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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38호-‘인간적인 것 너머’의 종교학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 9. 4. 20:27

                       ‘인간적인 것 너머’의 종교학

 


                       news  letter No.538 2018/9/4       
  
  

 

 

 

 


       지금껏 종교학은 종교 현상을 ‘인간적인 것’으로 전제하고, 종교 현상을 인간 이해를 위한 핵심적 영역으로 여김으로써 비로소 성립되고 또 발전해온 학문이다. 초자연의 영역을 전제하지 않고서 ‘인간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추어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 길이 열리면서 종교학이란 학문이 발전해왔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인간적인 것 너머로 시야를 확장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현대사회는 인간중심적 사고의 한계를 실제적인 환경악화의 문제를 통해 심각하게 경험해왔다. 많은 현대인들은 생태적 위기를 경험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간중심적 시각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적인 것 너머로 확장된 시야에서 인간을, 그리고 인간적인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전 방위에서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인간적인 것’ 너머로 시야를 넓혀서 인간을 포함한 더 큰 생태계 속에서 종교 현상을 조명한다면, 종교학의 논의는 어떻게 조정될 수 있을까?

       오늘날 인간보다 더 큰 세계에서 종교 현상을 바라보는 여러 접근법들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이른바 ‘새로운 애니미즘’ 논의들이다. 애니미즘은 “생명, 숨, 영혼” 등을 의미하는 라틴어 ‘아니마(anima)’에서 유래한 용어이다. 타일러의 애니미즘 이론은 인간만 영혼을 갖고 있다는 선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왜 ‘원시인’들은 인간 이외의 존재에게도 영이 있다고 상상했을까를 추론하는 가운데 탄생한 이론이다. 타일러는 그들이 ‘합리적인 마음’을 가지고 죽음이나 꿈 등의 현상을 설명하려고 시도하는 가운데 영적인 존재에 대한 믿음, 곧 종교가 생겨났다고 보았다. 아니마를 ‘영혼’과 연관 짓고, 애니미즘을 무생물 속의 영적 존재를 믿는 원시적인 종교로 규정하는 용법이 아직도 우세하다.

       그렇지만 최근에는 영적 존재들에 대한 믿음이라는 타일러식 ‘낡은’ 애니미즘 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애니미즘 논의가 학계에서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여러 갈래에서 갖가지 논의가 펼쳐지고 있지만, 종교 현상의 맥락으로서 생태환경과의 상호작용을 결정적 요인으로 제안한 데이비드 에이브럼(David Abram)의 이야기를 간단히 소개하고 싶다. 그의 이력은 독특한데, 그는 클럽에서 마술 공연을 통해 돈을 벌어 학비에 충당했던 숙련된 마술사(magician)였다. 유럽에서 길거리 마술을 하며 여행하다가 마술이 심리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한 에이브럼은 민간에서 이루어지는 치유법과 주술(magic)의 관계를 연구하기를 원했다. 1980년대 초에 현지조사를 떠난 그는 인도네시아와 네팔에서 원주민 주술사들(magicians) 및 샤먼들과 서로의 ‘magic’을 교류하면서 가까워졌고, 그들과 함께 지내는 가운데 얻은 통찰을 여러 편의 글로 써냈다.

       그는 오늘날 많은 이들이 사용하는 “인간(적인 것)보다 더 큰 세계(the more-than-human world)’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에이브럼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인간보다 더 큰 세계와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적 동물이다. 이러한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지각(perception)을 통한 소통이다. 인간은 피부로, 콧구멍으로, 귀로, 눈으로 감각적인 환경의 모든 측면을 느끼고 또 표현하면서 주위 세계와 관계를 맺어왔다. 하늘의 빛깔이나 바람소리 등 지구의 감각적인 것들의 모든 측면은 우리를 관계 속으로 이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구상의 모든 것은 ‘말할’ 수 있고, 우리는 거기에 응답해왔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거의 배타적으로 다른 인간들 및 우리 자신의 인공적인 테크놀로지에만 관여한다. 현대세계에서 우리의 지각세계는 매우 축소되었고, 인간보다 더 큰 세계를 온전히 지각하지 못하는 동물이 되어버렸다.)

      「주술의 생태학 (The Ecology of Magic)」이란 제목의 글에서, 데이비드 에이브럼은 인도네시아 원주민 사회의 주술이라는 종교 현상을 인간과 감각적인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재조명한다. 그가 볼 때, 원주민 사회의 주술사나 샤먼은 원주민 사회의 에콜로지스트다. 그들이 하는 일은 흔히 생각하듯이 초자연적 존재를 만나는 게 아니며, 오히려 그들은 원주민 사회에서 ”인간보다 더 큰 세계“와 인간을 연결하는 매개자이자 관계의 인도자로서 기능한다. 에이브럼은 많은 서구 학자들이 인도네시아 주술사들의 황홀경 상태를 길고 상세히 다루면서도, 주술사들이 다른 종 및 지구와의 관계, 비인간 자연과 다른 인간들 사이의 매개로서 작용하는 측면을 애써 간과해왔다고 비판한다. 종교(religion)의 어원에서 ‘다시 연결(re-relate)’의 의미를 찾는다면, 에이브럼에게 주술이란 종교 현상은 초자연적 존재(신)와 인간을 다시 연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보다 더 큰 세계(생태계)와 인간을 다시 연결하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에이브럼의 논의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다양하다. 격렬히 환영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비판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떻든, 그의 논의는 연구자의 시야가 인간적인 것 너머로, 인간보다 더 큰 세계로 확장될 때, 종교 현상에 대한 접근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가 될 것이다.

      인간보다 더 큰 세계를 고려하기 시작할 때, 이제껏 간과해왔던 비인간 존재들, 자연력, 생태환경이 종교 현상에 관한 우리의 논의 속으로 들어올 때, 우리는 인간(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보다 더 큰 세계의 관계를 여러 각도에서 묻게 된다. 가령 인간은 인간보다 더 큰 세계를 감각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인간보다 더 큰 세계에서 감각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비인간 존재에게 가장 ‘인간적인’ 우리의 행위들은 어떻게 비칠까? 실제로 여러 학자들은 자신의 고유한 물음을 가지고 학계의 통념에 도전해왔다. 우리는 악어에게 물려 죽을 뻔한 발 플럼우드의 글(The Eye of the Crocodile)을 읽으면서, 악어의 눈에 인간은 어떻게 보일 것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숲은 생각한다』를 쓴 에두아르도 콘처럼, 숲의 눈에 보이는 세계는 어떤 것인지 물을 수 있다.

      세계는 인간적인 것 너머로 열려 있으며, 인간은 세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이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새삼 진지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들의 논의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유기쁨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저서로 <<생태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종교>> 등이 있고, 최근 논문으로는 <잊힌 장소의 잊힌 존재들 : 생태적 위험사회의 관계 맺기와 종교>, <현대 종교문화와 생태 공공성 : 부유하는 ‘사적(私的)’ 영성을 넘어서>, <장소에 기반을 둔 풀뿌리 종교생태운동의 모색 : 지리산 실상사의 사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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