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레터

889호-자연과 영성의 일치 가능성에 대하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5. 7. 1. 16:59

자연과 영성의 일치 가능성에 대하여

 

 

news letter No.889 2025/7/1

 

 

 

이 글은 조현수의 ·생명·우주: 마조히즘에 대한 들뢰즈의 이해로부터 살펴본 <자연과 영성의 일치 가능성>에 대하여에 대한 소개 글입니다.

 

 

영성의 추구라는 것을 지향하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 중의 하나는 그것이 세계의 진리에 대해 과학과는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이다. 종교는 세계의 진리가 우리 인간에게 우리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을 넘어서는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것을 요구해 온다고 주장하지만, 과학은 이성을 활용한 자신의 합리주의적인 세계 이해 속에서는 이와 같은 요구의 존재 같은 것은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과학과 종교는 세계의 본질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제시하는 것으로 나누어지게 되고, 이 이해의 상충으로 인해 서로 대립하게 된다. 종교는 결코 과학과는 다른 물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과학과 공유하고 있는 같은 물음, , 세계의 진리란 무엇이냐는 물음에 대해 과학과는 대립되는 대답을 내어놓기 때문에 과학과 구분되는 것이다.

 

그런데 종교가 어떻게 해서 세계의 진리에 대해 이처럼 과학과는 다른 대답을 내어놓을 수 있는가 하는 것에 종교의 가장 큰 수수께끼가 있다. 과학은 이성의 합리성을 통한 세계 이해를 주장하지만, 종교는 주로 우리 자신 밖의 외부 세계를 향해져 있는 우리 자신의 의식의 관심을 우리 자신의 내면 속으로 되돌리는 <의식의 전환>을 수행하는 것을 통해서만 이성의 한계를 넘어 세계의 참모습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의식의 전환>에 대한 이와 같은 종교의 강조로부터 다음과 같은 중요한 문제들이 대두하게 된다.

 

1. 세계란 우리 자신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 거대한 무엇, 따라서 우리 자신 에 있는 어떤 것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 자신 밖에 있는 것인 이러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의식의 관심을 당연히 우리 자신의 으로 향하게 해야 할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의 의식의 관심을 우리 자신의 내면 속으로 향하게 하는 이와 같은 <의식의 전환>이라는 것이 우리 자신의 에 펼쳐져 있는 저 광대한 외부 세계의 진리를 참되게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단 말인가?

 

2. 과학이 세계에 대해서 발견해 내는 여러 가지 진리들, 가령 우주의 기원인 빅뱅이니 시간과 공간의 구조에 관한 상대성 이론이니, 그리고 생명의 비밀인 <DNA 이중 나선 구조>니 양자 역학이니 하는 것들 등등... 이것들은 모두 우리의 의식의 관심을 우리 자신 밖에 있는 외부 세계를 향하도록 함으로써 발견해 낸 것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와 같은 우주의 기원이나 시간과 공간의 구조, 그리고 생명의 비밀 같은 것들, 이것들은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것 중에서 가장 궁극적인 것들, 어쩌면 우리 자신의 운명이 그것들에 대한 이해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 같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세계에 대해서 알고자 하는 것 중에서 과학이 찾아낸 이러한 진리들보다 더 궁극적이거나 더 중요한 것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일까? 과학이 발견해 낸 이 과학적 진리들보다, <의식의 전환>이라는 것을 통해서만 찾아낼 수 있는 더 근본적인 진리라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것일까?

