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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23호-<너의 이름은> 속의 일본 신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05.22 16:51

<너의 이름은> 속의 일본 신도

 

 

  news  letter No.523 2018/5/22

 

 

 


       신예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新海誠, 1973~현재)는 흔히 ‘일본의 램브란트’ 혹은 ‘빛의 작가’로 불릴 만큼 아름답고 절절하면서 한없이 부드럽고 또 잔혹하기까지 한 배경미술의 모노노아와레적 서정성과 함께 특히 강렬하고 세밀하기 그지없는 빛의 상징을 통한 심리 묘사에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그는 실제 풍경을 사진 찍어서 리터칭을 통한 리얼리즘을 추구한다든지, 독백으로 캐릭터의 감정을 표현하는 기법을 선호한다. 그가 최근에 내놓은 <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2016)>은 <초속5센티미터>라든가 <언어의 정원>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직접 소설도 쓰고 애니메이션도 제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16년 8월 일본에서 개봉된 이래 일본영화를 통틀어 역대 2위의 흥행기록을 올려 하나의 사회현상으로 이목을 모았다. 2017년 1월 한국에서도 공개되었고, 부천국제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장편부문 우수상을 수상받기도 했다. 2018년 2월 까지도 이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 역대 흥행 제1위를 마크하고 있다.

       일본에서 개봉되기 두 달 전에 동명 소설이 가도카와 문고(角川文庫)에서 출간되어 영화 공개시점까지 매출 50만부를 돌파하고 2016년 문고부문 1위의 매출 기록을 올렸다. 소설과 영화는 스토리상의 큰 차이는 없지만 화자가 조금 다르다. 소설판은 다키와 미쓰하의 1인칭 시점만으로 서술되어 있는 데 비해, 애니메이션판은 3인칭 시점이다. 이 밖에 가노 아라타(加納新太)가 쓴 가도카와 스니커문고(角川スニーカー文庫)판 소설도 있다. 여기에는 신카이의 소설에 나오지 않는 에피소드 3개가 추가되어 있다. 이 두 종류의 소설 <너의 이름은>은 모두 한국어 번역본이 나와 있다. 처음에 혜성이 낙하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가상적인 마을 이토모리에 사는 여고생 미쓰하는 미야미즈(宮水)신사 가문에서 태어난 무녀이다.
   그녀와 도쿄에 사는 고교생 다키는 꿈에서 몸이 서로 바뀌는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되고 둘은 서로가
   남긴 메모와 일기를 통해 상대방의 인생을 알아 나가지만,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몸이 바뀌지 않게
   된다. 그러자 다키는 자신이 체험한 이토모리 호수 마을의 풍경화를 여러 장 그린 후 어딘지도 모르
   는 그곳을 찾아 떠난다. 그의 손목에는 언제나처럼 부적 실매듭이 둘러져 있다. 하지만 언제 누구한
   테 받은 것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던 때 우연히 들른 라면집 주인
   이 이토모리 마을 출신이었는데, 그는 3년 전 이토모리 마을이 혜성 ‘티아마트’의 운석 재해로 전체
   주민 1500여 명 중 500여 명이 죽고 나머지도 점차 마을을 떠나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고 전해준다.
   운석은 축제 중이던 미야미즈신사 부근에 떨어졌고, 그곳은 원래 있던 이토모리 호수 근처였기 때
   문에 내부에 물이 흘러들어 하나의 조롱박 형태의 새로운 호수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다키는 휴대전화에 입력해 놓았던 미쓰하의 일기를 불러오지만, 그 글씨들이 다키가 보는
   앞에서 모두 지워져 버린다. 도서관에서 찾아낸 관련 책자에서 다키는 미야미즈 히토하(82세),
   미쓰하(17세), 요쓰하(9세)가 모두 사망자 명단에 들어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다키가 미쓰하의 구치가미자케(口噛み酒)를 마심으로써 둘은 다시 몸이 바뀌고 순간적이나마
   황혼녘 때 극적인 재회를 한다. 그 직후 미쓰하의 몸으로 바뀐 다키는 마을 이장인 아버지를 설득
   하여 재앙을 피한다. 5년후 다키와 미쓰하는 모두 상대방의 이름도 잊어버렸지만 우연히 도쿄에서
   만나 서로 이름을 묻는다.

