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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60호-한국의 귀신이 바라는 것(이용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5. 4. 23. 16:24

                              한국의 귀신이 바라는 것

 

       

     

                       
                              

 2015.3.31

 

 

 

        한국의 귀신은 소박하다. 시도 때도 없이 산 사람들의 꿈과 현실에 나타나서 산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다가도 누군가 나서서 자기 사연을 들어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조용해진다. 널리 알려진 아랑 이야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한 고을 원님의 금지옥엽이었던 아랑은 그녀를 짝사랑했던 통인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아랑은 그 고을에 새로 부임해 오는 원님에게 나타나지만, 아랑을 보고 놀란 원님은 부임 하루를 못 넘기고 죽는다. 이런 일이 되풀이되면서 그 고을은 두려움으로 뒤덮인다. 다행히 용기 있는 원님이 부임해 와 아랑이 자신의 사연을 전달하고 억울함을 풀게 되면서 고을은 다시 평화로워지고, 아랑은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귀신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들을 대면할 약간의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 약간의 용기를 내어 그들과 마주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면 된다. 자기 이야기를 다한 귀신들은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한국의 귀신은 자기들끼리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언제나 산 사람들을 향해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한국의 귀신 관련 이야기는 죽은 자인 귀신과 산 사람의 관계를 전제한다. 한국의 귀신 가운데서 가장 야단스런 귀신은 바로 자기 이야기를 들어줄 산 사람이 없는 귀신이다. 한국사회에서 죽은 자인 귀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죽은 자와 산 자를 이어주며 그럼으로써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대표적인 의례 메카니즘이 무속의 굿이다. 무속의 굿 특히 죽은 자를 위한 굿은 죽은 자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과정의 연속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굿의 과정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전한 죽은 자는 편안한 마음으로 저 세상을 향해 떠난다.

 

 

        그런데 자신의 답답하고 맺힌 사연을 말하고 그것을 들어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은 산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엉뚱한 생각인지 몰라도, 점집이 여전히 유지되는 것도 이런 사정이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이 점집을 찾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이유도 있지만, 한편으론 다른 곳에서는 말할 수 없는 내밀한 개인사나 가정사 등의 고민을 토로할 수 있기 때문일 것으로 여겨진다.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긴 어려워도 한국 사람들이 이전보다 훨씬 더 외로워지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학업, 취업 등의 이유로 가족들이 떨어져 사는 것이 일반화되고, 젊은 층의 결혼도 늦어져 1인 가구의 수가 갈수록 늘어간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이웃 간의 끈끈한 유대가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지도 못한다. 사회는 냉정하게 경쟁 일변도로 치닫고, 예전의 공동체적 관계를 뒷받침할 복지체계는 허약하기 그지없다.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은 이러한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통계에 의하면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1만4천427명으로, 하루 39.5명이 자살로 생을 마친 셈이다. 한 신문칼럼에 의하면, 자살에 병이나 사건, 사고로 인한 죽음을 합치면 현재 한국인의 죽음 가운데 이른바 자연사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심각한 것은 자살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세대가 10대, 20대, 30대이고, 40대와 50대의 사망 원인 2위도 자살이라는 점이다. 40대와 50대는 한국사회의 현재를 책임지는 중추 세대이다. 10대와 20대, 그리고 30대는 미래의 주역이 될 세대이다. 현재와 미래를 담당하고 담당할 세대에서 자살에 의한 사망이 수위를 다툰다는 것은,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맞물려, 한국사회가 심각한 상황에 봉착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10대에서 50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세대에 걸쳐 자살이 이렇게 높게 나타난다는 것은 자살이 말 그대로 개인적 죽음이 아니라 사회구조적 요인에 의해 초래된 사회적 타살일 가능성을 강하게 내비친다. 이런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자살을 초래하는 사회구조적 요인의 변화와 개혁도 필요하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에 대화와 소통의 다양한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은 고난과 슬픔, 고통 그 자체를 견디지 못하기 보다는 그것을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나눌 수 없을 때 그것에 굴복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삶과 죽음의 자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갈수록 죽음은 삶에서 회피되고 치워야만 하는 분리와 배제의 대상이 되어간다. 더 이상 죽은 자와 죽음의 사연을 듣고 공감하며 삶의 자리로 수용하지 않는다. 이처럼 삶과 죽음이 차단된 상황에서 무속의 굿판 외에 귀신들은 어디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혹시 산 자와 죽은 자의 소통의 부재는 산 자 사이의 소통의 부재를 반증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용범_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조교수
yybfolk@anu.ac.kr
최근 논문으로는 <동막도당굿의 특징-굿의 주체와 진행방식, 종교적 성격을 중심으로->, <개념과 실재: 민간신앙 인식에의 물음> 등이 있고, 저서로 《도시마을의 민속문화》(공저),《전통과 역사의 마을 조탑》(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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