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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64호-<심리치료>와 <종교>의 경계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6. 7. 29. 16:33

 

<심리치료>와 <종교>의 경계는?



 


 

2015.4.28

 

현대사회에서 종교는 하나의 자율적 영역으로 자신의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러한 경계의 와해는 이미 포스트모던 담론에서 언급된 것으로 ‘탈분화’(dedifferentiation)로 개념화할 수 있으며, 이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더니티의 주요 특징인 (기능적, 제도적) 분화가 극대화 혹은 ‘극분화’(hyperdifferentiation) 되면서 오히려 자율적 문화영역들 간의 구분이 의미를 잃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종교 영역의 ‘탈규제화’(deregulation)와도 연결된다. 즉 개인들은 자유와 선택을 강조하는 문화적 분위기에서 더 이상 전통에 의한 규제에 구속되지 않고 현 문화 안에 발견되는 상이한 제 종교적 그리고 비종교적 의미구조나 상징들을 결합시켜 자신들의 자율성과 정체성을 구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탈전통화’(detraditionalisation)를 의미하며, 권위적인 ‘진리’를 제시하는 제도종교 대신 “나에게 효과 있는 것”이 ‘진리’로 인식되면서 종교는 실용주의와 상대주의의 모습을 띠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후기산업사회의 문화소비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면서 개인들은 종교적 소속이나 의무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해당 사회의 문화적 저장소에서 구할 수 있는 종교적 아이템들을 필요에 따라 선택 혹은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제공된다. 뉴에이지를 ‘포스트모던 종교’라고 부르는 것은 이러한 제 특징들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뉴에이지라고 불리는 대안적 종교흐름은 종교적 그리고 비종교적(세속적/과학적) 영역을 넘나들며 그 내용에 다양한 요소들을 포함시키고 결합시켜 일종의 혼성물(pastiche)을 구성하여, 개인들의 다양한 선택과 실험을 유도하여 개인들이 보다 넓은 선택의 폭을 가지고 자신들의 정체성 혹은 라이프스타일을 자율적으로 구축하게 한다는 것이다. 뉴에이지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잠재력 개발이나 영적 성장을 목적으로 전통 동양종교의 수련방법과 현대 과학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심리학 내지 심리치료요법을 결합시킨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제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심리치료요법은 전통적인 정신의학/심리학의 치료법이 아니라 이를 토대로 하되 내적 치유, 의식(意識) 성장, 잠재력/영성 개발에 초점을 맞춘 대안적 심리요법을 말한다. 뉴에이지라는 문화적 흐름이 대안적 심리치료요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변형하며 상당 부분 흡수한 것이 사실이지만, 서구에서 기성 심리학/심리치료에 대한 반발로 이에 대한 대안이 추구되고 연구된 것은 뉴에이지 보다 시간적으로 앞서 간다. 따라서 대안적 심리치료의 발전을 서구 심리학의 역사적 전개 속에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서구 심리학의 전개는 흔히 네 흐름(세력)을 통해 기술된다. 첫 번째 흐름은 인간의 마음을 정신병리학 연구를 기반으로 접근하며 심리작용을 기본 본능의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한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정신분석학이며, 두 번째 흐름은 측정·관찰 가능한 인간의 외형적 활동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스키너(Burrhus Frederic Skinner)의 행동주의 심리학이다. 이 두 흐름은 20세기 전후 시작되어 50년대까지 심리학의 주류를 형성한다. 그러나 60년대 들어 기존 심리학의 -인간을 (정신분석학) 무의식적인 동기나 (행동주의) 환경적 자극에 의해 움직여지는 존재라고 하는- 기계론적 시각을 비판하면서 세 번째 흐름인 ‘인본주의 심리학’(Humanist psychology)이 등장한다. 후자는 건강한 대중에 초점을 맞추며 심리학은 실질적인 인간의 욕구에 민감해야하며 인간사회의 발전에도 부응해야한다고 강조한다. 