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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호트, <다윈안의 신-진화론 시대의 종교에 대하여>, 김윤성 옮김, 지식의 숲, 2005, 439쪽

책 소개

과학과 종교는 언제나 서로 적대적일까? 저자는 이 책에서 바로 이런 물음에 대한 답변을 들려준다. 그는 다양한 과학 분야 중에서 다윈주의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는 진화학(진화론)에 초점을 맞추어, 과학과 종교가 또는 다윈과 신이 서로 적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풍성하게 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호트는 다윈주의가 생명에 관해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과학이 자연과 존재의 깊이를 이해하는 있어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현대에는 과학이 비과학적 신념으로까지 발전하여 오히려 우리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종교와의 상호보완적인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 소개

 

존 호트

지은이 _ 존 호트(JOHN F. HAUGHT)
1942년에 출생하여 1964년에 볼티모어 소재 세인트메리스 대학교를 졸업하고 아메리카 가톨릭 대학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오랫동안 재직하며 과학과 종교에 대한 연구를 주도해 온 대표적인 학자이다. 가톨릭 평신도 신학자이지만 개신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과의 대화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이면서, 신학적 성찰을 우주론, 진화론, 생태학 등의 과학적 성과와 결합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현재 미국 워싱턴에 있는 조지타운 대학교의 토머스힐리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조지타운 과학ㆍ종교연구센터의 소장도 맡고 있다. 전공은 계통신학이며 과학, 우주론, 진화, 생태학, 종교를 아우르는 주제들의 연구에도 몰두하고 있다. 또한 권위 있는 학술상인 ‘오언 개리건 상’(2002)과 ‘소피아 상’(2004)을 수상했다. 저서로 『신과 진화에 관한 101가지 질문(RESPONSES TO 101 QUESTIONS ON GOD AND EVOLUTION)』(2001, 지성사), 『다윈 이후의 신(GOD AFTER DARWIN: A THEOLOGY OF EVOLUTION)』(2000), 『과학과 종교 상생의 길을 가다(SCIENCE AND RELIGION: FROM CONFLICT TO CONVERSATION)』(1995, 들녘) 외에 10여 권이 있다. 현재 가족(아내 애벌린과 두 아들)과 함께 버지니아 주 알링턴에 살고 있다.

목차

머리말 | 서론

1 다윈의 진리와 종교

2 독법의 문제

3 자연의 깊이

4 절망보다 더 깊이

5 진화의 이면

6 도킨스보다 더 깊이

7 설계보다 더 깊이

8 깊은 다윈주의와 종교

9 다윈 이후의 진리

10 다윈과 신들

11 죽음보다 더 깊이

12 더 깊은 신학

13 다윈, 신, 그리고 외계 지능체 탐사

옮긴이의 말 | 주(註) |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진화론의 시대에 과학과 종교를 어떻게 화해시켜 조화를 이룰 것인가

인간은 태초부터 자신을 포함한 지구상 생명의 근원에 대해 끝없는 의문을 가져 왔다. 그런데 그 긴 역사에 견주어 비교적 최근인 1859년 영국의 찰스 다윈이 이성과 과학을 등에 업고 『종의 기원』을 펴낸 이후 세계는 창조론과 진화론이 맞서는 구도로 변했다. 오늘날 진화론은 대부분의 비(非)종교인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보편적인 생명기원설이 되었다.
한편, 지난 1925년 미국 테네시 주에서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제기한 ‘원숭이 재판’에 이어, 최근에 창조론과 진화론의 대립이 또다시 부상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주장에 힘을 얻어 지적 설계론 교육 논쟁이 법원으로까지 갔다. 펜실베이니아 주의 도버 시교육위원회가 고교 생물 시간에 진화론뿐만 아니라 ‘지적 설계론’도 가르쳐야 한다고 결정한 것을 두고 연방법원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진화론과 지적 설계론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 헌법상의 정교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며 소송을 냈다.
과학과 종교는 언제나 서로 적대적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하지만 과학자와 종교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그 둘을 서로 화해할 수 없는 숙적으로 여긴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 이런 통념을 벗어날 길은 없는 걸까? 저명한 신학자이자 조지타운 대학교 석좌교수인 존 호트는 신간 『다윈 안의 신』에서 바로 이런 물음에 대한 답변을 들려준다. 그는 다양한 과학 분야 중에서 다윈주의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는 진화학[진화론]에 초점을 맞추어, 과학과 종교가 또는 다윈과 신이 서로 적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풍성하게 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호트는 다윈주의가 생명에 관해 많은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과학이 자연과 존재의 깊이를 이해하는 있어 분명한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현대에는 과학이 비과학적 신념으로까지 발전하여 오히려 우리의 시야를 방해하고 있으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종교와의 상호보완적인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며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진화의 신학’이라는 인식의 열린 공간으로 우리는 안내한다.

