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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단의 ‘성역화’ 사업과 국가의 지원정책

    : 문화자본주의의 한 양태

             
news  letter No.499 2017/12/5

 

 

 

 

 


       한국사회에서는 종교적 혹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장소나 지역을 재조성하는 이른바 ‘성역화’ 사업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불교종단들은 물론이고 천주교와 개신교도 이러한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성역화’란 특정한 장소나 지역을 ‘성역’(sanctuary) - 즉 성스러운 장소나 불가침의 영역 - 으로 조성한다는 종교적 함의를 가지고 있으나, 실상 이 용어는 종교 영역을 넘어 다양한 조성사업에 확대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종묘공원 성역화 사업, 서대문형무소 성역화 사업, 김종서 장군 묘역 성역화 사업, 율곡 선생 유적지 성역화 사업, 양평 의병 성역화 사업 등등. 따라서 의미가 부여되는 혹은 부여될 수 있는 모든 문화역사적 장소는 성역화 사업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대부분의 성역화 사업은 중앙 및 지방 정부의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기에, 웬만한 규모의 성역화 사업은 거의 예외 없이 국고보조금의 투입을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종교와 관련된 성역화 사업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업시행 주체가 특정 종단이나 종교집단으로 명기되어 있는 경우에도 해당 사업이 정부 지원금에 의존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최근에는 불교 종단의 성역화 사업에 대한 논란이 뜨거운데, 여기에는 정부의 종교지원사업에서 불교계에 비해 월등히 낮은 국고보조금이 할당된 개신교 측의 반발도 한 몫을 한다. 최근 불교계의 대표적인 성역화 사업으로는 2017년 6월 완공된 진각종의 총인원(총본산) 성역화 불사와 현재 추진 중인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사업(혹은 조계종 총본산 성역화 불사)이 있다. 진각종은 성역화 사업 전체가 아닌 해당 사업계획에 따른 개별 건물의 신축에 국고보조금이 투입된 경우이다. 즉 진각문화전승원은 총 공사비 165억 원 중 국비가 65억 원, 진각문화체험관은 총 공사비 83억 원 중 국비가 40억, 진각복지센터는 총 공사비 80억 원 중 서울시로부터 30억 원이 지원된 것이다. 여기서 국비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종무실의 예산에서 집행된 것이다. 종무실은 종교지원사업을 크게 3 가지 유형, 즉 ‘종교문화 활동지원’, ‘전통종교문화유산보존’, ‘종교문화시설건립’으로 구분하여 추진하는데, 진각종 성역화 사업의 경우는 ‘종교문화시설건립’을 지원한 것이다.


       ‘견지동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사업’ 또한 지속적인 논란의 대상으로 조계종단에서는 해당 사업을 조계종 총본산 성역화 불사라고 명명하고 있으며, 조계종이 통합종단으로 출범이후 최대의 불사로 평가받고 있다. 해당 사업의 정확한 전체 예산규모에 대해서는 공식적인 자료가 없으나 대략 2600~3500억 원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국비로는 최대 1500억 원, 시비로는 최대 500억 원, 종단 부담금으로는 최대 500억 원이 투입된다고 한다. 국비(문체부 예산)는 주로 1단계 사업인 10·27 법난기념관 건립에 투입되는데, 이는 지난 2008년 정부가 10·27 법난 피해자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특별법)을 제정하면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기념관 건립을 명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지매입 건으로 사업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서 사업 초기부터 다른 종교지원사업과 비교하여 형평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편 2013년 조계종과 서울시는 해당 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였는데, 시비는 2단계 사업인 조계사 일대를 전통역사문화지구로 조성하는데 투입된다고 한다. 서울시는 조계사를 중심으로 한 총본산 일대를 경복궁, 인사동, 북촌 등과 연계하여 한국의 불교·유교 문화를 동시에 체험할 수 있는 역사문화관광벨트로 조성할 기획을 밝힌 바 있다. 끝으로 종단 부담비는 3단계 사업인 조계사 부지 내 정비에 쓰인다 한다.


