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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민, [21세기 人文學 리포트] 종교는 늘 누군가의 삶이다

 

[MK뉴스]  2012.06.08

 

 

 

몇 년 전에 인도를 방문한 적이 있다. 인도의 중북부에 있고 인도인들이 가장 성스러운 곳으로 여기는 바라나시라는 도시에서 며칠을 묶었다. 그곳에서 답사한 갠지스 강가에서의 경험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겨울 갈수기의 갠지스 강물은 많이 오염되어 있었다. 얼굴 부근만 내놓은 상태로 둥둥 떠다니는 사람의 시신도 있었다. 화장터에서 뿌려진 재가 너른 수면을 하얗게 덮고 있었고, 물 속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강물은 흐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바로 그 물에 몸을 담그고 갖가지 방식으로 의례를 행하는 인도인들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두 손을 모아 조심스럽게 강물을 뜨고, 큰소리로 신의 이름을 부르며 하늘 높이 쳐들 때의 그 환한 얼굴 표정. 꽃송이를 하나씩 강물에 띄워 보내며 간절한 기도를 올리는 정성스러운 몸짓. 강물에 시선을 고정한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경전을 암송하는 깡마른 성자들. 깜깜한 하늘의 무수한 별처럼 어둠 속에서 강물을 따라 유유히 흘러가는 작은 불꽃들. 성스럽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었던 그 모습들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책을 통해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이며 영상으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눈을 돌리면 전혀 다른 장면들도 볼 수 있었다.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강변의 쓰레기들, 장사치들이 벌려 놓은 너저분한 상품들, 땔감으로 쓰기 위해 손바닥 크기의 원판처럼 만들어 양지바른 곳에 널어놓은 소똥 덩어리들, 그리고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구걸하는 어린애들, 강가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흉측한 검은 소들의 무리, 불에 타고 있는 시신이 그대로 보이는 화장터와 고약한 냄새, 연기, 소음…. 세상의 모든 더러운 것과 보기 싫은 것이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다.

 

갠지스 강은 생명과 죽음, 성과 속, 아름다움과 추함, 감동과 역겨움이 공존하는 삶의 현장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생명과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 감동으로 남을 수 있었으리라. 이것이 종교적 삶이며, 그 삶의 한복판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이었다.

 

종교를 공부하면서,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종교인들의 삶을 경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도 방문 때처럼 절감한 적이 없었다. 종교는 나무나 돌처럼 사람들과 동떨어진 대상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 자체이고, 그래서 `종교는 항상 누군가의 종교`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종교는 언제나 누군가의 삶임을 알 수 있었다.

 

글을 통해서 알게 된 지식만으로 다른 사람들의 종교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편협할 수밖에 없고, 누군가의 말을 통해 다른 종교를 알고자 하는 것이 편견이나 오해, 곡해의 위험에 빠지기 쉽다는 것도 인도 방문을 통해 더욱 분명해졌다. 그래서 종교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종교적 삶의 현장을 방문하고 그 삶을 경험하도록 강조하곤 한다. 말 그대로 답사(踏査)를 통해서만 살아 있는 종교적 삶을 경험할 수 있고, 그 경험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가장 전형적인 다종교 국가다. 곳곳에서 다양한 종교적 삶의 현장을 찾을 수 있다. 한국만큼 종교를 공부하기 좋은 곳은 없을 것이다. 어느 곳을 여행해도 종교가 삶이 되어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종교적인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다양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삶과는 다른 삶을 경험함으로써 내 삶의 지평이 넓어지고 깊어질 수 있기에 다양한 삶의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종교 공부가 삶의 공부가 될 수 있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할 수 있기에 종교학은 인문학일 수 있는 것이다.

 

 

[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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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347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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