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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20호-아이의 노래 안에 담긴 종교문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05.01 15:50

아이의 노래 안에 담긴 종교문화

          

   news  letter No.520 2018/5/1         

 

 

 


       랜디스(Eli Barr Landis)라는 선교사에 관한 글을 준비하다가 본 흥미로운 자료 하나를 소개하고 싶다. 랜디스는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인물이다. 그는 1890년에 한국에 입국한 최초의 성공회 선교사 중 한 명으로, 초기 선교 정착에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에서 온 다른 성공회 사제 선교사들과는 달리, 랜디스는 의대를 졸업한 지 몇 년 안 된 미국 젊은이였다. 그는 코프 주교가 한국에 오는 길에 미국에 들렀을 때 평신도 의료선교사로 합류하여 함께 한국에 들어온다. 그는 인천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하며 막대한 양의 환자를 돌보는 의료선교를 하였으나, 1898년에 전염병에 걸려 사망한다. 그의 나이 32세, 8년 약간 넘은 선교 활동 후의 사망이었다.


       랜디스의 생애도 극적인 면이 있지만, 그가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한국 문화 다방면에 걸친 그의 저작 때문이다. 그는 성공회 선교사 중 가장 한국어와 한문 습득이 빨랐고, 8년의 바쁜 선교 기간에 했을 거라고는 믿기지 않은 정도로 다량의 저술을 남겼다. 그가 다룬 내용 몇 개만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동의보감의 일부 내용 번역, 한국의 염색, 강화도의 역사, 전래동화, 작명법(作名法), 한국의 속담, 한국인의 수 관념, 풍수지리, 무속의 축귀, 불교의 염주경(念珠經), 조선 왕가의 장례, 한국인의 장례 절차, 관례(冠禮).

       그의 방대한 저술 중에 한국 어린이의 노래를 채록하고 해설한 논문이 있다. “한국의 동요”(Rhymes of Korean Children)라는 제목으로 1898년 미국 민속학 학술지(The Journal of American Folklore)에 기고한 글이다. 그가 언제 어디서 아이들의 노래를 접한 것일까? 그의 논문에는 건조하게 노래만 실려있을 뿐 맥락에 대한 정보가 없어 추정해볼 수밖에 없다. 그의 활동 중에는 고아원 사업이 있었다. 1893년 그가 치료했던 여성 환자가 죽게 되었을 때, 과부였던 그 환자는 홀로 남게 된 아이를 랜디스에게 부탁하고 숨을 거둔다. ‘곰새끼’라는 아명(兒名)을 가진 6살짜리 아이였다. 이 아이를 시작으로 돌보는 아이가 한둘 늘어나면서 랜디스는 고아원을 운영하게 된다. 아마도 그가 수집한 동요는 1890년대 인천 지역 아이들, 그중에서도 곰새끼를 포함한 고아원 아이들에게 들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논문에는 랜디스가 동요를 알파벳으로 정성껏 음역(音譯)하고 주를 달아놓은 노래 수십 편이 실려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맨 처음 실린 두 노래가 눈에 밟힌다. 랜디스는 수록 순서나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에 순서와 중요도와의 상관성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이 두 노래는 종교문화와 관련된 것이어서, 의례를 중시하는 성공회 선교사 랜디스의 관심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독자 여러분도 상상의 나래에 동참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에 랜디스의 음역과 함께 두 노래를 소개하도록 하겠다.

     1.
      상제, 상제, 어데가
      Sang Chyei, Sang Chyei, etai ka
      회, 회, 어데로 가
      Hoi, Hoi, etera ka
      장사날이 언제이오
      Chang sa nali enchyei o
      일, 일, 이레날이오
      II, II, irhei nal io.

       첫째는 장례식을 치르는 상주를 대상으로 한 노래다. 완전히 이해되지는 않지만 2행의 ‘회’는 운율을 맞추면서도 무덤과 관련된 표현(복토를 일컫는 회덮기)을 염두에 둔 것 같다. 랜디스는 이 노래의 분위기가 ‘매우 경멸적’(abusive)이라고 해설했다. 과연 말투로 보아 상주를 놀리는 분위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예를 중시하는 유교 사회의 기층에서 의례에 대한 반감이 표현된다는 사실이 랜디스에게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을까?

     2.
      중, 중, 까까 중
      Chyoung, chyoung, kakke chyoung
      울 너머 뱅이 중
     Oul nemou painge chyoung
     접시 밑에 핥아 중
     Chyepsi mithei haltai chyoung
     돌 밑에 가재 중
     Tol Mithei kachai chyoung.


       둘째는 노골적으로 승려를 놀리는 노래다. 해석이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신랄하다. 승려는 제대로 먹지 못하는 행색, 가재를 잡아먹는 모습으로 희화화된다. 랜디스는 이 노래가 ‘승려를 비하(derision)’하는 것이라고 해설한다. 승려가 하층민으로 전락한 조선 사회를 반영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종교인을 비하하는 이 동요 역시 랜디스에게 충격적이지 않았을까?

      아이는 순수한 존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편견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랜디스가 채록한 동요에서 뜻밖에 드러나는 종교문화에 대한 공격성을 앞에 놓고서, 아마 랜디스가 그랬듯이 나 역시 여러 생각에 빠져든다.

 


방원일_
서울대학교 강사
논문으로 <혼합현상에 관한 이론적 고찰>, <원시유일신 이론의 전개와 영향>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자연 상징》, 《자리 잡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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