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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05호-순례와 구마노고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 1. 16. 19:58

 

                순례와 구마노고도             


 news  letter No.505 2018/1/16

 

 

 

 


       산다는 건 알든 모르든 하나의 순례가 아닐까? 지난해 가을, 사람들이 왜 땅을 ‘대지의 모신(母神)’이라고 불렀는지를 새삼 반추하면서 아내와 함께 일주일에 걸쳐 구마노고도(熊野古道, 총 212.2km)를 걷고 왔다. 어머니 대지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도 하고 그것을 죽음으로 회수하기도 한다. 상반된 두 얼굴을 가진 땅은 그러나 지금도 ‘치유의 길’을 통해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주고 있다. 아마도 모든 ‘신에의 순례’는 먼저 ‘땅의 순례’일 것이다. 지중과 연결된 피뢰침이 벼락의 폭력을 중화시키듯이 땅은 자신을 밟고 넘어가는 순례자의 온갖 상처를 조용히 흡수하여 치유와 재생이라는 선물을 수여해 준다. 그래서인가 특히 1990년대 이래 포르투갈의 파티마(Fátima),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 등 유명한 유럽 가톨릭 성지에의 순례자수가 대폭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도 플로리다주의 클리어워터(Clearwater) 성모순례가 성황하고 있으며 이슬람 하지(멕카) 순례자수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또한 영국의 글래스톤베리(Glastonbury)라든가 미국의 세도나(Sedona) 등 뉴에이지 성지에의 관심도 현저히 증대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1990년대 이후 시코쿠헨로(四國遍路)라 불리는 구카이(空海) 관련 88개소 영장(靈場) 순례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순례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글로벌한 규모에서 증가하고 있는 이유는 종교부흥이라기보다는 사회문화적, 정치적 환경의 변화와 관계가 있다. 즉 현대의 순례는 건강과 의료 케어의 개선, 경제발전으로 인한 장수, 금전적 여유, 관광의 확대, 교통기관의 발달 등과 같은 모더니티의 부산물이자, 나아가 개인의 자율성과 자기성장이라는 관념을 강조하고 장려하는 현대사회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가령 산티아고 순례를 ‘관광화된 성지순례’라고 보는 관점도 순례에 대한 관심의 현대적 증대와 모더니티를 연관시키는 이해와 상통한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적 요인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순례의 뿌리는 원래 종교에 있으며, 현대사회와 순례의 관계에는 뉴에이지 붐이라든가 스피리추얼리티 붐과의 연관성 등 관광인류학적 관점에 다 수렴되지 않는 측면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제일의 영장(靈場)’이라 불리는 구마노고도 순례는 죽음과 재생이라는 종교적 모티브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오지 중의 오지인 영장 구마노는 구마노강(熊野川)을 내륙으로 거슬러 올라가 만나게 되는 구마노혼구대사(熊野本宮大社), 구마노강 하구 근처의 구마노하야타마대사(熊野速玉大社), 나치 앞바다에 면한 구마노나치대사(熊野那智大社) 및 청안도사(靑岸渡寺)와 보타락산사(補陀洛山寺) 등의 삼사이사(三社二寺)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앞의 세 신사를 총칭하여 흔히 구마노삼산(熊野三山)이라 한다.