 

3. 보통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 속에 들어 있는 것이란, 그것이 바로 저마다 서로 다른 개인으로서 존재하는 우리 자신의 내면 속에 들어 있는 것이라는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우리 자신이라는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어떤 사적(私的)인 사연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즉 우리 자신의 내면 속에 들어 있는 것이란, 서로 다른 개인이 저마다 서로 다르게 겪게 된 그의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그의 내면 속에 들어오게 된 순전히 개인적인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실로 우리 자신의 내면 속에 들어 있는 무의식(심층의식)을 이해하는 학문의 정설로서 자리 잡고 있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역시 이러한 이해가 타당한 것임을 인정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우리 자신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것이란, 그것이 아무리 깊은 곳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복잡한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에는 모두 개인이 그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 겪게 되는 어떤 사적(私的) 체험으로 환원되어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주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계의 참모습을 인식하기 위해 우리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가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함을 주장하는 종교의 입장은, 우리 자신의 내면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단순히 이와 같은 개인적인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 자신의 내면 속에는 이와 같은 개인적인 것이 우리의 시야를 어지럽히게 되는 곳보다 더 깊은 곳에, 이와 같은 개인적인 것을 넘어 우리에게 세계의 객관적이고 근본적인 진리를 가르쳐 줄 수 있는 초개인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의 것이 있다고 그것은 주장하는 것이다. 종교에 따르면, 우리 자신의 내면 속에 들어 있는 이와 같은 초개인적이고 보편적인 차원의 것이란 결코 개인이 저마다 서로 다르게 겪게 되는 개인적·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유래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러므로 또한 이러한 개인적·역사적 경험에 의해 변질되거나 손상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 이 초개인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란, 저마다 서로 다른 역사적 상황 속에 처해 있는 각 개인이 바로 그러한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어떤 우여곡절의 경험이나 어떤 삶의 풍파를 겪게 되건, 이러한 역사적 체험의 우연성이나 상대성에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불변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영원하고 초역사적인 것이며, 이처럼 영원하고 초역사적인 것으로서 모든 개인들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고 있는 이 초개인적이고 보편적인 것이 바로 <세계의 진리>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인간으로의 거듭남>이라는 과제를 부여해 온다는 것이다.

 

마조히즘이라는 현상은 어떤 엽기적인 성향의 개인이 저지르게 되는 한갓 병리적이고 일탈적인 현상으로 이해되기 쉬워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이 마조히즘의 진실에 대한 들뢰즈의 새로운 이해에서, 종교가 내세우는 저 놀라운 주장이 어쩌면 진실일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이 마조히즘으로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의 내면 속 깊은 곳에서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우리 자신의 개인적·역사적 이야기를 넘어 자연의 근원적인 비밀을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는 <내적 자연>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러한 <내적 자연>의 숨겨진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듣는 것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자신 밖에 있는 저 거대한 <대자연>의 진리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던 것이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연에 속하게 만드는 <가장 자연적인 본능>인 우리 자신의 성sexuality이라는 것이 단순히 그것의 현실적인 모습인 감각적 육욕의 모습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 초감각적인 영성의 차원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해 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이러한 성을 우리 자신의 가장 근원적인 자연성으로 우리에게 부여해 주고 있는 저 대자연이라는 것이 단순히 유물론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장 근원적인 자연성으로부터 우리를 영성적인 것을 향해 나아가도록 만드는 영성적인 실체라는 것도 알 수 있게 되는 것 같았다. 우리가 보기에, 종교가 흔히 그렇게 하듯이, 자연 너머에 있는 어떤 다른 것의 이름을 내세우며 우리에게 영성의 추구를 요구해 오는 것은 근거 없는 횡포일 수밖에 없는 것이며, 과학처럼 자연을 유물론적인 것으로 그대로 놔두고서 영성을 추구하는 것도 역시 근거 없기는 마찬가지인 무망한 짓에 불과하다. 오직 자연과 영성의 일치를, 그러므로 우리의 성과 영성의 일치를 말할 수 있을 때만이, 종교(영성의 추구)는 진정으로 참되게 성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 책은 우리가 어떤 경로를 거치는 것을 통해 마조히즘에 대한 들뢰즈의 이해로부터 종교의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조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저서로 《성·생명·우주 - 마조히즘에 대한 들뢰즈의 이해로부터 살펴본 <자연과 영성(靈性)의 일치 가능성>에 대하여》, 《프랑스철학과 정신분석》(공저), 《로컬리티의 시간성》(공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