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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민, 새로운 시작이 없는 끝은 끝이 아니다

 

[경인일보]2013년 02월 25일 월요일 제12면

 

 

대학생들 취업 보장되는졸업 될수 있도록 해야하고
퇴직자에겐 새 일자리 찾게끔기회와 준비시간 갖도록 배려를
새로운 시작 불가능한 상황서 끝만 강요는 절망으로 내모는것

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유치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졸업식이 한창이다. 학업의 한 단계를 마감하고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관행이다. 나라마다 그 시기와 기간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학업의 전 과정을 몇 단계로 나누어 입학과 졸업을 반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회적 제도이다. 마치 줄을 타고 위로 올라갈 때 줄의 중간 중간에 매듭을 만들어 놓으면 더 효과적으로 오를 수 있는 것과 같이, 학업의 긴 과정에 졸업과 입학이라는 의식을 거행함으로써 더 능률적인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래서 졸업과 입학을 축하한다. 하나의 과정을 잘 마쳤기에 축하하고, 또 하나의 새로운 과정에 들어섰기에 기뻐한다. 새로운 과정으로 입학할 수 있기에 졸업이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 되고, 졸업을 하였기에 입학도 새로울 수 있다. 졸업 시즌은 곧바로 입학 시즌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졸업과 입학이란 사회제도를 무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졸업이 졸업 같지 않고 입학을 해도 새로울 것이 없어지고 있다. 선행학습이나 조기교육이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졸업하기도 전에 다음 단계 입학 이후 공부를 하도록 강요한다.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면 중학교 선행학습을 하도록 부추긴다. 중학교 2학년만 돼도 고등학교 공부를 미리 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그러니 졸업을 해도 졸업한 것 같지 않고 입학을 해도 새롭게 배우는 것이 없다. 끝도 없이 계속되는 지루한 공부의 연속이다. 이는 매듭도 없는 줄을 타고 계속 올라가도록 재촉하는 것과 같다. 매일같이 새벽에 일어나서 밤늦도록 학교와 학원을 오가야 한다. 낮에 학교에 가서는 틈나는 대로 잠자고 밤에 학원에 가서는 쉬는 시간도 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 방학이 돼도 별 변화가 없고, 졸업 후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는 여유조차 없다.

한편,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하는 유치원 졸업은 어떨까?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졸업을 축하할 수 있을까? 대학 입학에 낙방한 고등학교 졸업은 또다시 고등학교 공부를 반복하는 재수(再修)의 괴로운 현실이 될 수 있다. 졸업을 해도 사실상 졸업이 아니다. 대학을 졸업해도 대학원 진학이나 취직이 안 되면 마찬가지다. 요즘에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일부러 졸업을 늦추는 기이한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대학 5학년생, 6학년생이란 말이 낯설지 않다. 졸업하여 실업자 신세가 되느니 차라리 그냥 대학생으로 남아서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입학과 취업이 불가능한 졸업은 무의미한 것이다. 새로운 시작이 없으면 끝은 끝일 수가 없다.

직장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50대 중반에 조기 퇴직을 하든 60대에 정년퇴직을 하든 직장을 그만두거나 직업을 잃는 것은 당사자에게 엄청난 충격을 초래하기도 한다. 퇴직을 했으나 뭔가 새로운 일거리나 할 일이 없으면 살아야 할 이유가 별로 없다. 그래서 새로운 시작이 준비되지 못한 끝은 좌절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하물며, 불시에 정리해고나 강제 퇴직을 당한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절망에 이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가 건강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정과 절차가 중시되어야 한다. 졸업이라는 과정과 입학이라는 절차가 실질적인 의미가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말하자면 시작하고 끝맺는 것을 제대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입학과 취업이 보장된 졸업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직업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와 준비의 시간을 주면서 퇴직을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불가피한 해고라 하더라도 또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새로운 시작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끝을 강요하는 것은 낭떠러지로 내모는 것과 다름없다. 복지(福祉)는 결과보다는 과정이, 목적보다는 수단이 중시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시작과 끝이, 끝과 시작이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삶 속에서 평안과 안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이러한 학생복지, 사회복지가 간절하다.

 

 

 

출처링크: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714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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