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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와 사회교리

 

                       -최근 가톨릭의 시국선언을 보며


 

2013.11.26

 

 

한국의 그리스도교 특히 개신교의 성장은 1960-70년대의 소위 “잘살아보세”라는 정치적. 사회적 운동과 기막히게 잘 들어맞았으며 긍정의 힘을 변용한 “번영신학”은 한국인들의 기복신앙과도 잘 맞물려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 긍정의 힘은 미국적인 가치라면 뭐든 잘 팔리는 한국 땅에 무서운 속도로 퍼졌으며 대형 교회를 열망하는 개신교 목사들은 이 미국식 가치의 열렬한 외판원이 되었다. 대형교회들의 웅장한 예배당, 호화스러운 각종 설비, 천문학적 액수의 헌금 등은 메가 처치 열풍을 한국 땅에 일으켰다. 세속적 성공을 바로 하느님의 축복과 동일화시킴으로서 우매한 신자들을 성장과 축복 이데올로기에 함몰시켜 버린 대형교회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른 시간 내에 돈과 권력, 명예를 쥐고 싶어 하는 한국의 신자들을 매료시켰다. 눈치 빠른 목회자들은 신자들이 세속적 성공 과정에서 따를 수 있는 죄에 대한 심리적 불안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도록 교묘하게 중산층의 정서를 읽어내면서 문화적 코드를 맞춘 달콤하고 세련된 설교를 통해 급속하게 성장했다. 편하고 쉬운 것만을 좋아하는 일반신자들의 기호에 맞게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성공신화 등 달콤한 메시지들만 전달할 뿐 사회정의, 공동선, 개인 윤리와 책임성 같은 쓴 소리는 외면해왔다. 그러나 현실의 불의와 모순을 외면하고 추상적이며 달콤한 환상만을 부추기는 설교는 바로 마르크스가 말한 “인민의 아편”이다.

 

세속적 성장지상주의가 자신들의 교회성장 욕구와 맞물려 폭발적 성장을 구가했던 과거 군부독재시절의 기억을 못 잊어 하는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최근 서울 강남의 한 교회에서 뜬금없는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예배를 열고 더욱이 설교자는 “하나님도 독재를 했으니 우리도 독재가 필요하다”는 황당한 궤변으로 교계 안팎의 우려와 비웃음을 샀다. 다시 권위주의적 체제로 환원시키고자 하는 공안 세력들의 정치적 기획과 꼼수가 빤하게 보이는데도 극단적 보수주의와 배타주의로 무장된 한국 개신교계 안에 파괴적 반공주의가 다시 부활하고 있는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 이들은 반공주의를 상품으로 활용하는 공포마케팅을 활용하면서 “종북”과 “좌파”라는 주홍글씨가 난무하는 저주의 굿판을 주도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의 근원적 원인을 제공한 성장지상주의자들은 “정의가 없는 사랑은 등뼈가 없는 몸과 같다”고 했던 폴 틸리히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최근 국정원·국방부·국가보훈처·경찰 등 국가기관들이 지난 18대 대선 과정에 조직적으로 개입하고 상호 협조한 전모가 밝혀지면서 헌정질서의 유린과 민주주의의 기본가치가 훼손되고 있다고 판단한 한국 가톨릭교회는 특수사목분야인 군종교구를 제외한 전국 15개 모든 교구가 일제히 시국선언을 발표하였고 현재도 곳곳에서 시국미사가 진행 중이다. 과거 엄혹했던 군부독재시절 가톨릭교회는 민주화와 인권에 대해 대사회적 발언과 적극적인 참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늘 영남권 지역 주교들은 방관내지는 비협조적이었고 다만 교회의 일치된 모습이 훼손될까봐 자신들의 발언을 자제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 시국선언은 가장 보수적인 교구로 알려진 대구대교구를 비롯하여 전국의 모든 교구와 임의기구인 정의구현사제단뿐 아니라 공식기구인 정의평화위원회와 수도장상연합회, 그리고 평신도단체들이 참여하는 전국적 규모의 천주교연대의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어느 일간지는 박근혜 정부가 “저온화상”을 입고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가톨릭교회의 최고 협의기구인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는 “그동안 우리는 어려운 고통의 과정을 겪으면서 민주화의 목표를 단계적으로 이루어왔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면 역사의 흐름을 되돌려놓으며 뒷걸음치는 게 아닌가, 이래선 안 된다는 공통된 깨달음이 있기에 모든 교구의 신부님들이 일어나서 백성들의 진실된 인식과 이해를 촉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교단의 견고한 단일성과 응집력 그리고 신자들에 대한 성직자들의 압도적인 권위 그리고 근대 한국 민주화 운동에 있어 가장 큰 지분(?)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가톨릭교회의 이런 움직임은 박근혜정부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말끝마다 원칙과 신뢰를 앞세우는 현 정권의 도덕적 정당성에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시국미사의 발언수준도 처음에는 국정원 개혁과 정부의 회개와 사과를 촉구하는 정도였지만 지난 11월 22일 전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은 급기야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할 정도로까지 비화되어 초대형 화재로 확산되었다.

