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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79호-로마교, 런던교, 이교, 열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7. 7. 18. 21:35

 

로마교, 런던교, 이교, 열교      


 


                            news  letter No.479 2017/7/18

 

 

 

 

 

 


       지금 필자가 글을 쓰고 있는 <종교문화 다시 읽기> 란을 통해 이미 여러 글쓴이가 언급하였듯이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기독교 관련 기사와 논의가 기독교계만이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도 상당히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은 종교개혁의 두 당사자인 가톨릭과 개신교가 막강한 교세를 자랑하고 있다. 따라서 요즈음 가톨릭교회는 가톨릭 나름대로, 개신교는 개신교대로 자신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현재 한국 천주교와 개신교의 관계는 어떠한가? 둘 사이의 관계를 측정하는 하나의 방법은 상대방에 대한 호칭을 검토해 보는 것이다. 친구나 연인, 선후배 사이와 같은 인간관계의 경우 서로 어떤 호칭을 사용하는가를 보면 둘 사이의 관계를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종교집단의 경우에도 호칭에 대한 검토를 통해 어느 정도 그 관계를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상대방에 대한 이름 짓기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한 이름 짓기를 수반한다. 따라서 둘 사이의 관계를 면밀히 검토하기 위해서는 자기에 대한 명명과 타자에 대한 명명을 동시에 살필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사회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천주교인은 개신교인을 개신교 신자나 개신교인이라고 부르고, 개신교인은 천주교인을 천주교 신자나 천주교인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처음부터 그랬던 것일까? 해방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시기에 따른 편차가 있기는 하지만 해방 이전 천주교가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주로 사용한 것은 ‘성교(聖敎)’와 ‘진교(眞敎)’, ‘가톨릭’과 ‘천주교’다. 말 그대로 ‘성교’는 거룩한 가르침에 근거한 성스러운 종교라는 의미이며 ‘진교’는 진리에 근거한 참 종교라는 뜻이다. 실제로 해방 이전에는 《성교요리문답》, 《성교감략》, 《진교자증》, 《진교절요》 등과 같은 제목을 지닌 천주교 서적이 널리 유통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가톨릭’은 ‘보편적’이라는 의미를 지닌 희랍어에서 기원한 것으로서 기독교 역사 초기부터 ‘the holy catholic church’라는 표현을 통해 전승되어 온 용어다. 이와 달리 ‘천주교’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한자문화권 선교 과정에서 라틴어 ‘Deus’가 ‘천주’로 번역되는 과정과 맞물려 탄생한 용어다. 따라서 한국 천주교는 초기부터 자신을 지칭할 때 ‘가톨릭’과 ‘천주교’를 자연스럽게 병용해 왔다.


       그러면 당시 천주교는 개신교를 어떻게 지칭했는가? 가장 많이 사용한 명칭은 ‘열교(裂敎)’ 다. 이 용어는 유일하게 참된 교회인 가톨릭교회로부터 ‘찢겨 나간 교회’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분파 이후에도 그 자체 안에서 무수한 세포분열을 일삼는 교회 즉 분열을 ‘본성’으로 하는 분파적 집단이라는 냉소적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다. 따라서 이 용어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단일성’ 이미지와 대비되면서 개신교 교파의 ‘다양성’을 공략하는 전략적 수사로 활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당시 천주교는 개신교 교파들이 ‘예수교’(耶蘇敎)’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매우 심기가 불편했다. 왜? 천주교의 입장에서 볼 때 ‘예수교’라는 명칭은 ‘천주교’와 사실상 동일한 위상과 의미를 지닌 용어로서 ‘참된 교회’만이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다. 그런데 참된 교회인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열교’ 집단들이 그처럼 성스러운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사실상 ‘참칭’이다. 천주교회는 서구의 예를 들면서 이러한 문제제기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서구에서는 개신교 교파들이 스스로를 지칭할 때 장로교, 감리교, 회중교회처럼 교회조직의 원리에 근거한 명칭이나 루터란, 칼빈니안 등처럼 교파 창시자의 이름에 근거한 명칭을 사용할 뿐이다. 개신교 교파들을 통칭할 경우에는 프로테스탄트 혹은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스스로를 가리킬 때 ‘감히’ ‘예수교’와 같은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동아시아의 개신교 교파들은 왜 ‘예수교’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인가? 주지하다시피 가톨릭 선교사들보다 한자문화권에 뒤늦게 진출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천주교와의 차별화를 위해 ‘예수교’라는 명칭을 선택하였다. 그들이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에서 파생한 ‘갱정교’라는 용어보다 ‘예수교’라는 용어를 선택한 것은 서구 기독교역사에 대한 전이해가 부족한 동아시아 사회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즉 ‘저항’이나 ‘반항’의 의미가 들어 있는 ‘프로테스탄트’보다는 신앙의 대상인 ‘예수’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예수교’가 선교전략상 유리하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당시 천주교는 ‘성공회’라는 용어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하였다. 열교 집단의 하나에 불과한 영국교회가 동아시아에 사회에서 ‘성공회’로 자칭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문자적으로 보면 성공회는 ‘the holy catholic church’의 한자 표기로서 ‘성스러운 공교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성스러운 공교회’ 즉 ‘성공회’는 천주교 하나뿐이다. 따라서 성스러운 공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열교 집단은 이 명칭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영국 혹은 런던에서 시작된 열교에 대해서는 ‘영국교’ 혹은 ‘런던교(倫敦敎)’라고 불러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이는 성공회를 국지화시키는 수사 전략이다.


