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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민, 神들의 전성시대… 어떤 신을 믿을까?

 

 

[경인일보]2013년 05월 20일 월요일 제12면

 

 

부자되게 해달라고 기원하고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빌고…
나와 당신이 생각하고 믿는 신은 항상 누군가의 신이다
우리가 신을 바라보는 눈이곧 신이 우리를 보는 눈이기에

프랑스의 천재 작가로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3부작 소설 '신'이 모두 우리말로 번역, 출판되었다. 신이 되고자 하는 후보생들의 치열한 분투와 경쟁이 무수한 신화와 종교의 이야기와 접목되면서 흥미진진한 판타지의 세계로 독자를 이끌어간다. 아마도 신이 되고픈, 아니 최소한의 신적인 능력이라도 갖길 바라는 인간의 끊임없는 열망과 그 좌절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닌지.

'직장의 신'이란 드라마가 공중파 TV에서 방영되고 있다. 직장에서 우리는 할 수 없지만 거침없이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해대는 주인공은 '신'이라 칭해진다. '경영의 신', '공부의 신', '게임의 신' 등등 온갖 '신들'도 회자된다. 보통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이 있거나 많은 것을 성취한 사람들을 그렇게 '신'이라 부르곤 한다. 그런 '신'과 같은 사람이 되고픈 우리의 소망은 온갖 신들을 만들어내어 추앙한다.

인도에는 3억3천의 신들이 있다고 한다. 창조의 신도 있고 창조한 것을 보존하고 유지토록 하는 신도 있으며 그 모든 것을 파괴하는 신도 있다. 전쟁의 신이 있는가 하면 평화의 신도 있고, 사랑의 신이 있는가 하면 증오의 신도 있다. 직업마다 그 직업을 관장하는 신도 있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만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신들을 대하며 산다고 한다. 그래서 신들은 인도인들의 애환과 성패를 좌우하면서 그들의 삶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신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존재여서 사람들은 늘 신에게 무언가를 바라고 기원한다. 사랑과 성공도, 건강과 행복도, 그리고 죽은 후의 환생이나 환생을 하지 않는 영원한 저세상도 신을 향한 사람들의 기원이다.

오직 하나의 신만 있다고 믿는 종교인들도 있고, 신들 사이에 최고신을 정점에 두고 무수한 신들의 서열을 정하여 신전을 만든 판테온(Pantheon, 萬神殿)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신도 인정하지 않는 종교도 있고,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하여간 사람들은 신을 믿고 경배하면서 자신들의 소망을 간청한다.

우리가 자유를 빼앗겨서 노예처럼 살아가게 될 때 우리를 해방시켜 달라고 신에게 간절히 기도한다.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나 불치의 병으로 고통과 고난에 빠져 있을 때에도 그것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신께 용기와 지혜를 구한다. 피할 수 없는 가난에 허덕이게 될 때 신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신자가 있겠는가!

영원히 죽지 않게 해달라고, 아니 적어도 150살 정도는 살게 해달라고 신에게 간청한다면 어떨까? 거액이 걸린 복권을 사면서 당첨이 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는 것도 신에 대한 믿음의 행위가 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우리와 같은 조건에 있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도 신앙이라 할 수 있을까? 운동 경기를 하면서 자신들보다 뛰어난 상대편을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어떨까? 신이 들어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그런데 만일 우리가 신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신과 같은 능력을 조금이라도 갖게 된다면 그것을 무엇에 쓸 것인가?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여 보통사람들로부터 신이라 불리게 될 정도라면 그 재능을 어디에 어떻게 사용할까? 누구의 기도를 들어줄 것인가? 어떤 기원을 풀어줄까? 어떤 일에 신적인 재능을 쓸까?

그렇다. 신은 항상 누군가의 신이다. 내가 생각하고 믿는 신은 나의 신이고 당신이 생각하고 믿는 신은 당신의 신이다. 우리가 신에게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원하면 우리가 믿는 신은 부자의 신이다. 속박으로부터의 자유를 신께 빌면 우리는 해방의 신을 믿는 것이다. 신에 대한 우리의 기원이 우리가 믿는 신을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신을 바라보는 눈이 곧 신이 우리를 보는 눈이다.

/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출처링크: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37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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