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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14호-죽어서 받는 이름 시호諡號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 3. 20. 17:53

 

죽어서 받는 이름 시호諡號

 

        

 

 

news  letter No.514 2018/3/20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지어준다. 이름에는 부모의 사랑과 기대가 담겨있다. 그 이름만큼이나 예쁘게 자란다면, 그 이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인생은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부담이 되는 이름이든 자랑스러운 이름이든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반응하며 성장한다. 교복 왼쪽 가슴에 달려있던 이름표, 출석부에 적힌 이름, 도장에 새긴 이름 등 나의 이름은 나를 대신하여 곳곳에서 나를 보여주었다. 이렇게 이름이란 이 세상에 태어나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또 다른 나이다. 그런데 내가 죽은 후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지어준다면 어떨가? 왜 죽은 나를 위해 이름을 지을까? 그 이름에 응당할 수 없을 터인데.

  
       조선시대 국왕은 태어날 때보다 사망한 후 더 많은 이름을 갖게 된다. 시호諡號, 묘호廟號, 전호殿號, 능호陵號 등이 그것이다. 능호는 왕의 무덤을 지칭하는 이름이다. 전호는 상중喪中에 신주神主를 봉안하는 혼전의 이름이다. 묘호는 상례 후 신주를 봉안한 사당의 이름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등은 모두 묘호이다. 이렇게 국왕의 이름은 사후 대행왕이 거처하는 공간과 연관되어 있다. 건물 이름이면서 그 공간의 주인을 가리킨다. 이러한 공간적 개념과 무관한 또 하나의 이름이 바로 시호이다.


       시호는 사후에 그 사람의 행적과 덕성을 평가하여 지은 이름이다. 시諡는 행위의 자치를 나타내는 이름이며, 호號는 공을 나타내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시호란 생애를 마친 사람에게 그 삶의 행로와 업적을 드러내기 위해 만든 이름이다. 이것은 한 사람의 일생을 문자로 표현하려는 유교의 독특한 평가 방식이다. 시호는 작위가 있는 사람에게 내렸다. 그리고 시호는 자기가 스스로 짓는 것이 아니라 천자나 제후가 내려주는 것이었다. 제후가 죽으면 신하들이 그의 행적을 정리하여 천자에게 보고하고, 천자는 대신을 보내어 시호를 내렸다. 반면 천자가 죽으면 제후가 남교南郊에서 시호를 올리는데 이것은 천자의 시호가 하늘로부터 오는 것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러한 시호는 공공성과 엄정성을 기준으로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조선시대 국왕은 중국 황제가 내려주는 시호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와 무관하게 자체의 시호를 올렸다. 국왕이 승하하면 2품 이상의 관리들이 의정부에 모여 시호를 정하여 올리고 국왕이 최종적으로 결정하였다. 왕의 시호는 대개 8글자로 지었다. 예를 들어 영조는 “익문선무희경현효翼文宣武熙敬顯孝”이다. 당시 설명에 의하면 익翼은 백성을 사랑하고 태평한 것을 좋아하였다는 뜻이고, 문文은 도덕의 명성이 널리 알려졌고, 선宣은 위대한 선행이 두루 알렸고, 무武는 대위를 보존하고 공업을 안정시켰으며, 경敬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스스로를 경계하였고, 현顯은 행실이 안팎으로 드러났으며, 효孝는 조종의 뜻을 이어 대사를 이루었다는 뜻이다. 이는 영조가 백성을 사랑하고 태평성세를 이룩하였을 뿐만 아니라 무신란戊申亂 등을 평정하여 대위를 보존하고, 모든 일에 공경한 마음을 발휘하고 효성을 실천한 군주였다는 평가이다. 

   

    시호가 신주에 적힘으로써 승하한 왕은 신神이 되고, 축문祝文에 적혀 그의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후왕은 선왕의 시호를 금보金寶에 새기고 그에 대한 찬양의 글을 옥으로 만든 책문冊文에 새겨 종묘에 봉안하였다. 이 모든 것이 그 공덕을 영원히 전하기 위함이었다. 왕을 기억하는 것은 그의 공덕을 기억하는 것이다. 2017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조선시대 어보御寶와 어책御冊 중 많은 것이 이 시보諡寶와 시책諡冊이다. 


       공덕功德은 살아생전 그가 이룬 공적과 덕행을 가리킨다. 고대 중국에는 공덕의 유무가 사후에 받을 심판에 영향을 줄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역사에 남겨질 그 행적과 이름을 위해 조신하였다. 유교는 그 공덕의 가치를 높이는 이데올로기였고 그에 따라 인물을 평가하는 시스템이었으며, 이를 위한 공경한 삶을 안내하는 수신 프로그램이었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었지만 개인과 가족의 범위를 넘어 공공의 선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나의 삶이 무엇인지가 조선시대 유교가 우리에게 전하는 물음일 것이다.

 

 

이욱_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주요 저서로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조선왕실의 제향 공간-정제와 속제의 변용》, 《조선시대 국왕의 죽음과 상장례-애통•존숭•기억의 의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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