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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89호-여중생폭행사건과 폭력을 대하는 태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7. 9. 27. 14:22

 

여중생폭행사건과 폭력을 대하는 태도      

 

 

 news  letter No.489 2017/9/26

 

 

 

 

 

 



       고등학생이 된 딸이 얼마 전 페이스북에 들어가는 게 무섭다고 했다. 인터넷 댓글폭력 같은 게 떠올라 가슴이 철렁했지만, 가능한 침착하게 이유를 물었더니, 부산 여중생 폭행사건이 알려지고 페북에 유사한 사건의 사진과 동영상이 하루에도 수십개씩 올라오는데 무심코 열어보면 너무 끔찍해 놀라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이내 뉴스에 강릉, 아산, 서울, 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의 여중생폭행사건 기사가 연일 오르내렸고, 분노에 찬 댓글과 소년법 폐지청원운동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사건들에 대한 소위 어른들의 댓글이나 반응은 어떻게 어린 여학생들이 그렇게 폭력적일 수 있는가 대한 개탄과 분노, 비난과 욕설, 인면수심의 이런 행위는 학생이라 해도 엄벌해야 근절될 거라는 입장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십대 자녀를 둔 입장이라 더 남의 일 같지 않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기사들을 읽다보면 피해학생들의 두려움과 굴욕, 고통과 보복에 대한 공포 등의 트라우마가 짐작되고 가해 학생들의 무감각한 잔인함과 폭력성, 오히려 피해자 탓을 하는 뻔뻔함에 분노가 치미는 게 사실이지만, 이 학생들이 학습했을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된 무감각한 폭력과 양육강식의 갑을문화가 떠올라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댓글들이나 관련 기사들의 흐름도 뭔가 불편하다. 가감없는 원색적인 감정들이 표출된 댓글 뿐 아니라, 이 사건 보도기사나 청소년 범죄에 대한 대책에서도 어른스러운 태도가 발견되지 않는다. 소년법폐지나 개정운동은 일부 공감되지만 아이들이 폭력을 일상적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자기표현의 방식으로 여기게 된 것은 우리 사회의 폭력 문화의 한 단면이라는 인식과 반성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게다가 왜 계속 ‘여중생폭행’인가 하는 의문도 든다. ‘여중생폭행’이라는 프레임은 ‘여성’과 ‘학생’에 대해 이 사회가 부과하고 있는 이미지나 통념과 대비되는 ‘폭행’과 결합되면서 강화된 효과로 이러한 사건들을 부각시키고 특수한 유형으로 개별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동시에 ‘여성’과 ‘학생’에 대한 통념은 더 강화된다. 그러한 프레임 속에 유통되는 차마 보기 힘든 피투성이가 된 피해자들의 사진이나 동영상은 잔인하고 끔찍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사진과 영상의 소통자체가 또한 폭력적으로 느껴진다. 사적인 대화창이나 사진과 영상은 피해학생들이 자신의 고통을 알리는 SOS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그들을 모욕하고 굴욕을 준 폭력의 효과적인 방식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SNS를 통해 일파만파 퍼져나가는 폭력의 이미지들에서 그 경계는 분명해보이지 않는다.


       여러 면에서 ‘여중생폭행사건’을 대하는 현재 우리 사회의 태도는 다분히 선정적이고 원색적이다. 전혀 성찰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못하다. 여중생폭행사건과 같은 청소년 폭행사건에 대해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정직한 태도도 아닐 것이다. 모든 폭력은 구체적이고 폭력이 가하는 고통과 상처는 치환불가능한 개별적인 것이지만, 그것이 특수한 사례로만 이해되고 구조화되고 문화화된 폭력에 대한 성찰과 지속적 관심이 없다면 의미있고 실효성있는 해법을 찾기 힘들다. 법은 폭력을 막는 강제적인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이다. 인간 사회가 발전시킨 그 제도적 장치는 가능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적합하게 계속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제도화된 폭력으로서의 법만으로 폭력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태도는 그야말로 폭력의 문법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인간의 문화는 종교를 포함하여 예술이나 스포츠 등 폭력을 다루고 해석해온 다양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건이 한때 들끓고 사그라드는 여론으로 소비하지 않고 진지하게 접근하는 방식은 그 사건을 맥락화하는 동시에 일반화하면서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서 현 한국사회의 폭력적 구조와 문화를 근본적으로 따져보고, 폭력 일반과 인간의 문화에 대해 되묻는 계기로 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안연희_
선문대학교 연구교수
논문으로 <아우구스티누스 원죄론의 형성과 그 종교사적 의미>, <“섹스 앤 더 시티”: 섹슈얼리티, 몸, 쾌락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 다시 읽기> 등이 있고, 저서로 《문명 밖으로》(공저), 《문명의 교류와 충돌》(공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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