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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288호-종교적 문맹과 종교교육(류성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3. 11. 18. 18:14

 

 

                            종교적 문맹과 종교교육

 


2013.11.12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면 문맹이라고 하듯이, 종교에 대해 모르면 ‘종교적 문맹’이라 한다. 이 말은 미국종교학회(American Academy of Religion, AAR)가 2010년 4월에 발간한 미국 공립학교에서의 종교에 대한 교육을 위한 지침서에서 사용한 것이다. 이 책자는 미국 연방정부가 공립학교에서 특정 종교의 교리와 사상, 실천을 가르쳐서는 안 되고(the education of religion), 세계 여러 종교들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서 가르쳐야 한다(the education about religions)는 지침을 발표했고, 그 후 그에 부응하여 종교학자와 교육학자, 일선 교사 등이 함께 3년 동안 연구한 것인데, ‘종교적 문맹’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했다.

 

세계의 주요 종교 전통들과, 그 전통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종교적 표현들에
대한 기본적 교의(tenets), 그 전통들과 주장들 내에 있는 표현과 신념의 다양성,
역사적 으로나 현실적으로 인간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삶에서 종교가 감당한
역할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바로 ‘종교적 문맹’이다.

 

위의 ‘종교적 문맹’의 기준에 따르면 우리는 과연 종교적 문맹에서 벗어났는가? 우리가 이슬람교와 힌두교, 시크교, 자이나교, 유대교, 유교, 도교, 바하이교, 신도 등등 종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나라의 천도교, 대종교, 원불교, 증산교, 유교 등등 각 종교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가? 각 종교들의 세계적 분포와 다양한 교파와 종파들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는가? 세계문화유산의 과반수가 종교 관련 문화유산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지?

 

미국종교학회에서는 이 문건에서 다룬 ‘종교적 문맹’을 거론하면서 공립 초·중등학교에서 ‘종교에 대해(about religions)’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명시했다.

 

왜 종교에 대해 가르쳐야 하는가? 첫째, 미국에 종교에 대한 광범위한 문맹
(a widespread illiteracy about religion)이 존재한다. 둘째, 이러한 문맹 으로
연유되는 몇 가지 결과가 있는데, 그 중에는 편견과 적대감을 불러일으켜 다양
성과 평화로운 공존, 그리고 지역적이고 국가적이며 지구적인 활동영역 에서의
협력을 증진하는 노력을 저해한다. 셋째, 초·중·고등학교에서 학문적 (academic)
이고 비신앙적(non-devotional) 관점으로 종교에 대해 가르침 으로써 종교적 문맹
을 줄일 수 있다.

 

 

말하자면 초등학교에서부터 종교에 대해 가르쳐야 종교적 문맹을 줄일 수 있고, 그래야 편견과 적대감을 줄여서 다양성을 인정하고 평화롭게 공존하며 서로 협력하며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종교학회는 그러한 입장에서 종교교육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시한 것이다.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과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는 초등학교부터 종교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종교를 모르면 세계도, 세계의 역사와 문화도 모르게 되고, 그로 인해 갈등과 다툼, 분쟁과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종교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종교에 가르쳐야 종교적 문맹에서 벗어나게 되고, 다른 종교에 대한 편견과 적대감을 줄이는 동시에 상호 협력하고 공존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미국의 ‘수정헌법센터’(The First Amendment Center)가 제시한 다음과 같은 교육방법을 참조할 수 있다고 본다.

 

1) 종교에 대한 학교에서의 접근방법은 학문적(academic)이어야지 신앙적
(devotional) 이어서는 안 된다.
2) 학교는 학생들로 하여금 종교를 인식(awareness)하도록 노력해야하지
종교를 수용 (acceptance)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3) 학교는 종교에 대해 공부(study)하는 것을 도와야지 종교를 실천(practice)
하는 것을 도와서는 안 된다.
4) 학교는 학생들에게 종교적 견해의 다양성을 접하도록(expose) 해야지 어떤
특정한 견해를 주입(impose)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
5) 학교는 모든 종교에 대해 가르쳐야(educate) 한다.
6) 학교가 종교를 장려하거나(promote) 모독해서는(denigrate) 안 된다.
7) 학교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종교적 신념들을 알려주어야 한다(inform).
그것이 어떤 특별한 신념을 학생들이 따르게 하는 것(conform)이 되어서는 안 된다.

 

말하자면 종교에 대한 교육은 학문적 차원에서 종교를 인식하는데 중점을 두고 가르치고 공부하게 하며, 모든 종교를 다루어 그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교육은 공립학교에서도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에 미국 종교계와 교육계가 함께 공감하고 있다.

 

외국의 교육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사실상 우리나라의 초·중고등학교에서는 종교에 대한 교육이 거의 없다. 종교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특정의 종교계 사립학교(종립학교)에서 그 학교의 설립과 관련된 종교를 정규과목으로 가르치고, 관련 종교의식에 의무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특정 종교를 위한 종교교육’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공립학교와 일반 사립학교에서는 종교교육이 무시되고 있고, 단지 역사나 사회, 윤리 등의 몇몇 과목에서 단편적으로 종교에 대해 가르쳐지고 있을 뿐이다. 결국 종교적 문맹을 양산하는 교육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10년 4월의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종교계 학교도 공교육체제에 편입되어 있고, “종교적 중립성이 유지된 보편적 교양으로서의 종교교육 범위를 넘어서서 학교의 설립이념이 된 특정의 종교교리를 전파하는 종파교육 형태의 종교교육을 실시하는 경우에는...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법 감정에 비추에 볼 때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한 종교교육이라고 보이는 경우에는 위법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하여 종교계 학교에서도 종전처럼 ‘종교교육’을 실시하기 어렵게 되었다.

 

우리의 교육당국에서는 이를 계기로 2011년에 종교계 사립학교는 물론 일반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국가수준의 교과과정을 고시했다(2014년 3월 1일부터 시행). 이 교과과정에서는 중학교의 기타 선택과목과 고등학교의 일반 선택과목의 교양과목 중 기존의 ‘생활과 종교’를 ‘종교학’으로 변경했고 그 내용도 세계 및 한국의 여러 종교들에 대한 기본 지식과 종교문화에 대한 이해, 그리고 균형 있고 중립적으로 종교에 대한 관점을 지니도록 구성했다. 이 교육과정에 따라 종교교육이 된다면, 학생들로 하여금 여러 종교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할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고, 자신이 믿는 종교 이외의 종교들이나 모든 종교들에 대해서도 공정하고 공평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교육을 받지 못한 기성세대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 이외의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아예 종교에 대해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도 많다. 말하자면 기성세대에 특히 ‘종교적 문맹자’가 너무 많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신앙인 중에서도 ‘종교적 문맹자’가 없지 않다. 그러한 ‘문맹’으로 인해 우리사회는 다른 종교들을 폄훼하거나 곡해하고, 심지어 왜곡하여 비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종교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그러한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서구의 교육 당국과 종교인들, 그리고 종교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우리도 이제 보다 적극으로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류성민_

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교수


sungmin@hs.ac.kr


논문으로 〈공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 필요성과 현실〉, 〈근대 이후 한국 사회변동과 개신교 학교의‘종교교육’:

종교의 자유와 정교분리 문제를 중심으로〉,<한중일 삼국의 종교정책 비교>, <한미일 삼국의 종교정책과 종교교육 비

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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