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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76호-비를 비는 사람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7. 6. 27. 16:46

 

    비를 비는 사람들      

 

     news  letter No.476 2017/6/27

 


 

 

 

 


       드디어 단비가 내렸다. 오랜 가뭄이 언제 해소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정말 반가운 일이다. 메말라 갈라져버린 논밭이 점차 제 모습을 되찾고, 바닥을 드러낸 저수지의 수위도 서서히 차오르고, 제한 급수에 들어갔던 지역들도 고비를 잘 넘길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근 몇 년간 이맘때가 되면 유례없는 가뭄의 현황을 보도하는 뉴스가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자료들을 보면, 한반도 전역의 연강수량은 1973년부터 2016년까지 오히려 꾸준히 조금씩 증가하는 추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6월의 강수량은 전체적으로 감소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특히 2012년부터 급격히 줄어든 한반도 전역의 6월 강수량은 예년에 비해 심각하게 부족한 실정이다. 한발(旱魃)이라는 흉한 별명이 붙을 만큼 가뭄은 언제라도 달갑지 않은 것이지만 근년의 6월 가뭄은 큰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극심한 6월 가뭄이 몇 년간 계속 반복되고 있는 탓에, 최근 몇 년 동안 단오(端午)를 거쳐 하지(夏至)가 다가올 즈음이면 전국 곳곳에서 행해지는 기우제의 소식이 꽤 많이 들려온다. 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단오를 하루 앞둔 5월 29일 충북 제천시 한수면에서는 월악산 송계계곡 와룡대를 제장으로 삼아 기우제를 거행했고, 단오인 5월 30일에는 강원 강릉시 단오제단과 영월군 봉래산 정상에서도 기우제가 행해졌다. 6월로 접어들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기우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6월 2일에는 충북 진천군 문백면 소두머니 용굴, 충남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 산제바위에서, 5일에는 충북 괴산군 괴산농협 농산물집하장, 충남 서산시 부석면 도비산 정상, 경기도 안성시 안성천변 등에서도 기우제가 행해졌다.


       기우제는 하지(夏至)를 전후로 더욱 많이 행해진다. 올해도 6월 14일에 충북 음성군 백마산에서, 16일에는 충남 홍성군 백월산, 충북 음성군 금왕읍과 원남면에서, 17일에는 대구시 달성군 옥포면과 충남 당진시 송악읍에서, 19일은 경북 칠곡군 매봉산과 충북 음성군 가섭산 봉화대에서 기우제가 행해졌다. 21일 하지에는 경북 영천시 청통면, 충남 아산시 둔포면, 충남 서천군 문산면 천방산 천방루, 충남 서산시 지곡면 부성산 오현각 등에서 기우제가 거행됐다. 22일에는 경남 합천군 오도산에서 대한불교총화종 대해사와 합천고려병원 장례식장의 주도로 기우제가 행해졌고, 강원 인제군 백담사, 충북 청주시 흥덕구 부모산 모유정, 충남 예산군 오가면 신장리 국사봉, 전북 고창군 공음면 동학정 등에서도 거행되었는데, 특히 이날 공음면에서는 제를 지낸 후에 산 정상에 장작을 쌓아놓고 불로 태우기도 했다. 23일에는 충북 보은군 오성산 삼년산성, 충남 서산시 고북면 연암산, 경남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 등에서, 24일에는 강원 강릉시 구정면 칠성산 용왕골과 경남 거창군 건흥산에서도 비를 비는 의례가 행해졌다. 

       요즘처럼 과학이 발달한 시대에 누가 기우제 따위를 지낼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가뭄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겪어본 곳이라면 어디에나 비(雨)를 비(祈)는 사람들이 있다. 강우의례는 동서고금에 걸쳐 가장 널리 분포하고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행해져온 의례의 하나다. 오래된 문자, 유물, 문헌뿐만 아니라 근현대의 민족지 자료, 민속학적 조사, 인류학적 기술, 구비전승, 다양한 매체의 기사 등을 통해서도 강우의례의 역사·문화·지리적 광범위성은 충분히 예증된다.


      그렇다면 강우의례는 왜 이토록 널리 행해지고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행해지는 강우의례의 주관자와 참여자들이 강우현상의 인과적 원리에 대한 최소한의 과학지식조차 결여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또, 강우의례가 초자연적인 강우행위자나 주술적인 강우원리와 관련된 어떤 명시적인 믿음(explicit beliefs)이나 나름의 확신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서만 행해진다고 단정할만한 근거도 없다. 즉, 강우의례의 문화적 성공은 사람들의 무지(無知)나 특정한 믿음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현대 문화 속에서 행해지는 강우의례에는 무척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평소 자신의 지식이나 신념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면서도 강우의례를 기획하거나 참여하게 되는 사람들의 정치적 판단, 생업 및 경제 상황, 대인관계 등을 비롯하여, 해당 지역의 인문지리적 환경, 참조할 선례의 유무, 국가 기관이나 종교 단체의 개입 여부, 권위자 및 전문가의 참여 여부뿐만 아니라, 앞에 언급된 모든 것들에 작용하는 다양한 심리적 기제들과 인지적 제약들 등 수많은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함으로써 강우의례가 호소력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화현상으로서의 강우의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강우의례의 신념체계나 실천의 의미를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오히려 비를 비는 ‘사람들’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단지 강우의례만을 대상으로 삼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을 것 같다. 이는 종교문화 전반에 대해서도 충분히 유의미한 관점을 환기시킨다. 흔히 사람들은 종교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각 종교의 교리, 의례, 공동체, 경험 등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요소들이 종교의 ‘핵심’을 드러내 준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 ‘핵심’은 권력, 담론, 슬로건 등의 형식으로 제시될 뿐이며, 실제의 문화 속에서 사람들의 종교적인 생각과 행동은 많은 경우에 그런 ‘핵심’조차 벗어난 채로 발견된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으로 가득한 실제의 종교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의 핵심 요소들’에 대한 전통적이고 규범적인 관점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오히려 그 요소들을 만들어내고, 향유하고, 이용하고, 다투고, 의심하고, 벗어나고, 심지어 무관심하거나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삶 자체에 더욱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종교가 문화 속에 널리 퍼지게 된 이유는 각 종교의 교리, 의례, 공동체, 경험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 때문이다.

 


구형찬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민속신앙의 인지적 기반에 관한 연구: 강우의례를 중심으로>, <멍청한 이성: 왜 불합리한 믿음이 자연스러운가>, <‘인간학적 종교연구 2.0’을 위한 시론: ‘표상역학’의 인간학적 자연주의를 참고하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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