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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민, 과학과 종교는 다르기 때문에 상보적일 수 있다

 

 

[경인일보]2012년 11월 19일 월요일 제12면

 

 

 

아직도 천동설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달은 지구 주위를, 지구는 태양의 주위를, 태양은 은하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은 초등학교 학생들도 아는 과학의 상식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태양이 떠오르고 달이 진다고 말한다. 한 해가 가면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고 말해야 과학적인 발언일 수 있겠지만, 우리의 감각은 지구를 도는 것처럼 보이는 태양에 더 민감하다. 지구가 자전(自轉)하고 공전(公轉)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느끼지 못한다.

분명 우리의 눈에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보이고, 석양을 남기며 산 너머로 지고 있는 붉은 해가 보인다. 정월 초하루(설날)의 태양은 새해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바라보며 두 손 모아 소원을 빈다.

몸이 아픈 환자에게과학자로서 의사의 치료와 성직자의 기도, 모두 필요해
세계와 인간에 대한 다른관점아름다운 조화 이뤄가야

사람들이 세계를 보고 인식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망원경으로 달의 분화구를 볼 수도 있지만, 계수나무와 방아 찧는 토끼를 볼 수 있는 마음의 눈도 있다. 하늘에 맞닿아 있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고,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는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분명 다르지만 모두 의미 있는 삶이다.

과학과 종교의 갈등은 해묵은 논쟁거리이나 여전히 뜨거운 관심거리가 되곤 한다. 특히 진화론과 창조론의 대립은 우리 사회에서조차 '교과서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큼 계속 재연되고 있다. 진화론에서는 모든 생명이 진화의 과정을 밟으며 인간도 진화의 산물로 본다.

창조론은 신이 인간도 생명도 세계도 모두 창조했다고 주장한다. 물론 두 이론에 모두 다양하고 복잡한 견해들이 있고 더 많은 입장들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두 주장은 전혀 다른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진화론은 과학의 관점이고 창조론은 특정 종교의 관점이다. 진화론에 대한 논의는 과학적 탐구의 과정이고, 창조론의 수용은 믿음의 문제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 시간에는 과학적 이론인 진화론을 가르쳐야 한다. 종교적 설교 시간에는 창조론을 믿으라고 할 수 있다.

종교적 창조 이야기가 과학시간에 가르쳐져서는 안 되고, 설교 시간에 진화론을 비판하는 것도 적절치 못하다. 망원경으로 달의 토끼를 찾으라고 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모습을 보며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까?

중요한 점은 과학과 종교가 비록 서로 다른 관점으로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상보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의사는 과학자로서 병을 진단하고 치료를 한다. 성직자는 병의 치유를 위해 기원할 수 있다. 환자에게는 의사도 필요하고 성직자도 필요할 수 있다.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지만, 자식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부모의 모습은 자녀들을 열심히 공부하도록 할 수 있다. 음식은 영양가가 있어야 하지만 맛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의 삶에는 과학적인 성과도 도움이 되지만 종교적인 믿음도 삶을 의미있게 할 수 있다.

진화론의 주창자였던 찰스 다원도 가장 아름답고 훌륭하게 진화를 해온 생명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고 술회한다. 신이 창조한 생명을 최고로 가치있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생명을, 자연을 사랑하고 보호하며 아름답게 보존하는 일에 진화론자도, 창조론자도 힘을 합칠 수 있지 않을까?

임종을 앞둔 환자의 고통을 경감하기 위한 의사의 노력과, 환자의 구원이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성직자의 간절한 기도가 함께 어우러지는 호스피스 병동의 모습에서도 과학과 종교의 아름다운 조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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