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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63호-동물에 대한 생각 하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7. 3. 28. 21:19

 

동물에 대한 생각 하나 



 news letter No.463 2017/3/28

 

 

 

 

 

 


나는 육식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육식을 부러 찾지는 않는다. 명절이나 잔치와 같은 특별한 때나 아니면 사람들과 어울려 회식을 할 때 고기를 먹게 된다. 물론 요사이는 고기가 흔해지고 형편상 외식이 잦아지면서 이전보다는 육식을 자주 접한다.


그런데 요사이 고기를 먹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는 일이 많아졌다. 그것은 갑자기 동물을 사랑하게 되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집에서 개나 고양이를 키우면서 특별한 체험을 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그것은 지난 겨울에 시작해서 지금껏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조류독감으로 인한 닭과 오리에 대한 이른바 ‘살처분’ 때문이다.


조류독감의 전파를 막겠다는 미명 하에 정부는 건강한 닭과 오리에 대해서까지 무차별적으로 예방적 살처분을 벌였는데, 그 과정에서 산 채로 떼죽음을 당한 닭과 오리가 무려 3,500만 마리에 이른다. 가금류 살처분에 반대하는 단체에 의하면, 지난 13년 동안 7,300여만 마리의 가금류가 살처분 되었다고 한다. 2010년 겨울에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도 다음 해 3월까지 소와 돼지 350여만 마리가 살처분 되거나 생매장되었다.


아무리 인간이 먹기 위해 기른다 할지라도 그동안 그렇게 많은 수의 동물을 살육했다는 사실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기는 쉽지 않다. 2년 전 가을에 안동의 마을답사를 나갔을 때 텅 비어있는 큰 우사를 발견한 적이 있다. 큰 우사를 비어둔 이유를 궁금해 하고 있는데. 구제역 때 다 자란 멀쩡한 소를 생으로 죽인 후로는 다시 소를 키울 수 없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조류독감과 구제역으로 살처분 당하거나 생매장된 동물에 대해 안타까워 하는 것을 동물에 대한 단순한 측은지심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의 생명체이고 그 많은 생명을 그렇게 짧은 시간에 사라지도록 한 사실을 가볍게 넘기기는 어렵다. 구제역 이후 소를 다시 키우지 못하는 주민도 그런 생각이었을 것이다.


몇 년 전 일이다. 까치 한 마리가 자동차 도로 한 가운데 내려 앉아 깍깍 대면서 자동차들이 아주 가깝게 다가갈 때까지 날아가려 하지 않았다. 웬일인가 살펴보니, 길 한가운데 다른 까치 한마리가 쓰러져 있었다. 까치의 다급한 날개짓과 급하게 내지르는 소리로 짐작하건데, 그 까치는 쓰러진 까치를 놔둔 채 혼자 날아갈 수 없어서 자동차 도로 한 가운데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 까치들도 그들 나름대로 고통과 기쁨을 나누는 소통이 가능하고 동료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고, 새삼 동물들도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단지 인간의 먹잇감이 아니라, 인간과 다르면서도 인간과 동등하게 상호교류하는 독립된 존재로서 동물을 파악하는 인식은 한국문화에서 그렇게 낯선 것만은 아니다. 그러한 인식을 잘 보여주는 것이 설화이다. 설화 속에서 동물은 신이나 인간과 결합하여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영웅을 탄생시키기도 하고, 다른 세계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로 나타나기도 하며, 어려움에 처한 인간을 인도하는 인도자로서 활약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과 삶을 공유하고 인간의 도움에 보답할 줄도 아는 존재이기도 하다.


농경이 확대되고 많은 동물들이 길들어지면서 야생 상태의 동물들이 가졌던 종교적 능력과 신비함이 탈색되었다고 하지만, 가축화된 동물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비인간적(?), 비생명적이지 만은 않았다. 예컨대 집에서 소를 키우던 외양간에는 우마신이 좌정해 있고 소가 새끼를 낳거나 아플 경우 물을 떠놓고 빌기도 하였다. 동물에 따른 차이를 부정할 순 없지만, 집에서 기르는 동물은 식구처럼 여기는 것이 보통이었다. 동물을 키우는 환경 역시 동물과의 교감이 가능한 환경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동물 사육방식은 잔혹하기 그지없다. 돼지를 예로 들면, 어미가 핥거나 어미와 접촉할 수없는 분만 틀에서 태어나, 태어나자마 서로 싸우거나 물어서 상처를 내지 않도록 이빨과 꼬리를 잘리고 항생제를 맞고, 3주가 지나면 어미와 헤어지고, 두 달 만에 형제들과 헤어진다. 그리고 6개월 후에는 생을 마감한다. 암퇘지들은 3년 정도를 사는데, 일년에 2~3번 인공수정을 통해 새끼를 낳아야만 한다. 이렇게 비참한 환경에서 자란 동물의 고기는 음식으로서도 부적격할 것이다.


이러한 이른바 공장제 동물 사육방식은 철저한 인간 중심적 생명관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간 외에 다른 생명을 동등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한 사고방식에 의하면 세상은 오로지 인간들만의 세상이다. 그러나 인간만이 주체로 행세하는 세상은 왠지 삭막할 것 같다. 신의 말도 들을 수 있고, 귀신도 등장하며, 동물은 물론 나무나 돌 같은 자연물, 나아가 주변 물건과의 교류가 이뤄지는 세계가 보다 더 다채롭고 흥미로울 것 같다.

 

 


이용범_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교수
최근 논문으로 <일제의 무속 규제정책과 무속의 변화: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한국무속과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비교: 접신(接神)체험과 신(神)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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