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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29호-‘아득한 성자’ 以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 7. 3. 20:51

                                  ‘아득한 성자’ 以後

 

 


                    news  letter No.529 2018/7/3                  

 

 

 

 

 

 


       아마도 우리가 살아온 날을 돌이켜보면, 때를 놓쳐서 후회스러웠던 일들이 몇 번은 있지 않을까. 바로 지난 5월26일 설악산 신흥사 조실 오현스님이 입적(入寂)하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야말로 덜컥 때늦은 소회(所懷)가 일었다. ‘나는 아직 스님을 알지 못 하는데....시간을 들여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이셨는데... 나는 역시 게으르고 의심이 많고 박복(薄福)한 사람’이라고 저절로 탄식을 하게 되었다. 올 3월 오현스님께서 설악산을 벗어나 모처럼 <불교평론> 사무실에 오셨을 때, 편집위원들이 함께 세배를 드리고 평소처럼 스님의 말씀을 경청하였는데, 그것으로 마지막이 된 셈이다. 혹시 이 뉴스레터의 독자 중에서도 누군가와 깊은 인연(因緣) 지어가기를 바라면서도 그 때를 미루거나 망설이는 경우가 있지는 않을까, 주위를 돌아보시면 좋겠다.


       불교계에서는 그 오현스님을 ‘설악산주’ ‘무애도인’ 혹은 ‘권승’(權僧)이라고 부르던데, 지난 십여 년간 나는 그 스님의 행적을 단편적으로 보고 들었을 뿐이라 큰 틀에서 퍼즐 맞추기를 아직 끝내지 못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절집 여기저기서 누군가를 ‘큰스님’이라 부르는 것을 흔하게 듣기는 하지만, 나는 도대체 어떤 스님이 큰스님인지 알아차리지를 못하겠다.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시시하다 못해서 가엾기 그지없는 “큰스님”도 적지 않게 보아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른바 재가수행(在家修行)불자이고 스님은 출가수행(出家修行)불자이므로, 가는 길에 서로 다른 부분이 있어서 애당초 개인적으로 나는 스님들의 일이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현스님의 일은, 처음 뵈었을 때부터 내게 매우 실질적인 화두(話頭)처럼 느껴졌다. 불교계 안팎에서 공공성 불사(佛事)를 굵직하게 지원함으로써 불교계 체면을 살려주신 것은 여기에 소개할 필요도 없이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고, 스님이 스스로 평생 만해(萬海)를 팔아먹는 “장사”를 너무 많이 했다고 말씀하신 적도 있다. 그런데 나는 스님의 그렇게 화려한 외형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님이 자신을 낙승(落僧)이라 칭하며 ‘참으로 比丘라면’ 어떠할지를 성찰하는 말씀이나, 부끄러운 충동으로 시집을 내서 좋은 논평을 자청했다는 告解나[사실여부는 모름], 특히 스님들은 선방(禪房)에서 죽은 말[死句]만 받들지 말고 프란치스코 교황처럼 중생과 함께 고통을 나눠야 한다는 말씀 등을 유심히 들었다.

       오현스님의 시(詩)를 연구한 박사논문도 나와 있는데, 스님의 수행(修行)을 제대로 연구하는 일이 앞으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인 것 같다. 여기 제한된 지면에 스님 행장(行狀)의 편린을 일일이 나열할 수가 없으니, 차라리 독자들께 소개하고 싶은 스님의 시 두 편을 아래에 싣고 이 글을 마무리하기로 한다.

 

                                         고목 소리

 

 

   한 그루 늙은 나무도

   고목 소리 들을라면

 

   속은 으레껏 썩고

   곧은 가지들은 다 부러져야

 

   그 물론 굽은 등걸에

   장독(杖毒)들도 남아 있어야

 

 

 

                      

                         취모검(吹毛劒) 날 끝에서

 

 

   놈이라고 다 중놈이냐

   중놈 소리 들을라면

 

   취모검 날 끝에서

   그 몇 번은 죽어야

 

   그 물론 손발톱 눈썹도

   짓물러 다 빠져야

 

 

 

 

 

 

이혜숙_
금강대학교 초빙교수
논문으로 〈불자 신행교육의 평가를 위한 예비적 고찰〉, 〈불교계의 청소년지원을 위한 정책적 제언〉, 〈구조적 폭력과 분노, 그 불교적 대응〉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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