 희한한 칭호를 부여했다. 결국 '티벳의 발견'이나 '티벳의 각성'에는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그리고 종교성이라는 3원적 요소가 그물처럼 얽혀 있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동양의 모든 나라들이 서양 제국주의의 희생물이 되었지만 유독 티벳만이 벗어난 듯 보인다. 그래서 지난 세기까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 인상은 그대로 서양인들에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까지 그대로 전승되고있다. 원형 그대로를 보전한 고대문명의 현존이 티벳이라고. 그리고 현대에 와서 중국의 침략으로 이 원형이 파괴되고 있다며 아쉬워하는 것이다.

샹그리 라의 전설은 아직도 살아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티벳을 현실 속에 위치시키려하지 않고 동양학자나 불자들의 이상향만으로 삼으려 한다. 티벳은 역사 속에 살아 움직이는 삶의 현장이다. 달라이 라마는 생불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분명히 정치 지도자이다. 중국의 정치적 페인팅에 걸맞지는 않지만 또 다른 의미의 정치인임에 틀림없다. 비폭력의 정치력도 지난 세기의 이상적 이념이 아니고 현재의 구체적인 정치적 아젠다(Agenda)이다. 그리고 그 속에는 다양한 종교 행위의 표현이 들어 있다.

티벳을 우리가 타자화시켜 문화관광, 종교체험, 영성체험을 위해 잠시 다녀가는 새로운 샹그리 라는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민주화·자유화라는 서구적 가치가 그대로 티벳의 현장에 적용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Free Tibet'은 티벳에서 종교적 이상향을 벗겨 내라는 구호로 들어야 할 것같다.

이민용(영남대 교수, minyonglee@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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