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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65호-다시 찾은 4월의 봄, 희생과 종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7. 4. 11. 21:11

 

다시 찾은 4월의 봄, 희생과 종교


news letter No.465 2017/4/11

 

 

 

 

 

 


정지된 시간이 새로 흐르듯이 찾아온 4월의 봄, 눈부신 여린 싹과 막 피는 봄꽃들이 자아내는 아스라한 풍경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울컥 감격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봄의 생명력에 안도하며 시선을 빼앗기면서도 여전히 통증은 사라지지 않는다. 만유가 다시 생동하는 이 계절에 도무지 희생이 아니었던, 침묵으로도 어떤 말이나 행위로도 채 표현할 수 없었던 이해불가한 참혹한 죽음이 기입되었기 때문이리라. 봄의 부활과 재생, 구원에 내재된 죽음과 희생이라는 생명의 조건은, 참으로 역설적으로 도저히 제의화하여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죽음과 희생으로 인해 수수께끼로 되돌아오며 희생과 종교의 의미에 대해 되묻고 곱씹게한다.


일반적으로 희생이라는 말을 제외하고 종교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자기부정과 비움, 자비와 사랑, 봉사와 같은 윤리종교적 개념들도 한층 들어가면 희생이라는 말과 무관하지 않다. 소중한 것, 혹은 자기 자신이 파괴되는 것을 감수하며 기꺼이 드린다는 의미의 희생이야말로 종교의 고귀한 가치인 사랑과 자비의 표현으로 여겨지는 탓이다. 이 같은 종교적 희생의 의미는 폭력을 억제하고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고대 희생제의의 희생양 메커니즘이 자기희생이라는 내적인 형태로 전환되면서 획득한 보편적 종교적 가치로 여겨지곤 한다. 희생에 의한 질서창조와 유지를 지향하는 종교가 ‘희생을 통한 구원의 종교’로 변형된 것이다.


폭력, 테러, 전쟁과 연루된 종교에 대한 비판과 자성에는 종교 본래의 희생과 봉사, 사랑과 자비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당부와 경계가 이어진다. 희생과 구원의 종교 언어로 희생과 통합의 종교를 비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이 승화된 희생의 의미가 가지는 가치를 수긍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개운하지 않게 하는 몇 가지가 있다. 중요한 계기가 된 신의 희생제의, 즉 스스로 제물이 된 신의 자기희생은 결국 인간에게도 거룩과 경건을 위한 자기희생의 논리를 부과하며, 이는 어쩌면 더욱더 정교해진 대리희생의 기제가 아닌가? 순교와 종교적 대의를 내세운 자살테러 모두에서 이러한 자기희생의 논리가 작동한다면, 희생시키는 것과 희생하는 것은 결국 모두 희생 메커니즘의 일부일 것이다. 게다가 고대 희생제의에서도 이미 희생주체와 제물의 등치와 희생제물과 제의를 받는 신의 동질성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자기희생으로서의 희생제의의 개인화, 내면화는 혼돈의 파괴로서의 창조, 다른 존재의 파괴와 희생 없이는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인간존재의 역설과 균열을 온전히 종교적으로 다룰 수 있는 틀일 수 있는가? 희생제물은 정결하고 흠이 없는 유용한 동식물(살아있는 물질로서의 유기체) 중에서 주로 선택된다. 바타이유에 의하면, 이처럼 유용한 제물을 파괴하고 철저히 무용하게 소모하며 드리는 희생제의는 인간이 제물이 된 동식물과 자신의 내재적 유사성의 감각을 상기하는 계기가 될 뿐 아니라, 모든 존재를 유용성에 종속시키는 현실 질서를 넘어 인간이 도구화와 수단화로부터 벗어나게 할 수 있는 열린 틈이 되어왔다. 그렇다면 종교사에서 희생제의를 통해 인간이 지속해온 동식물과의 관계와 윤리는 인신공희의 변형이자 승화라고도 할 수 있는 자기희생의 종교성 속에서 과연 어떻게 대체될 수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먹는 동물과 먹히는 동물사이에는 초월성이 없다. 먹고 먹히는 관계가 두 동물 사이의 차이는 드러낼 지라도 우열을 결정짓지는 못한다. 어떤 동물이 다른 동물을 먹는다면 분명한 것은 그 둘 사이에 유사성이 있는 것이라는 바타이유의 통찰은 생생한 이미지로 인간과 신과 동식물 세계의 연속성의 감각을 유지하고 동시에 분할해온 희생제의가 동식물을 먹고 살아가며 그 세계를 지배하는 위치에서 문화를 형성해온 인간조건에 기반한 여전히 강력한 종교적 틀임을 깨닫게 한다.

 

 


안연희_
선문대학교 연구교수
논문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원죄론의 형성과 그 종교사적 의미>, <“섹스 앤 더 시티”: 섹슈얼리티, 몸, 쾌락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 다시 읽기> 등이 있고, 저서로 《문명 밖으로》(공저), 《문명의 교류와 충돌》(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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