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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11호-연구노트 : 유교의 몰락에 관한 단상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03.01 13:34

                              연구노트 : 유교의 몰락에 관한 단상              


 

        news  letter No.511 2018/2/27

 

 

 

 

 


       누군가 필자에게 오늘날의 종교지형 속에서 유교의 위치를 말해보라고 하면, 필자는 한마디로 모두가 유교인이지만 누구도 유교인이 아닌 상황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서삼경(四書三經)과 같은 유교경전을 학습하고 있으며, 또 윤리적 측면이나 문화적 측면에서도 유교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교는 도덕적 잣대의 하나로 취급되거나, 전통문화의 일부로서 또는 일종의 교양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있을 뿐, 종교 내지 신념체계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유교는 세계관과 제도, 지식체계의 표준으로 군림하던 통치이념이었다.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기심성론적(理氣心性論的) 해석을 통해 우주-자연-인간을 유기적으로 파악하는 통합적인 인식체계였으며, 개인의 수양[內聖]과 사회적 실천[外王]을 일치시키고 의례[祭祀]를 통해 집단정체성을 확보하였던 종합적이고 자체 완결적인 체계였다. 이러한 유교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전통문화, 윤리, 교양 등으로 영역별로 분리·해체됨으로써,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신념체계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몇 가지 설명이 가능할 것이다.


       먼저, 개항 이후 ‘근대성’의 이식 과정에서, 서구에서 유입된 ‘근대적’ 지식이 새로운 기준이 됨으로써 유교가 지식체계로서의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 점을 들 수가 있다. 20세기 초반 이후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유교의 지식체계를 부정하고 새로운 지식체계 곧 서구의 학문으로 이를 대체하려는 움직임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리고 서구 학문을 가르치는 근대식 학교를 활발히 설립하는 등 국가의 정책 또한 이러한 방향으로 추진되었다. 이처럼 한국사회의 중심적 지식체계가 유교에서 근대학문으로 전환되는 과정 속에서 근거가 된 핵심적 논리는 실용성의 유무였다. 따라서 학문의 목표 또한 도덕적 수양에서 실용으로, 천리(天理)의 체인(體認)에서 자연에 대한 이용으로 바뀌게 되었고 학문과 지식의 문제에 있어서 유교는 더 이상 한국사회의 주류가 아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유교는 공식적으로 학문과 교육의 영역에서 점차 배제되어 나갔고 그 결과 사회적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상실하게 되었다.


       또 근대과학 지식의 보급과 문명의 이기(利器)의 도입으로 인해 유교적 관념을 바탕으로 성립되었던 전통적인 공간관·시간관·천관(天觀)·자연관·인간관 등이 무너지고 유교의 세계관이 뿌리째 흔들리게 된 점 또한 중요한 원인의 하나로 지목할 수 있다. 근대 천문학의 우주관의 유포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天圓地方]는 전통적 관념이 전혀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일깨웠을 뿐 아니라,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 인간과는 무관한 객관적 공간으로서 우주 공간, 천체, 지구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함으로써,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을 상정하고 이 세 존재가 서로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였던 유교의 천지인(天地人) 관념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러한 공간관의 전변은 유교의 ‘천(天)’개념을 무너뜨리는 것으로 바로 유교의 신앙과 세계관의 근원을 흔드는 것이었다. 양력의 시행과 관상감(觀象監)의 폐지로 인한 전통 역법의 붕괴 또한 유교적 세계관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조선시대에 관상감에서 제작·배포하는 역서는 날짜에 따른 길흉과 금기를 함께 수록한 것으로서 유교의 의례생활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양력의 시행과 관상감의 폐지로 인한 전통 역법의 붕괴는 자연의 시간이 의례의 시간으로 전환되는 연속성의 구조가 파괴됨을 의미하였다. 이는 곧 시간관에 있어 우주·자연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를 연결시켜 이해하는 유교적 관념이 무너졌고, 달력 또한 의례 및 전통적 삶의 방식과 무관하게 새로이 강제된 근대적 삶을 규정하는 것으로 변화했음을 뜻하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근대성’의 이식 과정에서 형성된 ‘과학-종교-미신’ 담론의 확산이 유교의 정체성을 손상시키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음을 지적할 수 있다. 개항기 이후 과학-종교-미신 담론이 작동하면서 과거의 여러 신앙 형태들이 어떤 것은 과학, 어떤 것은 종교, 어떤 것은 미신의 영역으로 선택되어 재배치되었는데, 그 과정에서“불교·기독교=종교, 무속·민간신앙·신종교=미신, 유교=비종교”라는 도식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여기서 유교는 과학·종교·미신 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으로 분류되었으며, 이에 따라 유교의 요소 가운데 일부는 철학으로, 일부는 미신으로 규정되었다. 그 결과 유교의 신념체계 속에서 신앙적 부분과 직결되어 있으며 집단을 결속시키는 역할을 해 오던 의례 부분 곧 제사가 미신으로 폄훼되면서 그 의미가 변질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후 유교의례는 그 형식적인 절차가 남아 있는 경우에도 더 이상 종교적 의미는 가지지 못하게 되었고, 윤리[孝]의 실천 또는 전통문화의 재현으로 인식되는 데 그치게 되었다.


