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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45호-이야기로 사는 삶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 10. 23. 20:14
                                 이야기로 사는 삶

 

 

       news  letter No.545 2018/10/23                  


  
  

 

 

 


     1.

        “참 차경석이가 큰 갓을 쓰고 옥색 명주로 도포를 크게 히서 입고 유기로 맨든 책상이 있어.

         거그다 호랭이 껍딱 깔고 앉아서 질다란 장죽 물고 앉아서 말여. 그러고 수염, 허여허니, 지드란허니

        수염이 난 노인 양반 둘이서 양쪽으로 서 있어. 하나가 담배를 쟁여서 넣으먼 하나는 벌써 불을

        등대허고 있어. 그러면 태고, 다 탤 만허먼 재떨이를 갖다 놔주고 이려. 또 여름으는 예쁜 처녀들이

       초롱을 들고 섰어. 큰애기들 둘이 들고 섰네. 그리고 또 큰애기 둘이 큰 부채를 들고 양쪽으로 서서 부쳐 줘.”


   이 이야기는 설장구 명인 신기남(1914~1985)의 생애를 담은 《어떻게 허먼 똑똑헌 제자 한놈 두고 죽을꼬?》(구술 신기남, 편집 김명곤, 뿌리깊은나무, 1992)에 나온다. 전북 정읍 출신의 신기남은 어린 시절에 동네에서 벌어진 굿 가락에 취해 방바닥과 자기 무릎을 두드리며 장단을 두드리곤 했다. 그런 자식을 엄하게 매질하던 그의 부친은 어느 날 동네에서 굿판을 벌리던 무리들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그중에 가장 재주가 뛰어난 설장구쟁이 김홍집에게 자식을 의탁했다. 그의 장구 인생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매질을 당하며 스승에게 장구를 배운 신기남은 스물두 살 무렵에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여성 명창 이화중선이 조직한 남률회사의 농악대원이 되어 전국 각지와 일본, 그리고 만주로 순회공연을 다녔다. 또한 판소리의 명창 동초 김연수, 임방울 등과 함께 공연도 할 정도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보천교의 차경석이 살던 정읍 대영리 인근에 살았고, 명절이나 차경석의 생일에 그의 집에 가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또한 충남 금산에서 증산교의 일파를 이룬 안대성의 집에 머물면서 그의 자식들에게 몇 년간 장구를 가르쳤다고 한다. 차경석과 증산교에 관한 정보는 그가 겪으면서 얻은 것이었다.

    2. 신기남의 생애구술을 담은 책에 대해 처음 안 것은 완도에서 열린 한 학술대회에서다. ‘생태학과 문화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영화 《서편제》로 유명한 김명곤 선생이 기조강연을 했다. 그는 자신의 첫 직장이 출판사 뿌리깊은나무였고, 그곳에서 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직해 연극에 전념할 무렵 뿌리깊은나무 출판사의 발행인이었던 한창기 선생으로부터 ‘민중자서전’ 출판기획에 참여해달라는 청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설장구잽이 신기남의 생애 이야기는 그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아마 여느 때 같으면 학술대회의 기조 강연에는 좀처럼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대회의 품격을 높이는 장치로 동원되는 인물들이라 여겨질 때면 특히 그렇다. 그러나 김명곤 선생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한창기 선생과 출판사 뿌리깊은나무, 그리고 그 출판사에 기획한 민중자서전에 관한 그의 언급 때문이었다. 그 짧은 몇 마디에서 나의 연구 영역에서는 좀처럼 다루어지지 않는 사회의 변두리에 위치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문화에 대한 생각거리가 내게 주어졌다.

   3. 한창기 선생과 출판사 뿌리깊은나무에 대해 조그마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완도의 학술대회에 참여하기 전, 아이의 생일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찾았던 한 옹기판매장에서였다. 보성에서 직접 옹기를 굽고 판매하고 차도 재배하는 옹기장은 한적한 마을에 자리하고 있다. 입구를 들어서는데 아무도 내다보지 않는다. 잠시 후 젊어 보이는 한 사람이 옹기가 진열된 문을 열어 주었고, 우리는 찬찬히 옹기들을 살펴볼 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주인장이 옹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쏟아내는 바람에 정작 눈과 귀가 각기 상대를 달리하는 난관에 처하게 되었다. 주인장의 말을 추리면, 옹기산업의 미래는 어둡다, 옹기 색을 결정하는 유약토를 한 두 업체에서 전국의 옹기장에 공급하다보니 똑같은 색의 옹기만 공급된다, 옹기는 생활에서 사용하기 불편하다, 한국의 전통문화는 발전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에 찻잎을 띄운 물에 목욕을 했다는 등이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에서 귀를 세우게 한 대목은 한창기 선생에 관한 발언이었다. 주인장에게는 큰아버지인 한창기 선생(1936~1997)은 보성 벌교 출신으로 한국브리태니커사를 설립했고, 잡지 《뿌리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을 발행했던 인물이다. 주인장은 가족들이 큰아버지의 유물을 모아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을 건립해 순천시에 기증하기까지 겪었던 힘겨운 과정을 토로했다. 그리고 그는 한창기 선생의 이름으로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 특히 예술가와 선생이라 칭하는 자들이 너무 많다면서 씁쓸해했다.

    4. 한 달 정도의 기간에 마주친 우연한 일들을 통해서 나는 사람은 이야기를 지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로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려 두 시간에 걸쳐서 옹기장의 사설을 듣고서야 구입한 옹기잔과 단지 하나를 품고서 한창기 선생과 ‘뿌리깊은나무박물관’에 대해 조그만 관심이 생겨났고, 완도에서 열린 –여느 때 같으면 참석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학술대회에서 강연자로부터 출판사 뿌리깊은나무의 ‘민중자서전’ 출판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순천에 있는 뿌리깊은박물관에서 그 기획출판물의 일부를 구입해서 읽다가 설장구잽이 신기남의 이야기를 만났고, 그의 이야기에서 차경석의 보천교와 증산교가 일반 민중에게는 어떻게 인식되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죽고 없는 이들과 그들에 대한 이야기에 내 삶의 일부가 합류하는 이 신기한 경험은 ‘민중의 이야기’에 대한 무딘 나의 마음을 자극했고, 나 역시 이야기로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임을 깨닫게 했다. 그리고 첨언하자면, 우리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도 ‘이야기’를 채록하고 논의하는 작업이 좀 더 풍성하게 이루어졌으면 한다.

      


박상언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배아줄기세포연구의 생명윤리담론 분석: 한국 기독교와 불교를 중심으로>,<간디와 프랑켄슈타인,그리고 채식주의의 노스탤지어:19세기 영국 채식주의의 성격과 의미에 관한 고찰>,<신자유주의와 종교의 불안한 동거: IMF이후 개신교 자본주의화 현상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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