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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36호-한종연 아우라: 한종연 단상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 8. 21. 18:42

한종연 아우라
- 한종연 단상 -

 

                                                                                                             news  letter No.536 2018/8/21      


 

 


  
  1. 

       발터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관해 사유를 전개하며 인용한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좋아해 즐겨 인용한다.

       옛날 옛적에 한 왕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큰 위기에 몰려 피신하던 중 한 오두막에 머물게 되었다. 공포와 추위에 떨던 왕은 주인이 만들어준 소박한 산딸기 오믈렛으로 간신히 허기를 면하였다. 시간이 흘러 궁으로 돌아온 후 왕은 그 음식을 잊지 못해 최고의 요리사들에게 산딸기 오믈렛을 만들어오라고 명하지만 그 어떤 요리사도 그 맛을 재현해내지 못했다.

       어휘 자체로도 매력적인 아우라는 이 이야기로 인해 내게는 마르지 않는 샘이 되었다. 이야기가 알려주듯 아우라는, 예술작품 뿐만 아니라 어떤 사물, 사람, 공간 등에도 깃들 수 있을 것같다.


  
2. 

       한종연 30주년 기념식을 다녀온 후, 예전 한종연 사진을 찾아보았다. 폴더를 클릭하니 낯익은 공간이 갑자기 열려져 나왔다. 하나하나 클릭할 때마다 펼쳐지는 풍경에 형언할 수 없는 감정과 신선함을 느꼈다. 묵은 사진에서 느끼는 신선함이라니……. 아마도 그것은 카메라 렌즈 앞뒤에 있던 사람들의 변화가 새삼 느껴졌기 때문이고, 이제는 사용하지 않는 아날로그 필름이 주는 느낌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공간. 건물은 건재하겠지만 이미 다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을 그 공간에 깃든 아우라 때문일 것이다. 


 

 

 


       그 공간에는 고유한 분위기가 있었다. 여러 요소들이 그 분위기에 기여했다. 칸막이와 게시판을 겸한 캐비닛, 요즘은 대개 벽으로 들어가 있기 마련인 소켓 전선이 달려있던 형광등, 포트와 컵. 평행을 이루고 놓여있던 간소한 책상과 스틸프레임 나무의자, 책과 화분, 난로, 벽시계, 그리고 낮은 천장 등.

       낮은 천장은 아늑하다. 벽에 붙여져 있는 종교화나 계절감을 보여주는 달력, 종교적 상징을 담은 작은 조각 또한 그 공간만의 분위기에 참여하고 있었다. 아우라는 종교적인 측면과도 무관하지 않기에 이런 상징적인 사물 혹은 예술은 더욱더 자연스럽게 아우라를 떠올리게 했다.


 

 


       아우라는 주관적인 경험 측면이 강하다. 문화와 언어, 집단무의식에는 유불선의 종교적 영향이 있겠지만 나의 개인적 종교적 배경은 가톨릭에서 찾을 수 있다. 세례와 여러 성사를 받았지만 내게 가톨릭은 진지한 종교나 신심 깊은 신앙이라기보다 어려서부터 우연적으로 각인된 문화이자 다소간 고양된 경험이며 어머니와의 추억이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인 한종연은 그래서인지 편안했고 떠돌던 내 마음이 그곳에 가면 차분해졌다.

       같은 맥락에서, 가끔 성당에 그냥 앉아 있기도 하고, 어릴 적 다니던 성당의 아우라를 간직하고서 수도원에서 열리는 중세철학 심포지엄에 참석하곤 했다.

 


 
3. 

       한종연 공간의 독특한 분위기는 상당 부분 책에서 왔다. 연구자들의 공간이니 당연하겠지만 다양한 연구 분야를 보여주는 책과 논문집 등이 공간의 성격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사진을 정리하던 중 완전히 잊고 있던 이미지 하나를 발견했다. 그 장소에 있던 그때의 나는 image 혹은 imagination 같은 어휘에 관심이 있었고 책등에 인쇄된 Imagining Religion 이라는 제목에 끌렸던 모양이다. 전체 3분의 2가 아웃포커싱된 이 사진에서 초점이 선명히 맞춰진 이 책이 조나단 스미스라는 학자의 의미 있는 저작임을, 한종연 뉴스레터를 엮어낸 책(『이야기를 해야 알죠! : 37인이 말하는 종교문화』)을 최근에 읽고서 알게 되었다. 

 

 

 

 


       이 흑백 사진에는 성긴 입자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유는 이렇다. 예전에도 지금도 나는 카메라 장비를 최소로 유지한다. 사진이 나의 삶에서 너무 큰 영역을 차지하지 않기를 바라거니와 부피가 크거나 무게가 나가는 장비는 감당이 안 되어서이다. 이렇듯 장비를 늘리고 싶지 않거니와 갑자기 개입하는 플래시의 이질적인 빛의 톤을 좋아하지 않아 내장 플래시이든 외장 플래시든 플래시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빛이 부족한 실내의 경우 감도 높은 필름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런 필름은 입자가 거칠다. 흑백 필름의 경우 더 거칠어, 결과적으로 더 인상적인 이미지를 만든다.

       이후 나는 몇 가지 이유로 디지털 방식 카메라로 전환했는데 필름, 특히 거친 입자의 흑백 필름이 주는 이런 느낌은 이제 표현하지 못한다. 미디움, 도구 자체도 표현인 것이다.


  

4. 

       한종연 사진에는 한종연 연구실과 더불어 고유한 아우라가 깃들어 있다. 나는 이를 ‘한종연 아우라’ 라고 부르고 싶다.

       이 이미지들을 기계적으로 복제할 수는 있지만, 같은 이미지를 촬영해낼 수는 없다. 공간이 사라졌고, 나는 더 이상 필름을 사용하고 있지 않으며, 그 이미지를 촬영했던 예전의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한종연에서 촬영했던 사진 이미지들은 아우라를 갖는다. 아니 아우라가 깃들어 있다.

       아우라는 대체불가능하고 재현불가능하다. 쉽게 깃들지 않지만 매우 드물고도 귀하게나마 우연히 생겨난다, 하여, 생각을 유연하게 하고 마음을 열어 두려 한다. 아우라가 깃들 수 있게.

      

 


김명신_
한신대 영상문화학 시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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