       지금까지 거론한 요인이 유교의 ‘권위’ 추락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개항 이후 유교의 정치적·사회경제적 기반이 와해된 것은 유교가 가지고 있었던 실제적 ‘권력’의 상실과 관련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科擧) 제도가 폐지되고 뒤이어 왕조가 멸망함으로써, 조선시대 내내 작동하였던, 사환(仕宦)을 매개로 한 유림(儒林) 집단의 재생산 구조는 붕괴되어 갔다. 물론, 자기 소유의 농토라고 하는 경제적 기반을 갖추고 전국적으로 광범하게 분포하고 있었던 유림 집단은 일제강점기에도 의연히 건재하였으나, 이들의 사회적 지위는 이전과 같을 수 없었다. 유교국가 조선의 멸망에 따른 정치적 기반의 상실로 인해 각 지역의 유림 집단은 한갓 지주(地主) 내지 유한계층에 불과할 뿐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사회의 지배층은 아니게 되었다. 나아가 해방 이후 전쟁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된 지역사회의 결집력 약화와 산업구조의 개편은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유림 집단의 세력을 결정적으로 약화시켰으며, 그 결과 유교는 존립 기반 자체가 와해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렇게 설명하면서도 필자는 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떻게 조선조 500년간 군림하면서 사회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던 유교가,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에 이렇게 완전히 몰락할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이 되기에는 미진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우리의 근현대사가 유례없는 격변의 연속이었다고 하더라도, 전통사회에서 차지한 유교의 지위와 영향력을 생각해 볼 때 이와 같은 유교의 급격한 몰락은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유럽의 기독교, 서아시아나 북아프리카의 이슬람교의 경우와 이렇게도 다른 것은 어째서인가? 이전과 같은 국교(國敎)로서의 지위는 누리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의 종교로서 남아 있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것은 어떤 연유에서일까? ‘근대’의 논리에 의해 미신으로 치부되어 무슨 사건만 일어나면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탄압 받기 일쑤인 신종교나 무속도, 세력은 약할지언정 의연히 하나의 종교로서 존재하고 있는데, 유교만 유독 종교 내지 신념체계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전통문화, 윤리, 교양 등 영역별로 해체되어 버린 것은 어째서일까?


       이런 현상은 유교 자체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인가? 아니면 역사적 과정의 특수성에서 기인한 것인가? 답이 쉽게 얻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근대 이전 전통사회의 모습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며, 향후 필자의 공부도 당분간 이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듯하다.

 


김호덕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서양철학, 맹자에게 길을 묻다 : 프랑수아 줄리앙의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 도덕의 기초를 세우다》에 대한 서평>등의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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