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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민, [21세기人文學 리포트] `聖人의 가르침` 에 대한 믿음이 종교다

 

[MK뉴스]2012.10.05

 

 

 

얼마 전 예수의 아내를 거론한 문건이 발굴돼 소개되면서 우리 언론에서도 갖가지 반응의 기사가 실렸다.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소재이기는 하다. 더군다나 그 유명한 하버드 신학대학원 교수가 문건을 공개했기에 더욱 그러하다.

 

종교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현상을 접하게 되면 자못 당혹스럽다. 믿을 만한 역사적 사실인지를 묻는 사람들도 있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를 묻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사실이라면 기독교가 어떻게 될지를 묻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서 마치 연예인의 사생활을 들추어내고 재미있어하는 것과 같다. 추문일수록 더 수다를 떨듯이 그렇게 모두의 화제가 되어 있다. 사람들이 왜 그런 사안에 관심을 가질까?

종교를, 삶의 `궁극적 관심`이라고까지 말해지는 종교를, 그저 흥밋거리로만 삼는 것 자체가 인간의 삶에 대한 경시는 아닌지 되묻게 된다. 부귀영화와 명예와 권력보다 더 중요한 삶의 가치를 찾는 사람들의 삶에서 종교만큼 중요한 것이 더 있겠는가!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는 것이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라는 것은 명확하다.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믿는 것은 그의 삶과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고, 그 믿음대로 산 사람들의 삶을 통해 전승되는 믿음이다. 부처를 깨달은 자로 믿는 것도 그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받아들여진 것이고, 그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통해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이 그의 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마호메트를 신의 계시를 받은 예언자로 믿고 고백하는 것도 그가 보여준 모범과 가르침 때문이고, 그렇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믿음이다.

 

종교적 믿음은 역사적 사실에 기초한 것이라기보다는 삶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다. 삶을 통해 고백되는 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인 근거 때문에 종교적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 어떤 과학으로도 종교적 믿음을 증명할 수 없고 종교적 믿음을 갖게 하지도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믿는가는 삶을 통해서만 증명될 수 있다.

 

종교를 공부하는 것은 `믿음`의 역사적 사실성과 과학적 증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며, 그러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수의 부인` 문건이 세인들의 관심과 흥미가 되는 것은 아마도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의 삶의 모습 때문은 아닌지? 말로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오히려 부도덕하고 추한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은 아닌지? 예수의 `결혼`이나 `부인` `자식` 등에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것 자체가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보다 그런 것에 더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은 아닌지, 별별 상념이 다 떠오른다.

 

문득, 초기 종교학자의 한 사람인 독일계 미국인 요아힘 바하(J. Wach, 1898~1955)의 말이 생각난다.

"누구든지 종파나 교파에 상관없이 자신이 믿는 종교를 최고의 진리라고 믿는 사람만이 참된 종교를 가질 수 있다."

 

예수의 결혼이 최고의 진리일까? 부처의 열반 날짜가 최고의 진리일까? 무엇이 최고의 진리인가?

 

[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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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http://news.mk.co.kr/newsRead.php?sc=&year=2012&no=64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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