       이 밖에도 최근 논란이 증폭되고 성역화 사업으로는 ‘서소문 밖 역사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이 있다. 이 사업에는 총 46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는데, 재원별로 보면 국비(문체부) 약 230억 원, 시비(서울시) 약 137억 원, 그리고 구비(중구) 약 93억 원이다. 이 사업은 천주교의 순교성지 조성사업이란 이유로 타종교와 시민사회로부터 거센 반발을 받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서소문 밖은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순교지로 1801년 신유박해 때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참수치명(斬首致命)을 당한 곳일 뿐 아니라, 조선왕조 한양의 공식 처형지로 역사적 인물들(허균, 홍경래 등)이 처형된 곳이며, 무엇보다 동학 농민운동의 지도자인 전봉준이 1894년 이곳에서 교수형을 당했으며, 2대 교주 최시형은 1898년 서소문 감옥에서 재판을 받은 뒤 순교했고, 동학 농민군의 3대 지도자 김개남은 전주에서 참형된 뒤 머리만 압송되어 이곳에서 효수됨으로써 천도교에게도 매우 중요한 성지이다. 이런 맥락에서 2014년 11월 천도교 관계자를 중심으로 ‘서소문 역사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가 발족되었으며, 최근에는 민족종교 진영까지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또한 구의회의 반대로 예산 편성이 미뤄지면서 해당 사업은 현재 공사중단의 위기를 맞고 있다. 서소문 사업은 많은 정부지원의 성역화 사업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을 보여주는데, 즉 장소의 정체성과 관련된 것으로 특정 집단이 주체가 되어 특정 지역이나 장소를 단일한 역사적 사건/흐름으로 환원시키려는 시도는 잠재적 갈등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서소문 밖 사업은 하나의 성지에 복수의 종교전통이 교차하면서 한 특정 종교집단(천주교)이 해당 성지를 점유/선점하려는 시도로부터 종교간 갈등이 야기된 경우로, 2014년 8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광화문 시복미사에 앞서 서소문 순교성지를 방문한 것도 하나의 상징적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정부가 막대한 국고를 소모하며 종교갈등이 일어날 소지가 큰 특정 종교의 성역화 사업 내지 역사문화관광자원 조성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가를 물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부의 특정 종교 지원을 비판하는 측은 이러한 사업들이 종교와 국가(정부)의 유착관계를 보여주며 그 주요 원인으로 종교의 권력화를 언급한다. 즉 한국 사회에서 종교는 쉽게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거대한 이익집단이 되었기에 정부나 정치가 이들의 요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어떠한 유착관계에서도 일방적인 힘의 행사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오히려 되물을 질문은 특정 종교의 성역화 사업을 지원하면서 정부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얻고자 하는가이다. 이에 대한 답은 종교지원사업을 기획, 운영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하 조직인 종무실의 사업내용과 조직구조를 보면 쉽게 나올 수 있다. 즉 종무실의 주요 사업목적 중 하나는 종교지원사업을 통해 생산된 종교문화콘텐츠와 종교문화공간을 공공재로 자원화하여 이를 문화(관광)산업에 활용하려는 것이다. 종무원을 산하에 둔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미 90년대 말부터 문화산업의 진흥을 위해서 문화콘텐츠 개발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였으며, 이를 전담하는 콘텐츠정책국을 산하에 두고 있다. 종무실과 (콘텐츠정책국의 소속 부서인) 문화(산업)정책과의 통합 논의는 2000년도 초부터 있었던 것으로 이 두 부서의 유사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제도종교 측에서는 자신들의 (잠재적) 종교문화자원을 활용하고자 관련 사업계획을 세우고 정부 측에 이를 적극적으로 제안하고 협상을 진행하여 국고보조금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경제적 자산이 심각하게 침식당할 위험 없이 해당 사업을 진행하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조계종이 90년대 후반부터 전통문화지구 조성 사업의 필요성을 정부와 서울시에 제안해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국가/정부의 종교지원사업을 단순하게 종교계에서 정부부처나 정치가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해서 얻어낸 특혜로 볼 수 없으며, 양 측의 이해관계가 중첩되는 부분이 있기에 이러한 국가와 종교의 ‘유착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정부 측에서는 해당 사업을 통해 국가 문화산업의 육성에 중요한 종교문화콘텐츠나 종교문화관광자원을 확보하고, 종교계에서는 해당 사업을 통해 자신들의 문화자원을 확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들의 종교적 위상을 공고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학계 또한 정부의 문화산업 육성정책에 매우 긍정적으로 대응하여 왔다. 인문학 종사자들은 소위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종교)문화콘텐츠 개발을 새로운 연구과제로 수용하였고, 다수의 대학들 또한 ‘문화콘텐츠 학과’라는 신생학과를 개설하면서 문화콘텐츠 산업의 한 축을 담당한 것이다. 여기서 ‘문화자본주의시대와 원광대학교’라는 주제로 2016년 9월에 개최된 원광대학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의 공고에 실린 글은 주목할 만하다: “현대는 산업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를 거쳐 문화산업이 세계를 주도하는 문화자본주의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변화에 맞춰 원광대학교가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나갈 혁신을 주도하기 위해 ...학술의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필자의 기대와 다르게 해당 학술대회에서는 문화가 중요한 자본이 되는 문화자본주의의 영향 하에서 한국의 전반적인 종교문화나 특정 종교의 전통이 어떻게 변형될 수 있으며, 어떠한 정체성의 문제에 당면할 수 있는가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규모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조계종단의 예를 들더라도 이 사업으로 인해 자신들의 수행신앙 도량인 조계사가 관광자원/공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거의 표출되지 않는다. “경제의 문화화, 문화의 경제화”라는 동시대의 후기자본주의 흐름 속에서 모든 (종교)문화적 요소나 소재는 문화콘텐츠나 문화관광자원으로 새롭게 가공되거나 조성될 수 있는 대상이며, 궁극적으로 이를 통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사고는 정부의 정책수립자는 물론이고 종교계와 학계에서도 팽배한 것 같다. 이렇게 세 영역의 이해관계가 중첩되면서 미래에도 종교문화자원의 획득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개발될 것이라는 예측은 그리 비현실적인 것이 아닐 것이다.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종교현상>, 〈젠더화된 카리스마〉, 〈현 한국사회에서 합동천도재의 복합적 기능에 대하여〉, 공저로는 <한국사회와 종교학>, 〈신자유주의 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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