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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민, 축제에 다녀오셨습니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4. 8. 20. 11:54

류성민, 축제에 다녀오셨습니까

 

 

[경인일보] 2012년 10월 22일 월요일 제12면

 

 

 

가을에는 그 어느 계절보다 축제가 많다. 방방곡곡에서 온갖 축제가 넘쳐난다. 수원의 화성문화제, 이천의 쌀문화축제, 가평의 자라섬국제재즈페스티벌, 부평의 풍물대축제, 소래의 포구축제 등 10월에만 수십 개의 축제가 경기·인천지역에서 펼쳐지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한 해에 무려 750여 개의 축제가 있다고 한다. 마음껏 먹고 신나게 놀면서 즐기는 축제가 많다고 나쁠 것은 없겠지만, 왜 그렇게 많은 축제들이 열리고, 왜 우리가 축제에 참여하는지 한번쯤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순한 행사·장사 의미 아닌 남녀노소·빈부귀천 없이
평등해지는 '놀이의 시공' 마음껏 즐기고 난 후이전과 다른, 보다 멋지고
의미있는 삶 추구할 수 있어야


축제(festival)는 말 그대로 축하의 제사이다. 제례나 연회 혹은 축일로 번역되기도 하는 축제는 종교적 의례의 하나로 시작되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들을 찬양하면서 함께 먹고 마시면서 즐기는 의례가 축제였다.

다른 종교의례들과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간과 공간(곧 성스러운 시공) 속에서 일상과는 전혀 다른 규범과 사회적 질서를 창출하여 완전히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의례가 축제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축제이든 간에 일하고 공부하고 잠자는 일상생활을 벗어나는 것에서 축제가 시작되고, 축제의 시공 속에서는 일상을 모두 잊어버린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며, 다시 일상의 생활로 돌아오면서 축제는 끝나는 것이다.

평소에는 보잘 것 없이 먹어도 축제에서는 산해진미가 넘쳐난다. 술 먹고 일할 수는 없지만 술 없는 축제는 거의 없다. 가면이나 탈을 쓰면 잘생긴 사람도 못생긴 사람도 다 똑같다.

축제 중에는 사회적 신분도 우등생과 열등생의 구별도 없어진다. 모두가 더불어 춤추고 노래하며 함께 놀다보면 귀천도 빈부도 무색해진다. 때론 남녀의 구별도 나이에 따른 서열도 무시된다. 사람들은 이러한 축제를 즐기면서 일상을 벗어난 새로운 삶을 향유하게 된다.

축제가 끝나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온다.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간에 다시 이전에 생활하던대로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축제를 즐기고 나면 그 일과 공부를 더 힘차고 열성적으로 하게 된다. 한숨 푹 자고나면 온 몸이 개운해지듯이, 축제에서 정신없이 놀고 즐기고 나면 일할 힘과 용기가 치솟게 되는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어야 진정으로 축제를 향유한 것이다.

모든 축제가 그저 놀고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축제는 마치 식물에 거름을 주는 것과 같다. 다시 일상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축제를 통해 부여받는 것이다.

축제에 참여한 후에는 그 이전과 다른, 보다 멋지고 의미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인류가 축제 문화를 간직하고 전승하여 온 주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축제에 다녀왔습니까? 다녀오니 어떻습니까?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지요? 더 충실한 삶을 살고픈 의욕이 넘치지는 않는지요? 함께 참여한 사람들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혹시 좋은 물건 싸게 사려고 축제에 가지는 않았는지요? 돈벌이가 될 일이 없나 서성거리지는 않았는지요? 아이들에게 뭔가 배울 것이 있을 것 같아 축제에 데리고 가지는 않았는지요? 축제에 다녀와서 오히려 일할 맛을 잃지는 않았는지요?

행사가 축제는 아니다. 축제는 장사도 아니다. 축제는 배움의 자리도 아니고 사업의 기회도 아니다. 춤과 노래가 흥겹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이 넘쳐나며,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이 모두 평등해지는 놀이의 시공이 축제이다. 이런 축제를 마련하여 즐겨보자.

가을하늘,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한참 동안 바라보면 몸과 마음이 모두 맑아지는 기분을 느낄 것이다.

축제는 우리 삶의 청명한 가을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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