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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민, 인사청문회와 콘클라베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4. 8. 20. 11:31

류성민, 인사청문회와 콘클라베

 

[경인일보]2013년 03월 25일 월요일 제12면

 

 

'자리'가 사람을 만들게 해서는 안 된다.
과정·절차 중시되는 제도 통해 공직자를 선임해야
시스템에 의한 인사가 필요하다

중학생일 때 이런 일이 있었다. 수학 시험문제를 잘 풀어 답을 찾았으나 답안지에 잘못 옮기는 실수를 했고, 결국 시험을 망쳤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그 때 이런 망상이 떠올랐다. 만일 시험 문제와 사람의 머리를 함께 집어넣으면 바로 성적을 알려주는 기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좋은 성적을 받았을 텐데….

이런 망상이 다시 떠오른 것은 아마 새 정부의 장차관과 많은 고위직 인사(人事) 때문인 것 같다. 후보로 지명되거나 거론된 사람들의 인사청문회와 각종 하마평을 보면서 편하지 못한 심사가 있어서일게다. 그러한 자리들에서 해야 할 일과 그 일을 할 만한 자격과 인품 등을 입력한 다음 후보자를 넣으면 바로 가부를 알려주는 기계라도 있으면 좋겠다.

정치인이든 정부 고위직 관리든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일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사실상 그 어떤 공복(公僕)도, 특히 고위직은 누구나 맡고 싶은 자리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누구나 자기 자신을 위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싶어한다. 명예와 권력, 부귀가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줄 수 있을 만큼 적절한 인물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살아온 이력과 성품과 자질에 대한 공정하고 타당한 평가를 통해 그 자리에 맞는 인물이 선택되어야 한다.

시험(고시)이나 선거를 통하든 임명권자의 임명에 의하든 간에 최대한의 정당성과 합법성이 담보되는 공직자 임명이 이루어지도록 사회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새 정부의 인사 문제는 그러한 장치가 제대로 작동을 못하거나 불비한 경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임명권자의 자의적 천거나 정치적 이해관계 혹은 친소(親疎)와 인맥(人脈) 등 불합리한 요인들이 인사에 영향을 주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와 그 운영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하는 것이다.

얼마 전 세계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이 새로 선출되었다. 무려 266대 교황이다. '콘클라베'(Conclave)로 알려진 교황 선거 시스템은 2000년의 가톨릭 역사를 통해 다듬어진 제도이다. 그동안 평신도와 성직자의 대립과 갈등, 여러 명의 교황이 선출되기도 했던 혼란, 선출된 교황 자격 논란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착된 것이다. 선거의 비밀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외부의 압력을 일절 받지 않는 것, 무기명 투표 방식과 3분의 2 이상의 득표를 얻어야 하는 것, 선출 이후 문제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투표용지를 소각하는 것, 새 교황을 선출할 때까지 계속 투표를 하는 것 등등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조항들이 있다. 대부분 최적임자를 선출하고 선거 이후의 문제를 최소화하기 위한 내용이며, 교황 선거방식이 가장 이상적인 선거방식의 하나로 여겨지는 이유이다.

새로 선출된 교황(프란치스코)에 대한 여론의 평가도 그 선출방식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그는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고 병으로 폐 하나를 절단한 채 살아왔으며, 주교 관저가 아닌 조그만 아파트에서 살면서 대중교통을 즐겨 이용했다고 한다. 에이즈 환자의 발을 씻겨 주고 입맞춤까지 하는 등 청빈하고 약자를 배려하는 성직자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교황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로마로 오기보다는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라고 했다는 그의 말도 가슴을 울린다. 물론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다 만족하는 교황은 될 수 없을지라도, 시스템적으로 잘 작동되는 선거 절차와 과정을 통해 선출됨으로써 정당성과 신뢰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는 교황이 되었다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교황선거를 지금의 우리나라 고위직 인사와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중요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곧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국민들이 정당성과 타당성을 인정하고 신뢰를 보낼 수 있는 인사가 되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게 해서는 안 되며, '자리'에 맞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출처링크: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2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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