       해방 이전 천주교는 다른 기독교 교파들을 지칭할 때 열교와 함께 ‘이교(離敎)’라는 용어도 사용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이교(離敎)’는 타종교 즉 ‘이교(異敎)’가 아니라 ‘참된 교회’로부터 갈려 나간 교회들로서 희랍정교회와 러시아정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면 이교와 열교의 차이는 무엇인가? ‘이교’는 초대 교회의 근본 교리와 의례를 그대로 유지하지만 교황의 권위(베드로수위권과 교황무오성)를 인정하지 않는 반면, 열교는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초대 교회의 근본 규례마저 자의적으로 변경한 교회들이다. 이처럼 이교는 열교보다는 천주교에 가깝지만 그리스도의 후계자인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참된 교회에서 벗어난 것으로 간주된다.


       지금까지는 천주교의 입장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개신교는 자기 자신과 천주교를 어떻게 호명했는가? 앞서 언급했듯이 해방 이전 개신교가 자신을 지칭하던 대표적인 용어는 ‘예수교’였고 ‘갱정교’라는 용어를 간헐적으로 사용하였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인가 ‘기독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해방 이전 개신교 교파들은 교단명칭을 표기할 때 예수교장로회, 기독교감리회, 예수교성결교 등처럼 ‘예수교’나 ‘기독교’를 앞에 두고 자신의 교파 명을 붙였다.


       그러면 당시 개신교는 천주교를 어떻게 불렀는가? 가장 빈번하게 사용한 명칭은 ‘로마교(羅馬敎)’이다. 이는 미국 선교사들의 용법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은 건국 초기부터 개신교가 주류 종교를 차지하였고 소수파인 가톨릭은 반가톨릭 운동 등에 의해 적지 않은 억압과 탄압을 받았다. 그러한 과정에서 가톨릭을 비하하는 ‘로마주의(Romanism)’라는 용어가 등장하였다. 로마주의는 교황제도로 대변되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특수한 성격을 비난하는 부정적 용어로 사용되었다. 최초의 내한 선교사의 하나인 언더우드는 가톨릭이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고 ‘로마’를 전하고 있다고 비판하는가 하면 가톨릭을 ‘로마주의의 형태로 변질된 기독교’라고 비난하였다. ‘마리아교’나 ‘우상교’라는 용어도 로마주의와 함께 가톨릭을 비판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용어였다.


       모두에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천주교는 열교(개신교), 런던교(성공회), 이교(동방정교회) 등의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개신교 역시 로마교(가톨릭)라는 용어를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타자에 대한 호칭에서 부정적 의미를 지닌 용어를 철회하였다는 점에서 천주교와 개신교의 상호 인식은 상당한 정도 성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자기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에서도 그러한가?


       현재 천주교는 자신을 가리킬 때 ‘가톨릭교회’라는 용어를 ‘천주교’와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이미 언급했듯이 ‘가톨릭교회’라는 용어는 ‘보편교회’를 의미한다. 거의 모든 기독교 교파가 함께 사용하는 <사도행전>에 등장하기 때문에 이 용어는 로마 가톨릭교회만이 아니라 성공회, 동방정교회, 개신교에도 적용되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천주교를 가리킬 때 ‘가톨릭교회’ 대신 ‘로마 가톨릭교회’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천주교의 경우 스스로를 지칭할 때 ‘로마가톨릭’이라는 말보다는 그냥 ‘가톨릭’이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편의상 ‘로마’라는 글자를 생략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교회만이 진정한 가톨릭교회라는 무의식적 전제가 작동하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한편 한국 개신교는 스스로를 지칭할 때 ‘개신교’라는 용어보다는 ‘기독교’라는 용어를 훨씬 더 많이 사용한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기독교’라는 용어는 동방정교회, 로마가톨릭교회, 개신교 등을 포괄하는 ‘총칭’이다. 따라서 학계에서는 개신교를 가리킬 때 ‘기독교’ 대신 ‘개신교’(Protestantism) 혹은 ‘개신 기독교’(Protestant Christianity)로 표기한다. 서구의 경우에는 개신교인들이 스스로를 지칭할 때 프로테스탄트라는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면 한국의 개신교가 ‘개신 기독교’ 대신 ‘기독교’라는 말을 선호하는 것은 편의상 ‘개신’이라는 글자를 생략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교회만이 진정한 기독교회라는 무의식적 전제가 작동하는 것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이진구_
종교문화비평학회 종교문화비평 편집위원장
논문으로는 <미국의 문화전쟁과 '기독교미국'의 신화>, <최근 한국 개신교의 안티기독교 운동과 대응양상>, <다문화시대 한국 개신교의 이슬람 인식:이슬람포비아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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