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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홍의 살며생각하며](6)“이것도 길인가?”

 

한국대학신문 [기획연재] 2014.04.06

 

*** 행복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고들 한다. 나날이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고 말들 한다. 우리 시대 종교학 석학이 보내는 '소소해서 종종 잊곤 하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메세지 <정진홍의 살며 생각하며>에서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나보자.

제게 언제부터 길에 대한 상념이 일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길은 제게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황홀하면서도 고즈넉한 팔랑거림으로 스며있습니다. 그래서 ‘길’이라는 글자만 봐도 설렙니다. 게다가 그것이 도(道)와 겹치고, 또 그것에 그리스어 호도스(길)와 겹치면서 길은 제게 거의 ‘신비한 것’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겪은 길은 제가 기억하는 한 꽃길이었습니다. 툇마루에서 대문에 이르는 어른 발걸음으로 열 발작이 채 못 되는 마당 한가운데 길은 양 옆으로 채송화가 가득 핀 그런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길은 제게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우렁이를 잡으러 논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미끄러져 논에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두렁을 따라 걷는데 앞에 가던 누님이 그 두렁을 ‘논두렁길’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속으로 의아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것도 길인가?’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아마도 그 때 이후부터인 것 같습니다. 저는 자주 이런저런 길을 걸으면서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을 묻곤 했습니다. 신작로를 걷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갑자기 ‘이것도 길인가?’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할아버님 산소에 가는 산속 오르막길은 실은 아무런 흔적도 없는 그저 숲속이었는데 어른들께서는 ‘산소 가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길을 좇아 숨을 몰아쉬며 산소에 오르면서 저는 또 그렇게 물었습니다. ‘이것도 길인가?’

가까운 길도 있었습니다. 먼 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고 가까움과 관련해서는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 길은 실은 길이라는 의식조차 없이 그저 그 길을 좇아 걸었을 뿐인데, 가깝든 멀든 그 길을 따라 목적지에 이르면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겠습니다만 길이 일정한 곳을 떠나 뜻한 자리에 이르는 과정, 곧 내 움직임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 동안에는 한 번도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을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주 그러한 물음을 묻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가끔 길을 걸으면서 여전히 그런 물음을 묻곤 했습니다. 이를테면 자갈길을 걸으면서 ‘이것도 길인가?’하고 물었습니다. 마땅찮았기 때문입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길을 걷든가 눈이 쌓였다가 녹으면서 얼어버린 미끄럽기 짝이 없는 길을 엉금엉금 기듯 걸으면서도 저는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을 물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것은 물음이 아닙니다. 물음의 형식을 띈 것이기는 했습니다만 실은 길에 대한 볼멘소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이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 때로 저는 그 물음을 바닥에 깐 채 욕지거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애써 찾아들은 길이 막다른 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뚫린 길을 좇아 걷다보니 떠난 자리로 되돌아 온 것을 확인했을 때, 그런 경우에 저는 ‘왠 놈의 길이 이래! 하고 거의 자조적(自嘲的)인 탄식을 쏟기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느 새 저는 어떤 형태로든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을 아예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이제는 길이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제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만큼 낡아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까지 말씀드린 것도 애써 제 기억의 단층들을 뚫고 내려가 탐침(探針)에 묻어나온 길의 이미지들이지 지금 저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제 ‘고고학적 자료’일 뿐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일입니다. 길을 걷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떤 길을 회상하거나 예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제가 발언한 것인지 다른 사람이 그렇게 제게 말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은데, 난데없는 물음이 들렸습니다. 그 물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네가 걸어온 길, 그것도 길이었니?’

*** 행복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고들 한다. 나날이 행복한 사람이 되려면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고 말들 한다. 우리 시대 종교학 석학이 보내는 '소소해서 종종 잊곤 하지만 너무나도 소중한' 메세지 <정진홍의 살며 생각하며>에서 마음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나보자.

제게 언제부터 길에 대한 상념이 일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길은 제게 마치 나비의 날갯짓처럼 황홀하면서도 고즈넉한 팔랑거림으로 스며있습니다. 그래서 ‘길’이라는 글자만 봐도 설렙니다. 게다가 그것이 도(道)와 겹치고, 또 그것에 그리스어 호도스(길)와 겹치면서 길은 제게 거의 ‘신비한 것’으로 각인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겪은 길은 제가 기억하는 한 꽃길이었습니다. 툇마루에서 대문에 이르는 어른 발걸음으로 열 발작이 채 못 되는 마당 한가운데 길은 양 옆으로 채송화가 가득 핀 그런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길은 제게 무엇보다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는 우렁이를 잡으러 논에 간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미끄러져 논에 빠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두렁을 따라 걷는데 앞에 가던 누님이 그 두렁을 ‘논두렁길’이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속으로 의아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것도 길인가?’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아마도 그 때 이후부터인 것 같습니다. 저는 자주 이런저런 길을 걸으면서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을 묻곤 했습니다. 신작로를 걷다 골목길에 들어서면 갑자기 ‘이것도 길인가?’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할아버님 산소에 가는 산속 오르막길은 실은 아무런 흔적도 없는 그저 숲속이었는데 어른들께서는 ‘산소 가는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길을 좇아 숨을 몰아쉬며 산소에 오르면서 저는 또 그렇게 물었습니다. ‘이것도 길인가?’

가까운 길도 있었습니다. 먼 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멀고 가까움과 관련해서는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을 묻지 않았습니다. 그런 길은 실은 길이라는 의식조차 없이 그저 그 길을 좇아 걸었을 뿐인데, 가깝든 멀든 그 길을 따라 목적지에 이르면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겠습니다만 길이 일정한 곳을 떠나 뜻한 자리에 이르는 과정, 곧 내 움직임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진 동안에는 한 번도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을 물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주 그러한 물음을 묻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저는 가끔 길을 걸으면서 여전히 그런 물음을 묻곤 했습니다. 이를테면 자갈길을 걸으면서 ‘이것도 길인가?’하고 물었습니다. 마땅찮았기 때문입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진흙길을 걷든가 눈이 쌓였다가 녹으면서 얼어버린 미끄럽기 짝이 없는 길을 엉금엉금 기듯 걸으면서도 저는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을 물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것은 물음이 아닙니다. 물음의 형식을 띈 것이기는 했습니다만 실은 길에 대한 볼멘소리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이 이 정도에서 끝난 것은 아닙니다. 때로 저는 그 물음을 바닥에 깐 채 욕지거리를 한 적도 있습니다. 애써 찾아들은 길이 막다른 길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뚫린 길을 좇아 걷다보니 떠난 자리로 되돌아 온 것을 확인했을 때, 그런 경우에 저는 ‘왠 놈의 길이 이래! 하고 거의 자조적(自嘲的)인 탄식을 쏟기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어느 새 저는 어떤 형태로든 ‘이것도 길인가?’하는 물음을 아예 묻지 않게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이제는 길이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제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할 만큼 낡아서 그런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제까지 말씀드린 것도 애써 제 기억의 단층들을 뚫고 내려가 탐침(探針)에 묻어나온 길의 이미지들이지 지금 저와는 아무 연관이 없는 제 ‘고고학적 자료’일 뿐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일입니다. 길을 걷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떤 길을 회상하거나 예상하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제가 발언한 것인지 다른 사람이 그렇게 제게 말한 것인지도 분명하지 않은데, 난데없는 물음이 들렸습니다. 그 물음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네가 걸어온 길, 그것도 길이었니?’

 

 

출처 링크: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3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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