 

  
       이 <너의 이름은>은 내가 아는 한 일본 신도의 핵심을 가장 잘 묘사한 서브컬쳐 작품이다. 몸이 바뀐다는 중심 모티브 자체가 몸에서 혼이 빠져나온다는 신도적 관념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가령 새로 즉위한 천황이 최초로 행하는 추수감사제인 대상제(大嘗祭, 다이조사이)에 앞서 행해지는 진혼제(鎭魂祭)는 혼이 몸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안정시키는 의식을 가리킨다. 또한 《일본서기(日本書紀)》의 오나무치(大國主神) 신화에서는 스쿠나히코나(少彦名)가 바다 저편에서 빛을 발하며 다가와 자신을 모시면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를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오나무치의 행혼(幸魂)・기혼(奇魂)’이라고 밝힌다. 이는 혼과 몸이 분리될 수 있다는 관념이 투영된 신화라 할 수 있다. <너의 이름은>에서 주인공의 혼이 자기 몸을 빠져나와 상대방의 몸으로 들어간다는 발상의 바탕에는 이와 같은 일본의 전통적 관념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몸의 뒤바뀜에 대해 소설판의 다키는 흥미롭게도 “인격이 서로 뒤바뀐다는 일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경험이었지만, ‘나라는 존재로부터 잠시 동안 멀어질 수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면 일종의 ‘자유’를 획득하게 되는 셈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때의 자유는 우리나라 무속의 경우처럼 한(恨)을 ‘풀어내는’ 자유가 아니라 인도 요가의 경우처럼 ‘묶어내는’ 자유에 속한다. 실제로 영화 <너의 이름은>에서는 묶는 것을 뜻하는 일본어 ‘무스비’(結び)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미야미즈신사의 여궁사인 미야미즈 히토하는 이 무스비의 의미에 대해 손녀딸 미쓰하와 요쓰하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준다. 


 
“땅의 수호신을 말이다. 옛말로 ‘무스비’라고 부른단다. 여기에는 몇 가지 깊은 뜻이 있지...실을 잇는 것도 무스비, 사람을 잇는 것도 무스비, 시간이 흐르는 것도 무스비. 전부 같은 말을 쓴단다. 이 말은 신을 부르는 말이자 신의 힘이란다. 우리가 만드는 실매듭도 신의 솜씨와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지...한데 모아서 모양을 만든 후에 꼬아서 휘감고, 때로는 되돌리고, 끊기고, 또 이어지고, 그것이 실매듭. 그것이 시간. 그것이 무스비...물이든 쌀이든 술이든, 무언가를 몸에 넣는 행위 또한 무스비라고 한단다. 사람 몸에 들어간 것은 영혼과 이어지는 법이지. 그러니 오늘 올리는 제사는 말이다. 미야미즈 가문의 핏줄이 몇 백 년이고 지켜온, 신과 인간을 단단히 이어주는 아주 소중한 전통이란다.”

“신이란 말이다, 관계를 의미한단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엮지. 말 자체는 신이 아니지만 말에 의해 엮이는 마음 자체는 신이 되는 거야. 주먹밥은 신이 아니지만 쌀을 만든 땅과 물, 그리고 쌀을 기르고 수확한 사람과 쌀로 밥을 지어 주먹밥으로 만든 사람, 나아가 그 주먹밥을 받아서 먹는 사람을 모두 이어주지. 주먹밥으로 이어지는 그런 관계가 신이라는 뜻이지. 꿈이란 말이다, 평소와 다르게 어디인지 모르는 장소에서 상식을 벗어난 연을 맺는 일이란다. 그것도 ‘무스비’라고 부를 수 있는 게지.” 