신간은 ‘깊이’와 ‘기준’에 있어 여느 책과 커다란 차별성을 보인다. 원제가 ‘다윈보다 깊이(Deeper Than Darwin)’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저자는 각 장별 논제에 대해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심지어 논란 중인 ‘지적 설계론’에 대해서도 뚜렷한 비판적 기준을 제시한다.

1장에서 호트는 자연에 대한 과학의 견해와 종교의 견해가 공존할 수 없는 것처럼 오해를 받아 온 까닭이 무엇인지 해부함으로써 논의를 시작한다. 호트에 따르면 그 까닭은 놀라운 발전을 거듭한 과학이 이제 자연을 남김없이 모두 설명해 냈으며, 특히 다윈 이후로 이 점이 더욱 자명해졌다는 통념에 있다. 하지만 호트는 이것이 그야말로 단지 통념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대신에 그는 자연에는 그 어떤 과학으로도 다 설명할 수 없는 깊이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한다.
2장에서 호트가 과학과 종교 간의 갈등에 대한 해법의 실마리로 제시하는 것은 ‘설명의 다양성’이라는 소박한 현실이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방식이 다르듯이, 자연이라는 책을 읽는 방식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과학이나 종교는 서로 분리되거나 대립하기보다는 상보적으로 기능하는 다양한 독법들 중 하나다. 그런데 이들이 각기 자신의 독법만이 유일하게 옳다고 주장할 때 문제가 생긴다. 과학과 종교에서 이는 각각 우주적 문자주의와 성서적 문자주의로 나타난다. 호트는 이런 태도가 차원을 달리하는 다양한 설명들을 제멋대로 뒤섞는 혼성적 독법이라고 비판한다. 순수한 과학적 방법을 유물론이나 유신론 같은 형이상학과 뒤섞는 이런 독법은 단지 자연의 표면만 읽을 뿐이다. 자연의 깊이를 읽기 위해서는 설명의 다양성과 조화를 인정하는 열린 태도가 필요하다.

3장에서는 설명의 다양성을 인정했을 때 자연이 얼마나 놀라운 깊이를 드러내는지를 보여 준다. 그 깊이는 우주적 문자주의에 빠진 유물론적 진화학자들이나 성서적 문자주의에 빠진 창조과학자들과 지적 설계 이론 추종자들이 끝내 감지할 수 없는 훨씬 더 깊은 차원에 있다. 호트는 문자주의의 오류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과학과 종교는 자연과 존재의 깊이에 다가가고자 하는 인간 열망의 진정성에 근거한 과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서 과학과 종교는 서로에게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는 더 깊은 차원을 열어 준다.
4장에서는 과학과 종교 간에 깊이를 향한 이런 협력과 상호 작용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 그 깊이 속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종교라고 이야기한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과 같은 분과 과학들은 모두 환원적이고 부분적인 설명만을 제공하며, 과학적 명료성이란 이런 한계의 대가로만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과학이 명료성을 추구하는 한 이 한계는 필연적이다. 호트는 바로 이 지점, 즉 과학이 끝내 다 설명하지 못하고 남겨 둘 수밖에 없는 곳에서 종교가 더욱 풍성한 설명과 이해를 펼친다고 말한다.
5장에서는 우연성, 불변성, 깊은 시간이라는 진화의 필수 요건들 덕분에 오히려 종교의 설명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진화의 필수 요건들은 진화가 일회적 사건이 아닌 지속적인 이야기가 되게 하며, 세계가 이야기인 한 거기에는 은유와 상징의 원천인 시적·종교적 설명이 필연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어지는 여러 장에서 호트는 깊이를 읽지 못하게 가로막는 잘못된 입장들을 비판하면서 그 대안을 모색한다.
6장에서 호트는 잘못된 두 가지 입장을 비판한다. 하나는 과학과 종교가 절대 공존할 수 없다는 ‘갈등’ 입장이다. 호트는 이 입장이 설명의 다양성을 거부하는 경직된 시각의 산물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유물론적 과학자든 근본주의적인 종교인이든, 이들은 똑같이 우주와 성서에 대한 단 하나의 설명만 인정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쌍둥이나 다름없다고 본다. 다른 하나는 과학과 종교는 본질적으로 서로 무관하다는 ‘분리’ 입장이다. 호트는 이 입장이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과학과 종교의 창조적 만남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본다.

