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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교의 과학적 전통” 서술에 대한 단상

 

 

 

 news letter No.454 2017/1/24

 

 

 




유교의 ‘과학적 전통’에 대해서는 그동안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서구에서 비롯된 오늘의 근대과학을 잣대로 하여 ‘과학’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시기의 유교를 서술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연구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개념에 대한 치밀한 성찰 없이 현대에 통용되는 과학 개념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이를 기준으로 유교의 과학적 전통에 대해 논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문제는 전근대 시기 유교의 과학적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할 수가 있다.


오늘날 유교의 과학적 전통 문제에 대해 취하는 태도는 흔히 두 가지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유교적 사고를 서구 과학의 그것에 비해 열등한 것으로 보는 입장에 서서, 근대과학의 패러다임으로 볼 때 유교적 인식은 비과학적이며 따라서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척결해야 할 전근대적 사고방식이라고 주장하는 태도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는 입장에 서서, 인간이 자연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이용하는 모든 것을 과학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유교에도 서구와 비견할만한 훌륭한 과학적 전통이 있다고 주장하는 태도이다. 이러한 두 가지 태도는 비단 유교에만 국한되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사회의 전통문화 전반을 근대과학의 잣대로 바라볼 때 사람들이 흔히 취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전자의 태도를 취하는 이들은 서구의 근대과학만을 최고의 가치이자 절대적 기준으로 여긴다. 그리고 이를 근거로 하여 유교를 비과학적인 것이라 단정하고, 유교로 인해 한국사회가 발전하지 못하고 낙후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근대 시대 유교사회 속에서도 과학기술이 일정한 발전을 성취하였다는 객관적 사실 앞에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더욱이 이러한 견해는 ‘사회 발전’ 문제를 종교나 사상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관점이라 하겠으며,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오랫동안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고 현재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교문화 자체를 과학적인가 그렇지 않은가의 잣대에 의해 단죄하는 위험한 발상이라 할 수 있다. 특정 종교나 사상에 대해 그것이 과학적인가 아닌가를 논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한 일이겠거니와, 그 어떤 종교나 사상체계도 완전히 과학적이거나 완전히 비과학적일 수는 없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점에서 이런 생각은 시대착오적 사고라고 할 수가 있다.


반면, 후자의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고 서구뿐만 아니라 중국과 한국 등 유교문화권에 속하는 사회에도 독자적인 과학적 전통이 있었음을 주장하면서, 유교의 사유체계와 실천적 측면에 대한 검토를 통해 유교 속에 내포된 과학적 요소를 찾으려고 시도해 왔다. 이들은 제국주의 시대의 유산인 서구 중심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비서구사회의 전통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접근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 관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며, 또 이들의 노력에 의해서 중국과 한국의 전통 과학에 대한 연구가 축적됨으로써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과학 및 유교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진 사실 또한 중요하게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점은 있다. 서구의 근대과학을 기준으로 유교의 과학성을 논하는 접근법이 바로 그것이다. 유교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과학에 대한 기존 연구들의 접근방식을 보면 일반적으로 유교의 사상이나 활동 속에서 서구 근대과학의 기준에 적합한 요소들을 선별하고 이를 통해 유교에도 과학적 요소가 있었음을 논증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의 문화를 자체의 맥락에서 파악하지 못하고 외부의 기준에 맞춰 재단함으로써 실상을 왜곡할 위험성이 크다고 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오늘날 통용되는 ‘과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변하는 절대적 개념이 아니라 서구사회의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 이 점에서 기존의 유교의 과학성에 대한 논의는 겉으로는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 비서구문화의 독자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서구 중심적인 구도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것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유교가 ‘과학적’이었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논의 자체가 ‘근대과학’과 ‘근대성’의 수용과정에서 생겨난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서구과학의 역사가 과학사의 유일하고 보편적인 기준인가 하는 질문과 함께 유교의 과학적 전통에 대해서 무엇을 기준으로 기술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 한 번 제기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는 가운데 비로소 오늘날 우리가 과학이라고 부르는 개념의 구체적 함의와 범위가 정해질 수 있을 것이며, 유교를 비롯한 비서구사회의 문화에 나타나는 과학적 요소를 무엇을 기준으로 기술할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이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한국유교의 과학적 전통”에 대한 재서술이 이루어짐으로써, 한국의 유교전통에 대한 이해와 한국과학사에 대한 이해 모두가 보다 깊어지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김호덕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serkha1202@hanmail.net
〈서양철학, 맹자에게 길을 묻다 :프랑수아 줄리앙의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 :도덕의 기초를 세우다》에 대한 서평〉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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