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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 100주년에 즈음하여 나타난 몇 가지 풍경


 

 

      news  letter No.554 2018/12/25                  

 





    얼마 전 어떤 학술 모임이 끝난 뒤 몇몇 지인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삼일운동과 관련된 학술 행사 뒤풀이 자리였다. 발표자 중의 한 사람인 지인은 매우 지친 표정으로 “이제 한번 남았다”고 했다. 그 동안 삼일운동 관련하여 네 곳으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는데 오늘이 세 번째 발표라고 했다. 옆에 있던 지인도 자기 역시 오늘 발표가 세 번째라고 했다. 두 사람 모두 한국근현대사 연구자로서 삼일운동과 기독교의 관계에 대한 발표를 위해 여기저기 불려 다니고 있었다. 삼일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나타난 풍경이다.

    필자 역시 얼마 전 삼일운동과 관련한 원고 하나를 청탁받았다. 삼일운동과 종교계의 역할에 관한 주제이다. 삼일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종교가 개신교와 천도교이므로 양측에서 나온 자료를 주로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그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표현들이 이번에는 눈에 띄었다. 33인의 ‘민족대표’에 관한 부분이다. 모 ‘스타 강사’가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하여 사자명예소송에 휘말리고 1천 만원이 넘는 벌금까지 물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33인은 모두 종교지도자이고 개신교, 천도교, 불교계를 각각 대표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개신교 16인, 천도교 15인, 불교 2인이다. 대부분의 책에서는 ‘민족대표’를 배출한 숫자에 따라 이 순서대로 서술한다. 그런데 천도교계에서 나온 책을 읽다 보니 순서가 조금 달랐다. “천도교 15인, 감리교 9인, 장로교 7인, 불교 2인”으로 천도교가 가장 많은 ‘민족대표’를 배출했고 따라서 맨 앞에 나오고 있었다. 이는 개신교를 두 교파로 분할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어떻든 이러한 재배치를 통해 천도교의 ‘주도적’ 역할이 부각되는 것은 틀림없다.

    이와 유사하면서도 조금 다른 서술도 눈에 띄었다. ‘민족대표’는 개신교 16인, 천도교 15인으로 최종 확정되었지만 ‘원래 계획’은 천도교 15인, 개신교 15인이었다는 것이다. 천도교는 약속대로 15인을 선정했는데 개신교가 막판에 1인을 추가했다는 의미로 들린다. 사실이야 어떻든 천도교 측에서는 원래의 계획을 강조함으로써 천도교와 개신교의 ‘대등한’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부분을 읽을 때 떠올랐던 것은 종교인구 통계였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개신교인은 1000만 명에 이르고 천도교인은 7만 명에도 못 미친다. 100년 전인 삼일운동 당시에는 천도교인이 100만에 이르렀던 반면 개신교인은 20만을 약간 넘었다. 한 세기만에 20만의 종교는 1000만의 종교, 100만의 종교는 7만의 종교로 급변하였다. 이는 한국 근현대사가 낳은 최대의 ‘이변’이다. 교세의 하락을 경험한 종교가 삼일운동과 같은 ‘신성한 역사’에서 주역으로 등장하는 ‘민족대표’의 배열 순서와 숫자에 신경 쓰는 것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현상이 개신교 계통의 책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대부분의 개신교 통사에서는 “개신교 16인, 천도교 15인, 불교 2인”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교파까지 표시할 경우 “장로교 7인, 감리교 9인”을 병기한다. 그런데 감리교측의 문헌에 등장하는 병기 방식은 “감리교 9인, 장로교 7인”이다. 숫자가 많은 감리교가 장로교보다 먼저 표기되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개신교 통사에서 “장로교 7인, 감리교 9인”와 같이 장로교를 앞에 배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한국 개신교사에서 장로교가 압도적 교세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나타난 일종의 장로교 중심주의이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장로교가 주도적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도 장로교를 무의식적으로 앞에 배치한 것이다. 이것이 줄곧 ‘2인자’의 자리에 머물러 온 감리교의 불만이다. 따라서 감리교는 ‘민족대표’와 관련해서는 ‘상식’에 따라 자신이 1위임을 드러내고 싶은 것이다. 심지어 감리교에서는 삼일운동 당시 피검된 개신교인의 숫자를 제시한 뒤 절대 숫자는 장로교인이 많지만 신자 비율로 보면 감리교의 피검자 비율이 높다는 통계까지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천도교와 감리교가 삼일운동의 ‘민족대표’ 혹은 피검자 비율과 같은 문제와 관련하여 보여주고 있는 몸짓은 ‘약자의 심리’라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런데 현재 ‘거대종교’로 존재하고 있는 개신교가 삼일운동과 관련하여 자신이 수행한 역할 이상으로 과장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발견된다. 과거의 역사에 대한 주류종교(주류교파)의 태도는 소수종교(교파)의 그것과는 다른 차원에서 평가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진구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소장
논문으로는 <미국의 문화전쟁과 '기독교미국'의 신화>, <최근 한국 개신교의 안티기독교 운동과 대응양상>, <다문화시대 한국 개신교의 이슬람 인식:이슬람포비아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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