두 입장에 맞서, 호트는 과학과 종교가 진정한 의미의 ‘협력’을 이룰 수 있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과학적 설명은 종교적 이해를 심화시키는 핵심 동력이자 토대가 되며, 종교적 사고는 과학 탐구의 가치를 긍정하고 부단한 추구를 계속해 갈 동기와 의미를 제공할 수 있다. 종교는 과학 발견의 토대 위에 굳건히 서야 하며, 과학은 종교의 목소리에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로써 과학과 종교는 깊이를 향한 여정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풍성하게 하는 과업을 하며 함께 나아갈 수 있다. 여기서 호트는 이런 협력의 전망을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것으로 진화론적 유신론(또는 진화의 신학)을 제시한다.
7장에서는 이번에는 종교 진영에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지적 설계 이론을 비판한다. 이 이론은 한때를 풍미한 창조과학이 설득력을 상실하면서 그리스도교 진영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열렬히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 호트는 이 이론이 이미 오래전에 폐기 처분된 철학적 설계 논증의 재탕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일축한다. 자연의 복잡하고 미묘한 설계가 저절로 생겨날 수는 없으며 따라서 그 뒤에는 분명 모종의 설계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궁극적 설명의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는 신의 존재를 처음부터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이로써 모든 걸 설명하려 하기에 실상 아무것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8장에서 호트는 신에 대한 관념이 단지 유전자의 생존이라는 진화의 절대 과제에 적응한 뇌의 부산물이라는 진화심리학, 다윈주의 인류학, 종교생물학 등의 주장들을 비판한다. 이런 주장들이 유전자에 인간과 비슷한 주체성을 허위적으로 부여하는 오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체성은 과학의 설명 바깥에 놓여 있으며, 거기서 여전히 과학이 아닌 다른 설명, 즉 종교의 설명이 필연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9장에서 진화생물학이 본질상 유물론적이므로 신에 대한 생각과 결코 공존할 수 없다는 철학적·과학적 통념을 비판한다. 이에 대한 호트의 답은 간단하다. 진화생물학은 경험적 이론이며 따라서 경험을 넘어서는 실재인 신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과학적 설명의 차원을 벗어나는 일이다. 이보다 더 깊은 설명의 차원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 이와 같이 과학과 종교의 여러 진영에서 개진된 편협한 입장들을 비판한 후에, 이제 호트는 다윈이 그려 낸 세계에 부합하는 진정한 진화의 신학을 구축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한다.
10장에서는 이를 위해 먼저 종교가 정말 깊이에 대한 궁극적 설명이라면 도대체 왜 그토록 수많은 신들이 존재했다 사라졌으며, 왜 그토록 수많은 종교들이 존재해 왔는지라는 문제를 해명한다. 11장에서는 죽음이라는 난제와 대면한다. 이어 1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진화의 신학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그가 진화하는 세계에 부합하는 새로운 신학의 토대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미완의 우주’에 대한 생각이다. 우주는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생성되는 중이다. 우주가 미완성인 것은 존재의 궁극적 깊이가 또는 유신론적 용어로 말하자면 신이, 절대적이고 완전한 자신과는 진정 다른 존재를 창조한 것에 필연적으로 따르게 마련인 본질적 속성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13장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 지구와 이 우주에서 눈을 더 멀리 돌려 이제껏 실현된 적도 없고 아마 한동안은 실현될 법하지 않은 가능성, 즉 외계 생명이나 외계 지능체와 만나게 될 가능성에 대한 상상이 열어 주는 또 다른 통찰의 지평으로 나아가 ‘진화의 신학’을 존재하는 세계와 존재 가능한 세계 모두에 걸친 원대한 비전으로 전화시킨다.
신간은 종교, 특히 유신론에 속하는 그리스도교와 절대 공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였던 진화의 문제를 신학적 성찰 속에 깊숙이 끌어들이는 작업을 통해, 과학과 종교의 만남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으며, 그 만남이 궁극적 실재(신), 우주, 생명, 그리고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해 얼마나 풍성한 통찰을 열어 주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수많은 과학자들, 철학자들, 인류학자들, 종교학자들, 신학자들, 시인들의 사유와 논의를 종횡무진 누비며 새로운 ‘진화론 시대의 종교’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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