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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학술활동

2014년 4월 월례포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4. 7. 15. 17:14

2014년 4월 종교문화포럼


* 일 시: 2014년 4월 19일(토)


* 장소: 한종연 연구실



◎제1발표



발표자: 장현주(이화여자대학교)


제 목: 송원명宋元明 시기 신선 여동빈呂洞賓의 서사와 도상에 관한 연구


발표요지


宋, 元, 明의 세 시기, 대략 800년의 시간 동안 신선 呂洞賓은 생명력을 유지해 왔으며, 사람들은 宋代의 독
특한(eccentric) 신선이었던 呂洞賓을 기억하고 그리워하여 결국은 그를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오게 만들었다. 呂洞賓 형상이 문자텍스트와 시각텍스트의 여러 매체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현되어 온 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신선 呂洞賓에 대한사람들의 믿음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신선 呂洞賓은 사람들의 메시지를 신에게 전달하는 매체였고, 신은 신선 呂洞賓에게서 사람들의 바람을 들었다. 즉, 呂洞賓은 초자연적인 것과 인간사이의 소통매체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형상은 문자텍스트와 시각텍스트처럼, 시간과 공간을 매개하는 매체였던 것이다. 또한, 양가적

(ambivalence)이고 기이한(eccentric)한 형상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이었고, 神仙이라는 상징적인 존재의 역할 가운데 하나는, 바로 현실사회에서 우리를 구속하는 한계들, 즉 지위와 신분과 경제적 차이 등을 초월하여현실계의 균형추 역할을 해주는 것으로, 신선 呂洞賓의 형상도 宋代 이후로 오랜 시간 동안 이러한 역할을 해왔다. 신선 呂洞賓은 허구적 존재이지만, 세계는 “반드시 허구와 사실이 반반 공존하나, 잘 엮으면, 그것이 있었던 일인지 없었던 일인지를 물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須是虛實相半,要情景造極而止,不必問其有無也)”. 인류는 오랫동안 부단히 영원불멸의 세계를 추구하고 실현하려 노력하였으며,신선 呂洞賓도 바로 그러한 선상의 산물이다. 그는 관념속에서 우리에게 영원의 세계를 제시하고, 실제적으로는 宋, 元, 明 시기의 정신과 문화를 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呂洞賓을 하나의 열린 텍스트로 보고, 다양한 시각으로呂洞賓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제2발표



발표자: 도태수(한국학중앙연구원)


제 목: 내면적 실천으로서의 ‘믿음’과 인쇄매체의 내면화 과정

논평자: 방원일 (서울대학교)


발표요지


우리는 보통 종교를 이야기 할 때, ‘교리’로서의 ‘믿음’을 전제하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에 대한 이해는 두 가지 점에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믿음이라는 양상 자체가 제도화된 종교적 믿음으로 고착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믿음의 양상이 각각의 문화와 역사적 환경에서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특정종교(기독교)의 교리적 내용으로 이해함으로서 특정종교의 대표적인 믿음에 고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교리화된 믿음은 믿음을 인간의 내면적 사유로 고정해서 이해한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물론 믿음이 인간의 내면적 사유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인간의 사유는 단순히 정신적 과정에만 고정된 것이 아니다. 정신적 사유로서 믿음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실천활동과 상호관련을 갖게 된다. 따라서 믿음은 인간의 ‘내면적 실천’을 형성하게 되며, 그 과정에서 인간의 물질적 실천과 관련된다. 본 논문은 지금까지 기독교적 맥락에서 인간의 정신적 사유로 인식되어오던 음을 ‘내면적 실천’이라는 보다 확대된 인식으로 바라보고자한다. 또한 내면적 실천으로서의 믿음이 인쇄매체라는 물질적 조건과 조우하여 어떤 변화의 과정을 수반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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