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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민, 종교는, 사람을 향할 때 비로소 성(聖)스러워진다

 

 

[MK뉴스]2012.02.10

 

 

 

고상한 말부터 해보자.

교의 세계는 성(聖)의 세계다. 그래서 종교적인 일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성직자`라고 하고, 종교의식 등이 행해지는 건물을 `성전`이라고 한다. 종교의 경전들은 `성경`이라 부르고, 종교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을 `성물`이라 한다. 종교에서만큼 성(聖)이란 글자가 많이 쓰이는 곳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성 혹은 성스럽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한자어인 `성(聖)`에 해당하는 갑골문자는 `입 옆에 유난히 큰 귀를 가진 사람` 형상으로 되어 있고, 매우 예민한 청각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

 

수렵 생활을 위주로 했던 고대 사회에서 청력이 중요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그래서 청력이 뛰어난 사람은 고대 사회에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고, 존경과 흠모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와 소통도 가능한 인물로 추앙되었을 것이란 추정도 가능하다.

 

중국에서는 `성`이란 글자가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사람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람들에게 유용한 도구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성인(聖人)`으로 불렸고, 더 나아가 지혜와 품성이 뛰어나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끼친 사람들도 성인 반열에 올려졌다. 성인으로 여겨진 공자는 요(堯)와 순(舜) 같은 전설적인 왕들에서부터 주나라 문왕과 무왕, 주공 등을 성인으로 지목했다. 성인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가져다 준 사람들이고, 그러한 일이 성스러운 일이다.

 

서양 언어 대다수 어원이 되는 라틴어에서 성에 해당하는 말은 `상투스(sanctus)`다. 이 말의 의미를 놓고 많은 해석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완전하거나 순수한 것 혹은 그렇게 구별하는 것을 뜻한다. 종교적 의미의 정화나 완벽함을 나타낸다. 사람이든 장소든 아니면 시간이든 사물이든 다른 것들과 구별하여 완전하게 하거나 순수하게 만든 것이 성스러운 것이고, 그렇게 하는 행위를 성스럽다고 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렇게 성스럽게 만드는 이유가 그 자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밖에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양이나 소를 구별하고 정화하여 성스러운 것으로 만든 것은 그 짐승을 위한 게 아니라 그것을 신에게 바치기 위해서였다. 어떤 사람을 성스러운 사람으로 구별하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신이나 그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였다. 성스러운 장소는 그곳에 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성스러운 시간은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성(聖)`과 `상투스`에서 모두 비슷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성스럽다는 것은 그 누군가를 위해 있는 것이며, 성스러운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을 뜻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들 세계가 성스러운 세계이고 종교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말하자면, 종교의 세계, 곧 성스러움의 세계는 성스러운 것을 위한 세계가 아니라 성스럽지 못한 것을 위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성직자는 신자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고, 성전은 그곳에 오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고, 성경은 그것을 읽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고, 성물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위한 물건이다. 그래서 자기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세계가 성스러운 세계이고 종교의 세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막말을 해보자. 종교가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세계라고.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들기는 소리냐`라고 반문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종교인처럼 이기적인 사람들이 있느냐, 지네들만 구원받고 성불하자는 것 아니냐, 종교전쟁만큼 참혹한 전쟁이 있느냐, 온갖 비리와 부정과 범죄를 성스러운 것으로 가리는 세계가 종교의 세계 아니냐, 종교는 일시적 쾌락과 희열을 주고 영원히 괴롭히는 싸구려 술이고 아편 아니냐, 있지도 않은 환상과 허상을 팔아먹는 사람들이 성직자이지 않으냐, 종교를 믿을 바에야 내 주먹을 믿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도 이러한 현실을 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성스러운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을 성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고, 종교가 있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사람이 없으면 성스러운 것도 없고 종교도 없다. 결국 사람, 사람이 문제이고 사람이 답이다.

 

 

[류성민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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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링크: 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2&no=91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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