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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27호-오페르트, 젠킨스, 그리고 페롱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06.19 19:12

                            오페르트, 젠킨스, 그리고 페롱 



                              news  letter No.527 2018/6/19                  

 

 

 

 

 

 


       1868년 5월 8일(양력) 금요일 밤 10시였다. 서해안의 남양만(南陽灣)으로 낯선 배가 한 척 들어왔다. 북부 독일 연방의 국기를 게양하고 있었다. 이 배는 이튿날 오전 10시에 행담도(行擔島)에 다다랐다. 다음날인 5월 10일에는 일군의 낯선 사람들이 작은 배로 옮겨 타고 삽교천을 거슬러 올라가 오전 11시경 구만포(九萬浦)에 상륙하였다. 이들은 덕산읍(德山邑)에 위치한 가야산(伽倻山)을 찾아갔다.


       덕산의 가야산에는 대원군의 부친 남연군(南延君, 1788-1836)이 묻혀 있었다. 은밀하게 잠입한 사람들은 오후 5시 30분경에 도착하여 묘를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5시간 동안의 작업 끝에 봉분의 한쪽을 파냈다. 하지만 무덤 아래쪽은 온통 석회 덩어리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바위와도 같은 석회층을 뚫기에는 시간도 장비도 부족했다. 하는 수 없이 이들은 작업을 중지하고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5월 11일 오전 6시경 배가 정박해 있던 곳으로 돌아갔고, 5월 12일 행담도에 이르러 원래 몰고 왔던 큰 배로 갈아타고 남양만을 떠났다. 영종도에서 식수와 양식을 조달하려던 그들은 조선 군인들의 총격을 받고 퇴각하였다. 이들은 5월 18일 조선을 떠나 상해로 돌아갔다.

       이 일은 흔히 ‘오페르트 도굴사건’이나 ‘덕산 굴총사건’ 등으로 불린다. 독일인 오페르트(Ernst Oppert), 미국인 젠킨스(Frederick Jenkins) 그리고 프랑스인 페롱(Stanislas Féron) 등이 주범이었다. 그들은 남연군의 묘를 파헤쳐서 그 유골을 탈취하려고 하였다. 조선의 위정자를 협박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의도였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의 매장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실수로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올해로 사건이 일어난 지 꼭 150년이 지났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과연 그 일을 처음 계획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독일, 프랑스, 미국을 국적으로 한 세 명의 서양인들이 이 일에 가담한 진짜 목적은 무엇이었나? 사건이 발생한 뒤에 일 처리는 어떻게 진행되었나? 관련자들은 이 일로 무슨 벌을 받았나? 어느 것 하나도 명백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그 여파는 상당히 심각하였다. 조선 사람들은 천주교와 서양 침략 세력을 동의어로 여기게 되어 혹독한 천주교 탄압을 당연시하였다. 또한 근대 여명기 한국사 속에서 이 사건은 천주교가 연루된 최대의 스캔들로 기억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이 사건이 발생하게 된 동기, 사건의 경과 및 사후 처리 과정 등에 관해서는 당시 동아시아 지역에 조성되었던 국제적인 역학 관계를 고려하여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아직 연구가 미진한 형편이다. 게다가 관련 사료들도 발굴되지 않은 것이 많다. 독일과 프랑스, 미국의 외교 관계 문서 속에는 관련 기록들이 상당량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국내 사료에서도 사건에 대한 기록들이 단편적이지만 산재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기록들을 모아서 국제적인 공동 연구를 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품은 것은 작년 가을 무렵부터였다.

       함께 연구해보고 싶은 인물들이 몇몇 떠올랐다. 한독 관계사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내고 있는 독일 튀빙엔 대학교의 이유재 교수, 동아시아 천주교 역사에 두루 밝은 파리 디드로 대학교의 피에르 엠마뉘엘 후 교수, 안중근 연구를 통하여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 입문한 미국 랜더 대학교의 프랭클린 라우시 교수 등이었다. 중국 상해 지역 근현대 자료를 잘 아는 연구자도 필요했다. 그러던 중에 강원대학교의 최병욱 선생을 알게 되었다. 근대 중국 천주교의 주요 인사 마상백(馬相伯)에 대해서 쓴 논문을 읽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꼭 함께 연구를 해보고 싶었다. 어렵사리 승낙을 받았다. 조선 사료를 다루어줄 연구자로는 규장각에서 관련 사료를 발굴한 적이 있는 원재연 선생이 적임자였다. 내가 접촉했던 모든 연구자들은 연구 취지에 찬동하고 흔쾌히 공동 연구를 수락하였다.

       이렇게 연구진을 구성하였고, 2018년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동 연구과제로 선정되었다. 4월 중순에 시작된 우리의 연구는 지금도 순항중이다. 다들 바쁜 분들이어서 자칫 우리의 연구가 뒷전으로 밀리면 어떡하나 하는 노파심에 2개월마다 논문 초고를 수합하겠다고 공언하였다. 그리고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새로 발굴한 자료들도 모아서 단행본의 부록에 넣겠다고 하였다. 순조롭게 진행되면 11월 초순에 연구결과 발표회를 가질 것이다. 발표회가 끝나면 모두 덕산의 남연군 분묘를 직접 찾아가서 오페르트 일행의 진입로를 확인하는 현장 답사를 할 계획이다.

       문제는 연구비가 빠듯하여 해외의 공동 연구자들이 결과 발표를 위해 입국하는 비용, 그리고 덕산 답사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것이었다. 한국의 천주교회는 이런 종류의 연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내가 페롱의 행적을 추적하는 글을 썼을 때에도 뜨악한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교구에는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다. 대신에 수도회 쪽을 알아보았는데, 한국 순교복자 수도회가 관련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한국사 속에서 천주교의 공과를 솔직하게 밝히는 것도 순교자들을 기리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취지였다. 좋은 연구 결과로 보답할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Alea iacta est!

 

 


조현범_
한국학중앙연구원
논문으로 <논문으로 <유럽 천주교의 불가타 성경 사용 양상: 트렌토 공의회 이후부터 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덕산 사건과 프랑스 선교사 페롱>, <윤지충의 폐제분주(廢祭焚主) 논거에 대한 일 고찰>, <마누엘 디아스와 《聖經直解》>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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