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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민, '쉼'과 '비움'의 앙상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4. 8. 20. 11:17

류성민, '쉼'과 '비움'의 앙상블

 

 

[경인일보] 2013년 07월 15일 월요일 제12면

 

 

프랑스어 '바캉스'는 본래 '비움'이란 의미이다 몸도 마음도 가장 평안한 상태가 될 수 있어야 한다. 휴가후 일의 의욕이 생기도록 철저히 비우는 휴식을 보내야

 

장마철이다. 무더운 나날이다. 일을 하든지 공부를 하든지 힘들고 짜증나기 마련이다. 그래도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는 것은 머잖아 방학과 휴가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은 이미 방학에 들어갔고, 초·중·고등학교도 곧 방학이 시작된다. 직장인들도 휴가 계획을 세울 것이고, 집집마다 어디로 얼마동안 휴가를 갈지 설왕설래할 때다. 유명한 산과 바다에는 사람들로 넘칠 것이고, 관광지마다 사람들이 산과 바다를 이룰 것(人山人海)이 분명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이제는 마음껏 놀아보라는 광고말도 귀에 솔깃하다. 공부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픈 생각이 없는 학생들이 있겠는가. 그렇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우리나라가 아닌가. 학생들의 공부시간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나라가 우리나라는 아닌지. 그렇다고 우리의 노동자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임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학생들이 세계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이제 일도 공부도 양보다 질을 중시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도 쉼은 필수적이다. 쉬어야 열심히 일할 수 있고 집중해서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쉴 것인가? 바다로 갈까 산으로 갈까, 오지의 섬으로 갈까 외국으로 여행할까, 고민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러다보면 쉬기도 되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쉬면서 다이어트 하고, 쉬면서 운동도 하고, 쉬면서 책도 읽고, 쉬면서 여행도 하고, 쉬면서 집안일도 하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등등 쉬면서도 하고픈 '일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러다 보면 쉬는 것이 미처 하지 못한 일과 공부를 하는 시간이 되기 마련이다.

 

미국으로 유학을 간 한 고등학생의 아버지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 학생이 방학이 되어 일시 귀국을 했다. 나름 보람된 방학을 보내기 위해 학원에 등록하여 부족한 영어 공부도 하고 대학 진학에 필요한 과목도 수강했다. 시간 나는 대로 박물관 견학도 하고 도서관에 가서 읽고 싶었던 책도 빌려보았다. 방학이 끝나 다시 학교로 돌아간 그 학생은 수업시간에 방학동안 어떻게 보냈는지를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은 불쌍한 듯이 그를 쳐다보았다고 한다. 선생님이 그 학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방학은 쉬라고 시간을 준 것인데 너는 공부만 하다 왔구나. 너는 방학을 잘못 보냈다."

 

쉬면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순간 쉼은 더 이상 쉼이 되지 않는다. 뭔가를 하면서 쉬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주말을 보내고 나면 '월요병'에 걸리고, 휴가를 다녀오면 '휴가병'에 시달리는 것이 아닌가.

 

마치 밭을 1년 동안 아무런 경작도 하지 않고 풀을 뽑거나 거름을 주지도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놔두듯이, 아무런 일도 공부도 하지 않고 그냥 쉬어야 한다. 복잡하고 힘든 문제를 풀듯이 많이 생각하거나 고민하지도 말아야 한다. 지칠 정도로 신나게 놀지도 않는 것이 쉬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먼 거리를 가는 것도 쉬는 것이 아니다. 속이 거북할 정도로 많이 먹지 않아야 쉴 수 있다. 몸도 마음도 모두 가장 평안한 상태가 될 수 있어야 쉬는 맛이 날 수 있다. 쉼은 무엇을 하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휴가나 방학의 뜻인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는 본래 '비움'이란 의미이다. 머리도 비우고 몸도 비울 수 있어야 '바캉스'가 되는 것이다. 쉼이 없으면 비움도 없다. 비움이 없는 쉼은 쉼이 아니다. 그래서 쉼과 비움은 앙상블을 이루어야 한다. 휴가도 주지 않는 기업은 그래서 정말 나쁜 기업이다. 방학 중에도 학교에 나오게 하거나 학원에 다니게 하고 숙제를 많이 내주는 학교는 참으로 못된 학교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을 주어야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의욕이 생길 수 있다. 공부하지 않고 쉴 수 있어야 알아서 공부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휴가를 다녀와서도 일의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면 휴가가 아니다. 방학을 보내고도 공부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헛된 방학일 뿐이다. 철저히 비움이 있을 때 채움이 시작되듯이, 모든 것을 비우는 휴가가 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출처링크: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5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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