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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00호-종교문화를 연구한다는 것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7. 12. 12. 20:54

 

종교문화를 연구한다는 것

    news  letter No.500 2017/12/12

 

 

 


나는 요즘 강의, 학술모임, 대중강연 등에서 자기소개를 할 기회가 있으면 ‘종교문화를 연구하고 있다’는 말을 종종 덧붙인다. 왠지 ‘종교학자’나 ‘종교연구자’라는 말보다 ‘종교문화연구자’라는 말이 개인적으로 조금 더 편안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별로 대단한 일은 아니겠지만, 이런 자기소개와 관련해 꽤 흥미로운 경험이 있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자기소개에 뒤따르는 질문의 성격이 변했다. 예전에는 종교학을 전공한다고 말하거나 종교연구를 한다고 말하면 “그럼 무슨 종교를 연구하시는데요?”라는 질문과 종종 마주쳤다. 그럴 때 나는 분명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그냥 ‘한국종교’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그런 후에는 질문자에게 적절한 대답을 하지 않고 무례를 범했다는 자책이 따랐다. 그러나 ‘종교문화’를 연구하고 있다고 나를 소개하게 된 이후로는 나에게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을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내 말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내 소개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관심을 보인 소수의 사람들은 내가 말하는 종교문화라는 게 뭔지, 어느 지역의 종교문화를 연구하는지, 어떻게 연구하는지, 혹은 세부주제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나로서는 꽤 신선한 경험이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나는 왠지 조금 신이 나서 대답을 하게 된다. 먼저 나는 몇몇 종교전통들의 교리나 실천규범만이 아니라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종교와 관련하여 경험하는 문화적 현실을 아울러 그 사회의 ‘종교문화’로 본다고 말한다. 이어서 나는 한국의 종교문화에 대한 진화-인지과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고, 최근에는 특히 현대 한국 사회의 혐오, 차별, 폭력 이슈와 종교문화의 관계를 연구하고 있다는 긴 답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질문자가 내 이야기를 흥미 있게 들어주고 있는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나는 여러 종교들의 이념적 주장과 규범을 이해하는 것과 한 사회의 종교문화를 이해하는 일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개별 종교들의 이념적 주장과 규범은 특정 종교 내부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 반면, 한 사회의 종교문화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행동, 그리고 그들이 서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일상의 사건들을 통해 비로소 포착되는 문화적 현실의 일부로서,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느슨하게 포괄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종교와 관련해 경험하는 삶의 수많은 장면들과 일상의 문화적 현실이 그 사회의 종교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종교문화를 향유하는 주체는 단지 몇몇 특정 종교인들만이 아니라 한 사회구성원 전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종교문화를 비평하는 관점과 시각 역시 특정 종교 내부의 주장들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종교인인지 아닌지와 무관하게, 우리는 종교와 함께 살아간다. 우리는 종종 그리고 곳곳에서 여러 종교들이 인간의 올바른 삶에 관해 규정하는 제각각의 주장들을 접하게 되며, 또 그 규범을 따라 살고자 하는 신자들의 진지한 실천들을 보게 된다. 동시에 우리는 종종 어떤 종교의 지도자나 신자가 저지르는 각종 위선과 범죄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하며, 심지어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각종 매체와 언론은 종교인들의 범죄에 대해 특별히 주목하면서 소식을 전하고, 사람들은 그러한 소식에 좀 더 예민하게 반응한다. 사람들은 특정 종교와 그 신자들을 존중하고 존경하기도 하지만, 무관심하기도 하며, 비난하거나 경멸하기도 한다. 어떤 종교인들은 자기가 속한 종교집단이나 지도자의 활동이 자신의 신념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각한 고민에 빠지지만, 어떤 종교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앙생활에 갈등이나 위기를 겪지 않는다. 또 우리는 종종 특정한 종교집단이 국가와 정부를 표적으로 삼아 활동하거나 시민사회에 논쟁과 갈등을 빚어내는 경우를 목격한다. 중요한 사실은 지금까지 열거한 장면들이 단지 몇몇 사람들만이 겪는 ‘드물고 주변적인’ 사건으로 여겨질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종교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문화적 현실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문화적 현실 속의 종교는 결코 ‘아주 특별한 것’이 아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종교인들의 삶과 비종교인들의 삶 사이에 뭔가 현격한 차이가 있으리라는 암묵적인 기대를 갖는다. 그러한 기대에 부합하는 삶을 사는 것은 종교인들이 공식적으로 추구하는 이념적 지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의 일상적인 생각 및 행동에서 나타나는 차이는 기대만큼 크지 않다. 게다가 사람들은 특정한 종교를 신봉하지 않아도 가끔씩 종교인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이 있으며, 종교적 가르침을 몰라도 도덕적으로 충실하게 살아갈 수도 있다. 물론 어떤 종교인들이 보기에 비종교인들의 그러한 삶은 결국 허무한 것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이와 같이, 종교와 관련해 경험되는 삶의 수많은 장면들과 일상의 문화적 현실이 우리의 종교문화를 형성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종교문화에 대해 발언할 권리가 단지 종교지도자, 종교전문가, 종교학자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사실 이미 서로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 언론인들, 작가들, 시민들이 우리가 종교와 관련해 경험하는 다양한 문화적 현실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 또 이런 상황자체가 동시대 종교문화의 일면이기도 하다. 종교문화를 연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관점과 방법을 가지고 이 모든 향유주체들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하면서 문화적 현실을 분석하고 비평하는 일이다. 물론, 아직 서점의 책장이나 연구 과제 신청분야 선택지에서 ‘종교문화’라는 항목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종교문화를 연구하는 사람이고 싶다.

 


구형찬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민속신앙의 인지적 기반에 관한 연구: 강우의례를 중심으로>, <멍청한 이성: 왜 불합리한 믿음이 자연스러운가>, <‘인간학적 종교연구 2.0’을 위한 시론: ‘표상역학’의 인간학적 자연주의를 참고하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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