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B. 타일러와 《원시문화》 news letter No.563 2019/2/26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 상상 따위를 표현하기 위해 글을 쓰곤 한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른 글이 한 권으로 묶인 것을 우리는 책이라고 한다. 잘 만들어진 책은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책이란 것이 재미있는 까닭은, 저자와 그가 쓴 책 사이의 관계가 생각처럼 선명하지도 않고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가령, 어떤 책(가령 말리노프스키의 책이라든지)의 경우에는 저자의 개성이 강렬히 느껴져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저자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 반면, 또 어떤 책을 읽을 때는 책 자체의 세계에 빠져들면서 그 세계를 창조한 저자에 대해서는 거의 생각하지 않게 된다. 타일러의 책은(..
기억의 정치 news letter No.562 2019/2/19 오이코스학교(Oikos School)의 겨울 프로그램을 오키나와에서 ‘평화’를 주제로 진행했다. 오이코스학교는 신학대학에서의 교회와 교단을 위한 제도권 교육을 넘어 시대를 읽고 응답하는 대안적 신학교육을 위한 모임이다. 오키나와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오키나와는 일본이면서도 일본과 달리 오히려 남방의 정취를 더 많이 담고 있는 이국적인 관광의 섬이다. 그런데 오키나와는 관광의 섬인 동시에 ‘기지의 섬’이다. 일본 국토의 1퍼센트도 안 되는 이곳에 재일 미군기지의 4분의 3(74.6%)이 집중되어 있다. 오키나와 문제는 제주의 강정마을과 연계된 역사 현장이다. 오키나와는 동아시아의 굴곡진 역사의 현장 가운데 하나이다. ‘류큐(琉球)왕국..
종교, 양심의 이름으로 괴롭히는, 구원의 이름으로 단죄하는 news letter No.561 2019/2/12 즐겨 보는 웹툰 중에 인간 속에 섞여 사는 용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 있다. 이들의 본체는 거대한 모습으로 하늘을 날며 불과 물, 지진과 해일 등을 다스리는 초월적인 능력을 지니지만, 평소에는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인간과 마찬가지의 희로애락을 지닌 채 살아간다. 특이한 것은 이들에게 양심통이라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때 신통력이 떨어지고 마음 뿐 아니라 전신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앓아눕는다. 흥미롭게도 용들의 이 양심이란 사회적으로 합의되거나 객관적으로 정해진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개체마다 각기 다른 주관적 기준에 따라 작동된다. 가령..
《홍루몽》을 읽다 맞이한 설날의 잡념 news letter No.560 2019/2/5 요즈음 설을 맞이하는 각 집안의 풍습을 들여다보면 매우 다양한 정경이 펼쳐지는 것 같다. 나만 해도 어릴 적부터 설은 돌아가신 조상을 모시는 날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었지만 요즘은 그렇지만도 않고 세대마다 가정마다 이날을 보내는 방식도 날로 다변화 되고 있다. 아무래도 조상에 대한 생각이 각별했던 전통시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설의 의미나 분위기가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중국 청나라 때 조설근과 고악이 쓴 《홍루몽》을 읽다보면 설을 쇠는 당시의 생활상이 잠깐 드러나는 데 흥미로운 장면이 있어서 소개한다. 이 소설 제53회를 보면 섣달이 되자 온 집안이 설날 차례 준비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