 

국정원의 개혁과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시국선언 외에도 최근의 4대강 사업,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용산참사, 밀양 사태와 탈핵운동 등 첨예한 갈등 현장에는 예외 없이 가톨릭교회의 사제들이 참여하고 있다. 최근 들어 가톨릭 신자들의 분포율을 보면 도시 중산층이 압도적인 비율로 나타났고 교회가 점점 보수화. 우경화 되면서 교회의 사회정치적 관심과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이 적어져간다는 자성과 비판이 일어나고 있었고 진보파와 보수파의 불협화음이 내연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사이에 교회가 왜 현실정치에 깊이 개입하는가, 세속적인 문제에 사제들이 왜 길거리에까지 나와서 시위를 하느냐는 논쟁과 비판은 해묵은 정. 교 분리에 대한 논쟁을 다시 가열시키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가 말하는 내세는 문자적으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의미론적 그리고 가치론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종말론적 미래는 선취적인 미래(advent)이며 그것은 미래를 바로 ‘지금 여기에서’ 앞당겨 실현하는 것이다. 구원이란 이 땅의 현실에서 시작하여 미래에 완성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의 존재 목적은 교회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봉사하기 위한 것(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8항)이기에 사제들은 불의한 현실에 대한 예언자적 고발을 감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천주교 주교회의는 1982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2주일을 '인권 주일'로 지내왔는데 2011년부터 '사회 교리 주간'으로 지내고 있다. 교회의 '새 복음화' 노력이 바로 사회 교리의 실천이라는 사실을 신자들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저온화상정도에서 그칠 것 같았던 사건이 이제 초대형화재로 비화되었고 그 불똥은 다른 종단들과 사회단체에로 확산될 조짐이 여실히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정치인들이 종교문제에 관한 한 자신들이 필요할 때 찾아가거나 청와대로 초청하여 덕담이나 나누면 된다고 생각하는 정도의 지극히 안이한 수준을 가지고 있으니 이번 사건도 이렇게 확대재생산해버린 것이다. 종교집단들이 갖는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전문가적인 진단과 대응이 필요한데도 과연 이 정부안에 종교문제 전문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특히 현 정부의 주요 담당자들과 천주교는 과거 군부독재 정부시절부터 질긴 인연을 이어왔고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상호간 수많은 학습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1974년 유신헌법무효를 외치며 박정희정부와 전면전을 펼쳤던 지학순 주교의 구속이 정의구현사제단의 탄생으로 이어졌는데 40년이 지난 후 또 다시 비슷한 사건이 재연되는 것을 보며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금 되새기게 해본다.



문영석_

 

강남대학교 국제지역학부 교수


smoon@kangam.ac.kr


주요저서로 《Korean and American Monastic Practices》와 〈성스러운 폭력과 희생제의의 탈신화화〉,

 

〈Sociological Implications of the Roman Catholic Conversion Boom in Korea〉,<다민족. 다문화사회

 

서의종교>,<미국사회의 근본주의와 종교권력>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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