       오늘날 구마노고도는 2004년 7월 ‘기이산지의 영장과 참배로’(紀伊山地の靈場と參詣道)라는 타이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이래 일본 안팎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순례길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사례는 이 구마노 참배로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순례길뿐이다. 거기에 순례와 관광이 결합된 소지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구마노삼산과 구마노고도에는 근래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관광인류학이나 순례관광학의 관점에서 다 설명하기 어려운 종교적 내음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근세에 폭발적・주기적으로 발생한 이세신궁 순례(伊勢参り)의 경우는 흔히 지적되듯이 관광과 유흥의 측면도 강했으나, 고래 구마노에는 이세와 달리 유곽 등의 환락가는 없었다. 원래 구마노 순례의 주목적은 정화・죽음・재생의 사이클 안에서 현세와 내세의 복락을 추구하는 종교적 실천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구마노고도를 걷다보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 중 하나로 꼽히는 유노미네(湯の峰) 온천을 지나가게 된다. 오구리판관(小栗判官) 설화의 무대로도 유명한 이 온천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설화에 의하면 오구리는 귀족 집안에서 구라마(鞍馬)의 비사문천이 점지해준 아이로 태어났다. 그는 72명의 첩을 취했지만 성에 차지 않아 대사(大蛇)의 화신과 성교하여 히타치국(常陸國, 이바라키현)으로 유배당한다. 그런데 사가미국(相模國, 가나가와현) 요코야마가(横山家)의 아름다운 딸 데루테히메를 혹하여 부부의 인연을 약속하게 되었다. 이에 화가 난 요코야마가는 오구리를 독살하고 데루테히메도 강물에 던져버린다. 지옥에 떨어진 오구리는 염라대왕의 관대한 처분에 의해 사바세계로 돌아와 후지사와(藤沢)의 승려에게 맡겨졌다. 그런데 지상에 소생한 오구리의 모습은 지독한 문둥병 환자였다. 승려는 오구리의 가슴에 “이 자를 한번 끌어주면 천승(千僧)공양, 두 번 끌어주면 만승(萬僧)공양”이라고 적은 패를 걸어주었다. 이리하여 작은 마차(土車)에 태워진 오구리는 공덕을 쌓고자 하는 많은 이들의 릴레이에 의해 길에서 길로 이끌어졌다. 도중에 데루테히메는 남편인 줄도 모른 채 그의 마차를 끌어주었다. 이윽고 구마노의 유노미네에 도달한 오구리는 수험도 산복의 도움을 받아 온천욕을 하게 되었는데, 7일이 지나자 두 눈이 열렸고, 다음 7일이 지나자 귀가 열렸으며, 그 다음 7일이 지나자 눈이 보였다. 그렇게 49일이 지나자 오구리는 원래의 몸 상태로 치유되었고, 그 후 다시금 데루테히메와 맺어져 83세로 왕생했다고 한다.


       생전에 수많은 죄를 범한 오구리가 한번 죽은 후 소생한 다음 문둥병을 짊어진 채 완전히 재생했다는 이 설화는 실로 죽음과 재생 그리고 정화의 부단한 원환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 오구리가 입욕했다는 오두막 온천 ‘쓰보유’(つぼ湯)가 지금도 남아있다. 내게 쓰보유는 770엔 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공중욕탕을 넘어서서 하나의 무덤 같은 암자였다. 거기서 나는 태아처럼 웅크린 채 정화와 죽음과 재생의 의미를 몽상했던 것 같다. 쓰보유 문을 나서니 다음 순서로 젊은 서양인 커플이 기다리고 있었다.



       시코쿠헨로에서 구마노고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신들이 생겨나거나 사라져버리기도 하는 일본 열도에는 어디든 성지가 넘쳐난다. 거기서는 어떤 장소든 성지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이세신궁을 참배하였네/어떤 신, 어떤 마쓰리가 행해지는지는 모르겠지만/그 감사함에 그저 눈물 흘릴 뿐”(『西行法師歌集』)이라는 사이교(西行, 1118-1190) 법사의 노래에서 엿볼 수 있듯이, 중요한 것은 신불(神佛)에 대한 종교적 지식이나 교양이 아니라 성지를 필요로 하는 감성 그 자체이다. 일본인에게 순례란 그런 신불을 길가에서 발견하는 감성이 발현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 감성은 결코 일상생활과 격리된 어떤 것이 아니다. 설령 관광이나 여행의 옷을 입고 재현된다 하더라도, 일본의 뿌리 깊은 순례문화는 여전히 일상 속의 죽음(케가레)이 마쓰리(하레)를 통해 정화된 생명력(케)으로 재생될 수 있다는 감성적 파토스가 로고스보다 더 일차적인 현실을 구성하는 일본인의 정신세계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런 순례의 상상력이 정치적 상상력에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직 이른 기대일까?

 

 


박규태_
한양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논문으로 〈현대일본종교와‘마음’(心)의 문제-‘고코로나오시’와 심리통어기법에서 마인드컨트롤까지-〉,〈고대 오사카의 백제계 신사와 사원연구〉등이 있고, 저역서로 《일본문화사》,《신도,일본 태생의 종교시스템》,《일본정신의 풍경》,《일본 신사의 역사와 신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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