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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324호-21세기 종교학 하기(안신)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4. 7. 23. 17:37

 

                      21세기 종교학 하기


                
                      

                                                      

 

2014.7.22 

 

 

    7월 폭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숲의 나무마다 매미소리가 가득합니다. 여름방학을 맞은 막내 아이는 제 손을 잡고 강변에 나가 잠자리와 메뚜기를 잡자고 야단입니다. 40대 중반이 되니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그 자체가 감사하고 평소에 못 뵈었던 스승님과 친구가 그립습니다. 학기 중에는 학회 일로 지인들에게 글 독촉을 수없이 했는데 이제 고스란히 그 일을 제가 감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종교학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종교학이 저를 선택하여 이 일을 하게 하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대학원시절 고(故) 윤이흠(1940-2013) 교수님의 수업을 기억합니다. 영어원전 강독시간에 한 문구를 “종교학 살기”라고 번역하자, 교수님께서 웃으시며 “자넨 지나치게 심각해서 탈이야. 살기 위해 종교학을 하는 것이지, 종교학마저 산다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학부 때 일찍 결혼하여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던 저는 그 말씀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아직까지 스승님이 말씀하신 ‘마음의 여유’는 묘원합니다.

 

 

   한국에서 종교학자의 길은 좁고 외롭습니다. 우리시대에는 신학과 교학의 이름으로도 얼마든지 종교학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래 의도와는 달리 우리의 보편적 언어가 ‘부족이 사용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자긍심과 희열은 그 어느 학문분야보다 강하지만 소수의 학자가 여러 곳에 흩어져 일하다 보니 우리의 종교학적 증언은 학문적 소통의 장에서 부적절한 언어로 홀대를 당하곤 합니다. 아마도 이러한 어려움은 과거에도 있었고 미래에도 있을 것입니다.

 

 

    2014년 5월 유럽종교학회에 참석했습니다. 창립 400주년을 맞는 네덜란드 흐로닝엔대학교에서 열렸습니다. 각국마다 종교교육(education about religion)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고 종교현상학과 반 델 레에우에 대한 새로운 읽기가 시도되고 있었습니다. 과거 기독교문화가 지배하던 유럽에서 과학과 종교가 서로 대화하고 이슬람과 신종교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종교학자들이 한 목소리로 ‘종교학의 정치’(politics of religious studies)를 이야기하는데 놀랐습니다. 종교학을 홀로 하지 않고 정치인과 경제인에게 그 필요성과 독특성을 설득하면서 공공의 장에서 시민의 이해와 참여를 구하고 학자들 간의 국제적 공동연구를 진행하는 모습이 저에겐 익숙하지 않았습니다. 학문의 장은 종교학적 중립성을 요구하지만 인간의 삶은 정치적 타협과 설득을 요청합니다. ‘호모 렐리기오수스’(종교적 사람)는 ‘호모 폴리티쿠스’(정치적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얼마 전 발표된 지역특성화 사업에 많은 대학들이 흥미로운 제안서를 제출하였는데, 그 가운데 “통일을 대비한 사회통합형 종교지도자 양성사업단”이 선정되었습니다. 21세기 다문화, 다종교사회에 진입한 우리사회가 꼭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입니다. 이처럼 상아탑 안에서도 문학자, 사학자, 철학자, 신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사이에서 종교학자는 자신의 자리를 잘 설득해야 합니다.

 

 

     지난 7월 3일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한국문학과종교학회와 한국종교학회가 공동학회를 개최했습니다. “문학과 경전 그리고 종교교양”(Literature, Scripture, and Religious Literacy)을 주제로, 15편의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문학자, 영화학자, 종교학자, 신학자, 문화비평가 80여 명이 모여 귀한 배움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전을 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 문학과 경전을 통하여 종교를 이해할 수 있을까? 탈(脫)문학과 비(非)영화 및 무(無)종교를 언급하는 참신한 발표가 있었습니다. 반 고흐가 1885년에 그린 ‘성경이 있는 정물’은 우리 종교학자가 가야할 길을 잘 보여줍니다. 서로 언어와 태도가 달라서 때로는 오해도 하지만 이러한 낯선 만남은 종교학의 성숙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합니다.

 

 

 


 안신_
배재대학교 주시경대학 교양교육부 종교학 교수
shinahn@pcu.ac.kr
최근 논문으로는 <종교복지실천에 대한 현상학적 연구-캔다(E. Canda)와 데레조테(D. Derezotes)의 중심으로->, <영화에 나타난 자살과 종교치유에 대한 연구: 도가니, 내 이름은 칸, 세 얼간이를 중심으로>, <이론과 전통이 만났을 때-주제별 종교연구의 과제와 전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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