무엇보다 후자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유의지와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으며,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창조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본주의 심리학은 6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잠재력개발운동’(Human Potential Movement)의 토대를 형성하며 집단치료(상담) 운동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서구 심리학의 네 번째 흐름인 ‘트랜스퍼스넬 심리학’(Tanspersonal psychology: ‘자아초월 심리학' 혹은 ‘초개아 심리학')은 이미 60년대 인본주의 심리학 내에서 태동되었으나 70년대부터 독자적인 진영을 구축하게 된다. 이 흐름은 종래의 심리학이 인간이 내재하고 있는 영성을 간과하고 사회적응적인 인격형성이나 자기실현이라는 인간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인간을 의식, 신체, 영성을 구비한 전인적(全人的) 존재로 파악하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자아초월’(transpersonal)이란 에고중심의 자아의식으로 부터의 초월을 의미하며, 인간의식이 확장되면 자아실현의 단계를 넘어 우주의식이나 신비체험과 같이 비일상적(변성) 의식상태에 이를 수 있음을 말한다. 자아초월 심리학은 기존의 심리학 이론과 동양 종교사상(불교)을 융합하여 심리학과 종교(영성)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영성적 심리학’(spiritual psychology)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렇듯 심리학 내지 이로부터 파생된 심리치료요법들이 단순히 심리적 질환의 치료를 넘어 개인의 잠재된 능력을 활성화하고, 내면을 탐구하고 더 나아가 의식확장의 중요한 수단으로 진화한 것은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자아초월 심리학은 전통적으로 종교적 이슈이던 초월(transcendence), (내면의) 신성, 인간의 궁극적 본성, 절대의식, 궁극적 의미와 가치 등을 다루면서 종교의 영역을 포섭하고 있다. 이러한 대안적 심리치료요법 -자아초월 심리학은 적지 않은 대학에서 심리학 정규과목으로 정착되면서 대안적 성격을 많이 잃은 것이 사실이다- 은 현대 종교문화의 흐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도 90년대 후반부터 인본주의 심리학에 기초한 신경언어프로그래밍(NLP: Neuro-Linguistic Programming), 로저스(Carl Rogers)의 인카운터(Encounter) 집단학습법, 자아초월 심리치료는 큰 반향을 일으키며 상담치료 관련 전문가는 물론이고 (불교)성직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이끌었으며, 독립적인 학회의 결성은 물론이고 기존 한국상담학회의 한 분과로 정착하였다. 특히 뉴에이지와 같이 비제도화된 종교영역에서 이들 이론과 치료요법은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변형되어 워크숍이나 강좌를 통해 전파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심리치료요법을 비롯하여 유사과학적인 치료요법까지 적극적으로 실험하고 있는 것은 명상·수련단체들이다. 동사섭(同事攝)은 로저스의 집단학습이론에 기초한 T그룹 워크숍(Training Group Workshop)으로부터 출발한 단체이며, 황토명상마을은 NLP를 핵심 프로그램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그 밖에 마음수련, 명상월드, 아봐타 코스, 미스틱로즈 (오쇼)명상센터, 단월드(심성수련) 등도 자신들이 개발한 심리치료요법을 적용하고 있다. 더 나아가 대안적 심리치료요법들은 제도종교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한국의 종교계가 심리치료/상담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는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한 예로 자아초월 상담학은 불교심리상담의 핵심부분으로 기능하고 있다.


 

‘종교의 심리치료화’ 혹은 ‘심리치료의 종교화’는 종교 영역의 확장일 수도 심리학 영역의 확장일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현대 종교문화의 빠른 변화 속에서 ‘종교’의 독립적 혹은 자율적 영역을 주장하기는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설사 정의를 통해 ‘종교’의 인위적인 경계를 설정하더라도 과연 이것이 종교학의 발전에 생산적인가라는 의문을 떨치기는 쉽지 않다. 필자는 단지 뉴에이지 현상을 연구하고자 하였을 뿐이나 결국 난해한 심리학 관련논문을 쌓아놓고 나오는 긴 한숨을 숨기며 본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woohairan@hotmail.com
논문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종교현상>, <New Age in South Korea>, 〈젠더화된 카리스마〉, 〈현 한국사회에서 합동천도재의 복합적 기능에 대하여〉등이 있고, 공저로는 《Religion in Focus》, 《신자유주의 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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