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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66호-지극히 사적인 연대기 또는 비망록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6. 7. 29. 16:48

 

지극히 사적인 연대기 또는 비망록




2015.5.12

 

 

열다섯 살 무렵으로 기억한다. 내가 무슨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님께서는 혀를 끌끌 차면서 옛날에 네 나이면 호패를 찼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나잇값을 하지 못한다는 꾸지람이었다. 지금도 나는 과연 나잇값을 하면서 제대로 살고 있는지 반성할 때가 많다. 그래서 가끔 시간 맞추기 놀이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내 나이와 주변 어르신들, 선생님들 그리고 선친의 나이를 연결시켜서 그 분들이 지금 내 나이였을 때가 언제인지, 내가 기억하는 그 분들의 모습은 어떠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다. 내가 힘겹게 살아내고 있는 현재라는 시간과 그 분들을 기억의 우물에서 길어올리는 회상의 시간을 짜 맞추어 배열하다보면, 내가 지금 어디까지 와 있나, 무엇을 해야 하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등의 물음이 자연스레 따라 나온다. 이렇게 하여 지극히 사적인 방식으로 편집된 연대기의 시간은 나를 반성하는 거울이 되기도 하고, 나를 채찍질하는 도구의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한국인의 스승으로 추앙받는 세종대왕의 양력 탄신일에 즈음하여 내가 기억하는 스승들의 모습을 하나씩 떠올리며 나 자신을 다잡으려 한다. 먼저 나학진 선생님. 내가 학부생이었을 때 지도교수이셨다. 졸업 논문이랍시고 원고지에 끄적거린 글을 보시고 엄청나게 꼼꼼하게 지적하셨다. 논문을 쓸 때 지켜야 하는 글쓰기 규칙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각주 다는 방법, 참고문헌 붙이는 방법 등등. 심지어 쉼표와 마침표 찍는 위치까지도... 한참 뒤에 내가 강남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게 되었을 때 “누가 왔다고?” 하시면서 강사 휴게실로 들어오시던 모습이 기억에 선하다.


 

정진홍 선생님은 석사 과정 때 지도교수이셨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한창 역사와 사회의 무게에 짓눌리던 내가 선생님과 면담한 적이 있었다. 고민을 털어놓다가 무언가에 북받쳤는지 눈물이 글썽했다. 가만히 들으시던 선생님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아야 행복하다는 요지의 말씀을 하셨다. 아마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갈등한다고 말씀드렸던 모양이다. 그 뒤에 나는 복잡했던 마음을 훌훌 털고 대학원 입학시험을 쳤다. 공부가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3년 동안 나름 열심히 고민하였다. 공부한다는 것, 사유한다는 것 등등. 지금도 그 시절이 내게는 제일 빛나는 순간이었다. 특히 강원도의 어느 휴양지에서 지도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보냈던 그 여름날 며칠과 바닷가 풍경은 내 기억에 고스란히 박혀 있다. 나는 선생님의 종교학 서설 초판본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찾아보니 1980년 6월 30일 발행으로 되어 있다. 1937년생이시니까 43세에 내신 책이다. 아니, 종교학을 위한 서시에서 낱말을 바꾸어야 한다고 일갈하시던 때가 마흔 셋의 나이셨다니! 5년 전의 나를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여전히 그 말씀을 화두로 삼고 있을 뿐 한 발짝도 더 나가질 못했다. 스승의 꽁무니에 붙어서 편안히 천리를 가려 했나보다. 앞으로 더 분발할 일이다.


 

박사 과정 시절의 은사 강돈구 선생님은 조금 별나신 분이다. 아마 당신을 스승이라고 말하면서 스승의 은혜 운운하면 손사래를 치면서 불편해 하실 것 같다. 소탈함의 경지를 넘어서 괴짜라고 여기는 분들도 많다. 그렇지만 내게는 분명 스승이다. 선생님께서 내게 주신 가르침 가운데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각인되어 있는 것은 사람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는 말씀이다. 제자들을 모두 하나같이 다 아끼고 그 앞길을 걱정하는 마음이 충분히 담겨 있다. 나는 그 말씀을 처음 들었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수업에 임하는 내 시각이 편향되어 있다는 강의 평가 응답을 읽고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소중하다는 말씀은 내가 평생 간직해야 할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선생님은 요즘 새로운 종교학을 구상하고 계신 것 같다. 오랜 현지답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필드워크를 중시하는 연구 풍토를 만들어 오셨다. 최근에는 현장 종교학과 영상 종교학의 결합을 모색하신다. 그것이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종교 문헌을 주로 다루다보니 현장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종교현상에 대한 경험과 감각이 많이 부족하다. 지금도 선생님을 열심히 따라다니며 내 공부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나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잊을 수 없는 스승이 또 한 분 계신다. 지금 이 세상에는 안 계신 윤이흠 선생님이다. 석사 과정 수업 때에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한국어를 갈고 다듬는 것은 언어학자나 방송국 아나운서만의 일이 아니다, 학자들에게도 중요한 책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좋은 문장을 짓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짧은 경구를 주셨다. “One sentence, one idea.” 이 규칙을 잘 지키면 대체로 좋은 글이 되거나 잘 읽힌다. 나는 지금도 글을 쓸 적에, 그리고 문장을 고치고 다듬을 때 선생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윤이흠 선생님, 평안히 잠드소서.

 

 

 


조현범_
한국학중앙연구원 조교수
hbthomas@aks.ac.kr
논문으로 <한말 태양력과 요일주기의 도입에 관한 연구>, <디지털 니르바나: 사이버 공간과 초월의 상상력>, <의례논쟁을 다시 생각함, 헤테로독시아와 헤테로글로시아 사이에서>, <선교와 번역: 한불자전과 19세기 조선의 종교 용어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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