       단적으로 말해 무스비는 신(神)이다. 《고사기(古事記)》는 무스비를 원초적 신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신으로서의 무스비는 모든 관계성이자 시간이고 언어이며 실매듭이면서 동시에 먹는 행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것은 실과 실, 사람과 사물, 사람과 사람, 몸과 영혼을 연결시켜 주는 신의 힘 그 자체이다. 이 중 시간과 신을 동격으로 여기는 관념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를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관계성을 신적인 무스비로 여기는 관념은 지극히 일본적이다. 그것은 관계를 중시하는 간인(間人)주의라든가 장(場)의 윤리, 역(役)의 원리, 세켄(世間), 화(和)의 원리와 같은 일본문화코드를 연상케 한다.

       무엇보다 주목할 것은 신을 언어와 연관시키는 발상이다. 사실 고대 일본인은 언어와 사물 사이를 구분하지 않고 양자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여 말 속에 영혼이 깃들어있다고 믿었다. 이를 ‘언령(言靈)신앙’이라 한다. 통상 신은 인간과 사회와 세계의 구성에 관여하는 근원적인 존재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신으로서의 무스비를 언어와 동일시하는 위의 관념은 지극히 라캉적이다. 라캉은 언어야말로 그가 상징계라고 이름붙인 인간과 사회와 세계의 구성을 결정짓는 근원적 요소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요컨대 <너의 이름은>이 표현하는 세계는 시공간이 연결되어 있는 무스비의 세계라 할 수 있다.

       미쓰하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같은 신을 모시는 이토모리 마을의 오래된 미야미즈신사 집안의 손녀딸이다. 할머니가 신사를 지키는 궁사를 맡고 있기 때문에 미쓰하와 요쓰하는 마쓰리 때마다 무녀로서 신에게 바치는 제물인 신악무(神樂舞)를 추는 등 주역을 맡는다. <너의 이름은>의 중심 무대인 미야미즈신사는 대대로 여자가 이어받기 때문에 미쓰하는 언젠가 할머니의 뒤를 이어 신주가 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신사는 실이나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신의 힘을 ‘무스비’로서 섬기고 있으며, 신체(神體)는 이승과 저승, 현재와 과거,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장소로 여겨진다. 혜성 티아마트가 떨어진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그 제신의 이름은 미야미즈 가문의 조상신인 시토리노카미다케하즈치(倭文神建葉槌命)로 별칭 아메노하즈치노오노카미(天羽槌雄神)라고도 한다.

       이 신은 《고사기》에는 등장하지 않으며, 《고어습유 (古語拾遺)》에서 인간에게 베 짜는 방법을 가르친 베틀의 신으로 나온다. 또한 《일본서기》에 따르면 천신 계열의 무신(武神)인 후쓰누시와 다케미카즈치가 토착신들을 평정하려 했을 때 별의 악신 아메노카가세오(天香香背男)만 토벌하지 못해 곤란해 했다. 이때 그들 대신 나아가 별의 신을 굴복시킨 자가 바로 베틀의 신 시토리노카미다케하즈치였다. 이토모리 마을에는 이 신이 끈을 무수히 엮어서 용을 휘감아 퇴치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처럼 일본 신도의 신들과 신도적 세계관을 밑그림으로 삼고 있는 <너의 이름은>을 통해 신카이 마코토가 정말로 전하고 싶어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것은 어쩌면 잃어버린 ‘일본’이라는 이름일지도 모른다.

 


박규태_
한양대학교 일본학과 교수
논문으로 〈현대일본종교와‘마음’(心)의 문제-‘고코로나오시’와 심리통어기법에서 마인드컨트롤까지-〉,〈고대 오사카의 백제계 신사와 사원연구〉등이 있고, 저역서로 《일본문화사》,《신도,일본 태생의 종교시스템》,《일본정신의 풍경》,《일본 신사의 역사와 신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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