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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91호-메리 더글러스의 종교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7. 10. 10. 13:36

 

       메리 더글러스의 종교             


 

 news  letter No.491 2017/10/10 

 

 

 

 


       몇 년 전 메리 더글러스의 《자연 상징》(Natural Symbols)을 덥석 맡아 번역한 것이 빌미가 되어 올해는 더글러스를 소개하는 얇은 책 한 권을 마무리하고 있다. 명색이 종교학 전공자이지만 나에게 종교학자 한 사람을 선택해 소개하라고 하라면 당장 할 수 있는 학자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내가 인류학자를 소개하는 원고를 붙잡고 있자니 이런 저런 잡생각이 꼬리를 문다.


       더글러스의 책을 처음 읽은 것은 한종연 연구원이신 임현수 선생님의 강의 “종교학 강독”을 수강한 학부생 시절이었다. 이름 그대로 혹독했던 이 수업에서 나는 난생 처음 영어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경험을 했다. “Purity and Danger”라는 책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이 책이 《순수와 위험》 이라는 번역본으로 나왔다. 비록 이해도 못하고 책장만 처음부터 끝까지 넘긴 수준이었지만 이 텍스트에 애정을 갖고 있던 나는 번역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 공간에 늘어놓았고 뜻하지 않게 번역자가 이 글을 보고 약간의 언쟁을 벌인 적도 있다.


       몇 년 전 친분이 있던 출판사로부터 더글러스 책 번역이 역자 사정으로 중단되었으니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 능력에 대한 고민 없이 번역을 수락한 것은 이런 인연이 배경이 되었다. 막상 번역에 들어가서는 복잡한 내용과 저자의 난해한 문체 때문에 이루 말하기 힘든 고생을 했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번에 더글러스 소개 원고 작업을 하면서 그의 생애에 대한 정보들을 접하게 되었다. 이번에 약간 더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내가 그에 대해 얼마나 모른 상태에서 그의 글을 읽고 한국어로 옮겼는지를 실감하고 부끄러워 얼굴이 벌게졌다. 그래서 이 글에서 내가 알게 된 사실들을 간략하게나마 전하고 싶다.


       번역을 할 당시 내가 알고 있는 더글러스는 ‘영국의 여류 인류학자’ 정도가 고작이었다. 서양학자라는 주류적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 알게 된 그녀는 ‘아일랜드 출신이며 가톨릭 신앙을 가진 여성 영국 인류학자’였다. 그는 영국 사회 내에서 아일랜드, 가톨릭, 여성이라는 3중의 주변적 위치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 삶의 경험이 글에 속속들이 배어 있다.


       더글러스는 아일랜드계 부모에게 태어났지만 조실부모하고 북아일랜드에 계신 할머니 아래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수녀들이 운영하는 엄격한 가톨릭 여자고등학교를 다닌 후 런던으로 유학 와서 대학을 다니게 된다. 이주민 경험을 반영해서 그녀 책에는 아일랜드계 이주민 이야기가 등장한다. 《자연 상징》의 3장은 아예 아일랜드 이주민을 경멸하는 표현인 ‘늪지 아일랜드인’(Bog Irish)이다. 이 부분에는 이런 절절한 문장들이 있다. “런던의 호텔이나 병원에서 근무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아일랜드 아가씨의 가장 절절한 경험은 무엇일까? 급히 목돈을 벌기 위해 건설 현장에 온 아일랜드 남성의 가장 절절한 경험은 무엇일까?” 이어서 그는 어떤 호텔에는 ‘아일랜드인과 유색인종 사절’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아일랜드 출신과 밀접히 연관된 사실로, 그녀의 종교는 가톨릭이다. 개신교의 나라 영국에서 가톨릭 교인으로 살았다는 것은 그의 종교 연구에 독특한 색을 부여하였다. 그녀는 뒤르케임 종교 이론을 계승한 학자였지만 집단 흥분을 강조하는 의례 이론에 대해서는 반론을 제기하였다. 흥분시키는 의례도 있지만 지루한(!) 의례도 있다는 것이다. 그가 반례로 든 것은 햄스테드의 성체 축제와 성요셉 교구의 철야 기도였다. 경험이 반영되었을 법한 범상치 않은 예이다. 그의 책에서 가톨릭 사례는 많이 등장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아일랜드계 신자들의 금요일 금육 실천을 꼽을 수 있다. 신자들은 금요일에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 관습을 고생스럽게 지키고 있는데, 요즘의 배운 젊은 신부님들은 그 실천을 상징적인 의미 정도로 약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성당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는 듯 한 이야기이다.


       책을 번역할 때는 이 중요한 사실들을 몰랐다. 왜 더글러스는 아일랜드 이주민 이야기를 곧잘 하고 소상히 알고 있을까? 왜 그는 1960년대에 구시대의 관습으로 비판받던 의례와 위계에 나름의 가치가 있음을 애써 주장했을까? 왜 그런 원고를 신부들이 보는 잡지에 게재 했을까? 어떻게 최근 가톨릭 공식 문헌들을 인용할 수 있었을까? 나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세부 자료들에 이르는 크고 작은 사안들이 그의 삶의 경험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지금 와서야 그 문장들의 의미를 새삼 곰씹게 된다. 아울러 다음과 같은 내 의견을 제시하고 싶다. 《순수와 위험》이 메리 더글러스를 저명한 학자로 만들어준 대표작인 반면에, 《자연 상징》은 곳곳에 그의 삶의 경험이 아로새겨져 있다는 의미에서 뜻 깊은 저서라고.

 

 


방원일_
서울대학교 강사
논문으로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이 사용한 한국 종교 사진>,<원시종교 이론에 나타난 인간과 동물의 관계>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자연 상징》,《자리 잡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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